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역은 경주의 북쪽 끝자락에 있어 위치상 경주 중심보다 포항에 더 가깝다. 동대구역에서 1시간 반을 가서 안강역에 도착하자 역사 안의 무지갯빛 의자가 전형적인 시골역의 정감을 느끼게 해줬다. 읍내에서 조선시대 4대 서원 중 하나인 옥산서원으로 향했다. 하루 단 두 번 운행하는 서원행 버스를 놓쳐 택시로 이동해야 했다. 옥산 서원은 동방 오현 중 한 분인 회재 이언적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곳 중 하나이다. 서원으로 향하자 먼저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계곡과 달리 마치 탁자를 여러 개 쌓은 듯한 기이한 모습이었다. 계곡에 가까이 가보니 바위에 새긴 ‘세심대’라는 글씨가 보였다. 심신을 깨끗이 하라는 뜻인 이 글씨는 퇴계 이황선생이 옥산서원에서 남긴 것이라고 한다. 계곡의 시원함을 담은 채 들어간 서원은 단정하면서도 단청 때문에 화려했다. 해설사께 왜 서원에 단청이 있는지 물었으나 그 이유가 남아있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단촐한 구조에 화려한 단청이 어우러지는 오묘함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건물을 찍는 데 몰두하고 있을 때 해설사께서 본당 안으로 들어와보라고 권하셨다. “밖에서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건물은 사람을 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들어와보는 것이 맞다”는 말씀도 곁들이셨다. 대청마루 한 가운데 앉아 밖을 바라보니 서원의 누각인 ‘무변루’의 지붕에 얹힌 산이 멋졌다. 해설사께서는 이 서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 현판 글씨의 주인이라며 조선시대 희대의 명필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임금으로부터 사액 받았다고 얘기해주셨다. 

서원을 나서 이언적 선생의 사랑채였던 독락당을 향했다. 아쉽게도 현재 종갓집으로 쓰이고 있어 들어가보지 못했으나 밖에서 바라본 풍경을 안에서 본다면 얼마나 더 좋을지 기대됐다. 이름 그대로 혼자 즐길 수 있는 경치가 아닐까? 

그리고 이언적 선생의 고향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성 마을인 양동마을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10월 31일까지 무료 입장 행사를 열어 입장료 4천원을 아낄 수 있었다. 양동마을의 입구에 들어서자 기대 이상의 규모가 놀라웠다. 언덕 전체를 온갖 고택들이 채우고 있었고 그 언덕은 시야 밖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양동마을의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마을이라는 점이다. 그저 문화재라고 생각했던 양동마을이 마을로서의 동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물론 한옥이나 초가집 내부를 구경하는데 제약이 많았으나 정말 의미 있는 문화재는 현재에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 불편함을 참을 수 있었다. 또한 구조가 같은 고택이 없어 보는 재미가 있다. 집을 볼 때도, 집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돌담길을 걸을 때에도 항상 다른 모습과 느낌을 선사해준다. 단순히 사진으로 혹은 멀리서 볼 때는 집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집 가까이서 바라보았을 때 주인의 필요마다, 지형마다 달라지는 형태를 보면서 조상들의 인간중심적·자연친화적 사고관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가지는 아름다움도 한껏 누릴 수 있다. 

경주를 떠올릴 때 신라 천년의 고도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조선 오백년의 역사도 품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안강에서 볼 수 있다. 경주의 또 다른 면모를 보길 고대하며 안강역에서 대구로 돌아왔다. 

▲ 옥산의 능선이 누각인 '무변루'를 따라 본당 쪽으로 내려오는 듯 하다.

▲ 양동마을의 고택들. 제일 앞 집에서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인다.

글·사진: 김민호 기자/kmh16@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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