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본교 인문대학 뒤뜰에 만발하는 진달래

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즈음에 피기 시작한다. 동네 앞산은 물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온 산을 물들이는 꽃나무다. 우리대학 구내에는 북문 쪽 인문대학 뒤의 물탱크 주위가 진달래 밭이다. 진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은 고향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잠시 유년의 추억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이원수 선생은‘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고 노래했다. 꽃 대궐의 울타리는 산 능선을 이어 달리듯 펼쳐진 자그마한 키의 아기 진달래 꽃밭으로 만들어진다. 진달래는 더 예쁘게 만들어지기 위하여 육종이란 이름의 성형수술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자연 미인이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로 이어지는 서정시인 김소월의 시 속에서 만나는 친숙한 꽃이기도 하다. 진달래는 비옥하고 아늑한 좋은 땅은 우악스런 경쟁자에게 모두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인 산꼭대기로 쫓겨났다. 산자락에도 자라기는 하지만 그들이 무리를 이루는 곳은 대체로 산꼭대기 능선이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흙이 된 척박하고 건조한 땅, 소나무마저 이사 가고 내버린 땅을 찾아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잎파랑이란 공장을 돌리는 데 꼭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식물들이 싫어하는 산성토양에 적응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난하지만 이웃과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이런 땅에는 경쟁자가 많지 않다. 형제간인 철쭉이나 산철쭉이 경쟁자이나 서로 뒤엉켜 이전투구를 벌이지는 않는다. 적당히 영역을 나누어 살아간다. 대구를 포함한 남부지방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나무란 이름에 더 친숙하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진달래가 필 즈음에 대체로 먹을 양식이 떨어져 배고픔이 일상일 때이다. 굶주린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따 먹고 허기를 달랬으므로 진짜 꽃이란 의미로 참꽃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식물도감을 찾으면 제주도에 참꽃나무가 있다고 적혀 있기도 하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참꽃’은 진달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진달래란 말의 어원은 달래에 접두어 진(眞)이 붙은 형태로 짐작하고 있다. 달래가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나물만이 아니라 달래란 이름이 흔하듯이 꽃을 나타내는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진달래도 토양산도와 유전형질에 따라 빛깔이 조금씩 달라진다. 꽃잎 색이 연한 연(軟)달래, 표준색깔의 진달래, 아주 진한 꽃은 난(蘭)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어린 소녀 시절부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하는 젖꼭지 빛깔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 전설에서 유래한다. 중국의 촉나라 임금인 두우는 홍수에 떠내려 오는 벌령을 살려내어 신하로 중용했다가 왕위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당한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됐다.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피가 떨어져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돌아감만 못하다는 뜻의 중국발음 ‘부루구이不如歸’라고 들리는 듯하여 이런 전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으며 키가 3미터 정도이고 밑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자란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름다운 꽃으로 옛 선비들의 시가 속에 수없이 등장한다. 옛 사람들은 꽃잎을 따다 두견주를 담아 마시고 꽃전을 부쳐서 나누어 먹으며 봄날의 하루를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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