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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칼럼

복현인의 교통안전, 마음껏 걸어 다닐 자유
따사로운 오후, 햇살을 받으며 백양로를 걷고 있다. 대학원동 앞 횡단보도를 건너 일청담 방향으로 향하려는 순간 왼쪽 경사로 위에서 격한 경적소리가 울린다. 움찔하는 사이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를 남기고 사라진 것은 다름 아닌 배달 대행 오토바이. 투덜대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이 오른쪽에 나타난 승용차 한 대는 빨리 지나가라는 듯 경적을 울린다. 서둘러 ‘보행자 전용도로’라고 적힌 백양로로 발길을 옮겼다. 정면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또 달려온다.캠퍼스 내를 거닐다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학내 구성원의 보행권이 번번이 침해당하는 가운데 본지는 교내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짚으면서 교내 교통안전 시스템을 점검하고자 한다● 도로 위의 무법자들본교로 들어오는 차량은 가장 먼저 요금 정산소에 붙어있는 ‘교내전역 시속 30km’라는 표지를 마주하게 된다. 교내로 진입하는 모든 차량의 운전자에게 제한속도를 알리는 것이다. 이를 비롯해 교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시속 20~30km의 속도 제한 표지판이 서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교내에서 이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운행하는 운전자를 만나본 적은 거의 없다. 단속이 이


왜 놀이인가?
왜 놀이인가? 우리는 놀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놀이가 심심풀이, 오락 등의 유치한 것 혹은 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휴식과 관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놀이에 대한 이러한 통념은 놀이를 학문, 특히 철학의 주제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우리가 철학사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오랜 세월 놀이가 철학의 주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생각하고 노동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놀이하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놀이가 삶의 근본 조건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놀이가 언제부터, 그리고 어느 정도로 인간 삶과 관계했는지는 각 문명권마다 놀이에 대한 고대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또한 고대어의 의미 분석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놀이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듯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에서도 이미 놀이는 철학의 주제로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헤라클레이토스이다. 그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장기놀이하는 아이이다’라고 대답한다. 놀이를 비본질적인 것, 비도덕적인 것, 비생산적인 것 등 유동적이며, 현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대구경북에 새겨진 상흔을 찾다
대구 근교 경산시 평산동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가창골, 신동재, 앞산 빨래터는 어떠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혹은 그 곁에 있는 민간인 학살의 역사는 잊혀지고 있다. 유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서는 안 될 민간인 학살현장을 방문했다● #코발트 광산으로 가는 길경산시 평산동 산 40-12번지. 코발트 광산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길찾기’ 어플로는 찾을 수도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코발트 광산은 대중교통을 통해서 갈 수 없으며 차를 타고 간다 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산중에 위치해 있다. 기자는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와 코발트광산유족회 최승호 이사의 동행 하에 현장을 방문했다.경산 코발트 광산은 1937년 6월 금·은으로 광업허가를 받았다. 1940년 코발트 검출법이 개발됐고, 이후 1942년 코발트 광맥이 발견돼 1943년부터 채광 선광 제련 시설로 가동이 시작됐다. 최 이사는 “채광 중 코발트 광산에서는 강제 징용도 일어났다”며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극한의 노동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 후 코발트 광산은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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