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이 없었다. 오직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다.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하다보니 어떠한 오해도 없어 싸움도 없었다. 그러나 말이 생기면서 이해보다는 오해가, 오해보다는 증오가 싹트면서 세상에는 싸움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임’은 인간 본연에로의 ‘회귀’이다. ‘마임’은 움직임만으로도 모든 언어를 압도한다●

마임극단 ‘동심’, 마음을 찾아서대명동 계대, 이곳에는 마임극단 ‘동심’이 있다. 이 곳의 주인은 이경식(41)씨. 처음 마임을 접하게 된 건 회사 워크숍에서였다. 첫 3년 동안은 회사에 다니면서 취미 생활로 거리공연으로 마임을 하다가 아예 직업으로 바꿔 버렸다. “한 달 동안 수입이 한 푼도 없을 때도 있었지만, 마임을 시작하면서 마음이 행복해졌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14년째 마임배우란 직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씨는 마임배우로 전업한 뒤, 각종 거리공연, 축제를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도란도우’ 팀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락 공연, 무용, 연주 등과 더불어 매달 마임을 선보였다. 그만큼 마임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그리고 2005년에는 마임을 시작한지 6년 만에 ‘활 쏘는 사람’이라는 작품으로 <춘천마임축제>에서 솔로무대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마임을 가르치는 봉사도 하고 있다. 2010년에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자연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대구 중구 중앙파출소 앞에서 하기도 했다. 이 씨는 “마임공연을 요청하는 곳이라면 거의 거절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임을 좀 더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지난 소감을 밝혔다.

이 씨는 마임의 매력을 ‘진실성’으로 꼽았다. 이씨는 “마임을 공연할 때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말로 하는 것 보다 몸동작을 통하는 것이 더욱 진실하다. 살면서도 말보다 어깨를 한번 쓰다듬어 줬을 때 더 큰 위로가 된다. 그런 진실한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마임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이 씨는 일상적인 움직임을 흉내내는 ‘판토마임’을 주로 한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흉내내면서 확대시켜서 상상하고 표현한다. 그게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양치질이라는 것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들로 확장시킬 수 있다. 이씨는 “생활과 더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장르 중에서도 판토마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추구하는 마임은 ‘삶을 치유하는’ 마임연극이다. “관객들이 마임을 보고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인생을 되돌아 보는 계기를 갖고 슬프든 기쁘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춘천 마임축제에서 선보이는 마임연극도 그런 종류의 것이다. 평일에는 마술과 마임을 접목해 관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M&M 공연, 그리고 주말에는 ‘숨’이라는 공연을 한다. ‘숨’이라는 공연은 한 인간의 인생을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표현한다. 어린 시절의 동심, 어른이 된 후의 사회생활 속에서 느끼는 삶의 처절함, 말년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며 물을 마시고 죽음에 이르는 내용을 표현한다. 대사가 없는 장르다 보니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데,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보니 관객들은 대부분 이해를 잘 한다고 한다. “가슴에 있는 것을 끌어내려면 제가 연기를 하면서 울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을 보시고 관객분들이 같이 울어주신다. 말로 하지 않아도 자신의 내부에 쌓인 경험들에서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

현재 마임을 하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마임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배우는 40명 남짓,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사람을 다 합쳐도 100명이 될까 말까다. 지금은 ‘마임극단 동심’에 이경식씨 혼자 뿐이지만, 마임이 좀 더 알려지고 마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같이 연극을 할 동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마임극단 ‘동심’의 ‘동’자는 한자어로 아이 동(童)을 쓰기도 하고 움직일 동(動)을 쓰기도 한다. 마임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동심’의 목표다. 이씨는 이렇게 말한다 ‘마임은 마음이다!’

박진 기자/pj12@knu.ac.kr

전국 최초 마임동아리 서울예대 ‘판토스’-마음으로 마임을.서울예대 판토스(PANTOS)는 올해로 23년째를 맞는 국내 유일의 대학 마임 동아리다. 국내에서 마임을 공식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일까, 전공을 불문하고 학생들이 판토스에 보내는 관심이 뜨겁다. 매년 3월 동아리 발대식을 통해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마임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새내기가 수두룩하다. 물론 그중에 끝까지 남는 인원은 20명 남짓이다. 끝까지 남은 22기 판토스 회원 류진아(서울예대 디지털아트 13) 씨를 통해 판토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1991년 마임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단 세 명의 학생이 모였다. 그리고 국내 최초의 마임 동아리를 만들었다. 서울예술대학의 마임 동아리 “판토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말보다 더 진한 몸의 언어로 관객과 소통하고 사고하는 판토스 회원들은 학기마다 있는 워크숍 정기공연, 축제 공연, 거리 공연을 합치면 매년 10차례 이상 무대에 오른다. 전국 최초뿐만이 아니라 전국 최고라는 타이틀에도 손색이 없다. 작년 여름 워크숍 때 찾아간 판토스는 동아리 방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예대에선 동아리 방이 우수 동아리에 우선 배정된다. 판토스가 서울예대 전체 30개 동아리 중에서 활동내역이 제일 좋은 최우수 동아리로 뽑힌 것이다.

판토스는 학교 행사 외에도 <춘천 마임축제>, <안산 거리극 축제>에 정기적으로 참가한다. 외부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류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여름 워크숍을 꼽았다. 규모가 큰 공연도 좋지만 판토스에 처음 들어와서 했던 공연이라 인상 깊었다고. “기본적으로 1~2달 동안 준비하는데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습하고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함께 있는 만큼 가족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힘들지만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판토스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회원들 간의 끈끈한 정이다. 굵직한 공연이 있을 때마다 판토스를 거쳐간 선배들이 총출동해 도움을 준다. 동기들은 가족과 다름없다. 워크숍 때는 연습 때문에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기에 3~4일 동안 안 씻은 모습을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가족같은’ 동아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판토스는 마임의 매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마임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과 창조. 이게 매력이죠. 말을 안 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그 감정의 전달을 집중도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말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참 멋지지 않아요?”

“음악은 보이지 않는 예술이고 마임은 들리지 않는 예술이라는 말이 있어요. 앞으로 함께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멋진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류 씨는 마임동아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만, 서울예대에서 디지털아트를 전공하고 있다. 즉 마임전공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마임동아리를 통해 졸업 후 연극이나 마임 무대로 진출하는 선배들도 많지만 류 씨의 꿈은 영상제작자다. 미래 진로와 관련해 마임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 답변에서 “보이지 않는 사물을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상상력을 키우고,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는 것도 마임 동아리를 하면서 얻는 점이다”라고 답했다.

서울예대는 이번에도 ‘네오 피노키오’라는 주제로 <2014 춘천마임축제>에 참가한다. 동화 피노키오를 마임으로 재해석하여 피노키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해를 통해 새로운 피노키오를 공유한다. ‘네오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만든 나무인형에 뜻하지 않게 생명을 불어넣어 의도치 않게 새 생명 피노키오가 등장하여 일어나는 사건을 마임으로 표현한 극이다.

판토스는 광대가 되길 거부한다. 마임도 연극처럼 관객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의 한 장르라 여긴다.“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마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임은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예술이죠. 진짜 마임이 궁금한 분들은 저희 공연을 보러 오세요.”

기희경 기자/khk13@knu.ac.kr

*마임이란?마임은 실생활을 주제로 한 흉내와 춤에 의한 즉흥희극을 말하는 것으로, 그 어원은 그리스어 마모스(Mimos: 모방하다, 흉내내다)에서 유래했다.마임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 형태는 기원전 5세기경에 시실리와 남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대화가 있는 조잡한 사실적 광대극이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사건들을 다루거나, 신들과 영웅들을 풍자했다. 마임의 두 번째 형태는 대화가 배우의 제스처와 움직임과 얼굴 표정에 의해 대치된 극으로 오늘날 일반적인 대화 없는 마임이 그 형태에 해당한다. 따라서 마임은 오늘날 단순한 몇 가지 소도구를 사용하고 통상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사가 없는 연기이다. 이것은 대단히 교묘하고 절제된 몸과 얼굴의 표정과 움직임으로 인간이나 동물의 행동을 모방한다.마임 배우의 메이크업은 보통 서커스의 어릿광대의 것과 유사하며, 팬터마임, 코메디아 델라르테, 중세의 바보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의 소극(笑劇)은 공통된 기원을 지니고 있다. 관객이 웃고 칭찬하는 것은 마임배우가 인간의 통상적인 연속 동작들을 분해하고 몸짓과 얼굴표정을 과장해서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춘천마임축제’란?춘천 마임축제(Chuncheon International Mime festival)는 춘천에서 열리는 순수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축제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이 가진 원초적 느낌을 공연과 난장, 신화로 풀어헤치는 아시아 최대의 마임축제이다. 1989년 한국마임페스티발로 출발하여, 1994년 춘천국제마임축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4년까지 총 26회 개최되었다.2014 춘천마임축제는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만들어가는 관객 참여형 도심난장, 관객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하는 거리공연&찾아가는 공연, 관객과 깨비&공연자 모두 하나 되어 즐길 수 있는 파티를 취지로 2014년 5월 25일(일) ~ 6월 1일(일) 총 8일간 진행된다. 장소는 춘천시 일원 (춘천문화예술회관, 춘천인형극장, 축제극장 몸짓, 브라운 5번가, 공지천 의암공원, 강원대학교, 한림대학교 등 시내 곳곳)에서 진행되며, 참가단체는 80개 단체 이상 (캐나다, 일본, 영국, 중국, 미국 등 해외 8개국 12개 단체 포함)이다. 아!수라장, 도깨비난장, 도깨비어워드, 찾아가는 공연, 체험프로그램 등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기희경 기자/khk13@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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