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생활 한복보다는 예쁜 퓨전 한복이 좋아!
‘개량 한복’이라고 불리는 생활 한복과 퓨전 한복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개량 한복의 시초는 개화기 초기, 서양 선교사가 한복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게 그 위에 어깨허리(치마를 허리끈으로 동여매는 대신 조끼형으로 어깨에 걸 수 있게 만든 끈)를 단 것과 기독교 전도 부인들이 한복 저고리 교복을 신식으로 개량한 것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직장에서는 양복을 입더라도 집에서는 한복을 입었었는데, 점차 가정에서도 양복을 입는 것이 일반화됐다. 1980년대에는 ‘한복 입기 운동’의 일환으로 생활 한복이 고안 됐다. 생활 한복은 활동적인 우리 옷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이 운동은 곧 흐지부지해졌다. 기존 한복이 체형을 보완해 주는 반면, 생활 한복은 상의가 길고 하의는 짧은 탓에 한복 고유의 비율이 가진 아름다움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또 천연 염색을 했기 때문에 색이 다소 칙칙했으며, 당시 운동권 사람들의 유니폼 정도로 인식돼 일반인들의 거부감을 샀다. 생활 한복이 실용성을 우선으로 추구했다면, 퓨전 한복은 활동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현대 의복에 한복의 선, 화려한 문양 등을 가미해 세련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입었을 때 예쁜 것을 선호하는 현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화려하면서 우아한 멋을 지닌 한복 드레스
퓨전 한복은 그것을 입는 사람을 아름답고 돋보이게 해주며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퓨전 한복의 일종인 ‘한복 드레스’는 각종 영화제에 참가하는 한국 여배우들이 주로 입기도 하며, 요즘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결혼식 웨딩드레스로 관심을 끌고 있다. 서양 여성에 비해 상체가 다소 부실한 한국 여성들에게 한복 드레스는 체형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가슴을 눌러주는 한복 치마는 가슴선을 강조하는 서양식 드레스보다 훨씬 한국 여성들에게 잘 어울리며, 하이웨스트(허리선이 높이 올라오는 치마) 라인의 치마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한다.
특히 한복 드레스는 전통 한복의 화사하고도 얇은 생사, 부드럽고도 단아한 명주의 원단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에서 매력을 더한다. 거기에 수화(手畵)를 덧그려 디자이너의 작품세계를 돋보이게 한다. 두꺼운 원단에는 자수나 각종 장식품으로 옷을 꾸민다. 얇은 실로 엮어진 한복의 원단이 비칠 듯 비치지 않아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여성의 미를 한껏 돋워준다.

세계 속의 퓨전 한복, ‘바람의 옷’ 디자이너 이영희
퓨전 한복의 선두주자로는 대구 출신 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있다. 저고리를 입지 않고 한복 치마만 드레스처럼 입는 방식도 이 씨가 가장 먼저 선보였다. 이 씨는 1983년 워싱턴에서 ‘미국독립 축하쇼’에 참여해 국제 무대에 데뷔한 뒤 세계 여러 나라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소개했다. 1996년에는 파리 뤽상부르궁전 오랑제리 전시장에서 ‘한복:바람의 옷’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바람의 옷’은 원래 프랑스의 패션지 <르 몽드>의 기자였던 ‘로랑스 베나임’이 한복을 보고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존의 한복이 아닌 이영희 스타일의 ‘저고리를 입지 않은 한복 치마 스타일의 드레스’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이 씨의 한복 드레스는 어깨를 모두 드러내는 스타일임에도 단아함이 느껴지는 오묘한 매력을 준다. 단지 저고리를 벗기고 치마의 형태만 조금 바꿨을 뿐인데 외국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섹시하다”는 평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낯설게 받아들여졌던 이 씨의 한복 드레스는 이제 여러 형태의 디자인으로 응용되는 세계적 의류가 됐다. 퓨전 한복의 신선한 매력에 동?서양이 모두 심취한 것이다.

전통과 퓨전의 기로에 서서
이영희 씨가 맨 처음 파리에서 ‘바람의 옷’을 선보였을 때, 수많은 한국인들이 ‘치마만 입혀 놓은 것이 어떻게 패션이라고 할 수 있나’라며 비판했다. 서양 사람들이 전통 한복을 오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의 퓨전 한복을 ‘한국적 느낌을 살린 현대 복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속 의상으로서의 한복을 소개하는 것은 진부하다”며 “퓨전 한복은 전통을 뿌리로 한 하나의 ‘현대 패션’으로서 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이어 ‘정신’을 배운다는 것이지 옛 모습을 똑같이 따라하는 게 아니다.
한편 퓨전 한복 대신 기존 한복에 현대적 느낌만 가미해서 대중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바로 한복에 패션 개념을 도입해 디자인하고 한복의 유행을 주도했던 이리자 씨의 생각이다. 10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선과 색의 어울림’이라는 표제 아래 국립 민속 박물관에서 <한복 기증 특별전>을 갖는 그는 “퓨전 한복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양장에 속하며 한복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우리 옷의 세계화는 많이 진행된 상태이므로 이제는 기존 한복을 편안하게 만들어 평상시에도 즐겨 입을 수 있게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한복을 즐겨 입지 않는 우리들에게 전통 한복에 실용성을 더해 한복을 생활화하는 한복 실용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이영희 씨와 이리자 씨의 한복은 변형의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 현대적인 변화를 가미한 것은 매한가지다. 구양숙 교수(생과대 의류)는 “옛날 것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원군 시절, 청나라 의복이었던 주머니 달린 조끼를 한복 위에 입은 것처럼 한복은 시대마다 유행도 많이 타고 여러 가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기본 형태는 남기되 현대에 맞게 전통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통’의 겉모습은 변하더라도 그 핵심이 되는 ‘정신’을 계승할 때, 그 전통이 현대에도 가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온고지신’이란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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