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 달성공원은 80종 약 700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동물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좁은 사육사와 갑갑한 바닥 등, 이곳의 동물들은 야생에서의 습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환경 속에 살며 복지와 생명권을 위협받고 있다. 본지는 2012년부터 우리나라 동물원 및 수족관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시민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와의 동행취재를 통해 달성공원을 살펴보며 동물 복지에 현황을 보고자 한다●

달성공원, 그곳의 동물들

기자는 달성토성의 성곽 둘레를 따라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와 동행취재를 나섰다. 전 대표는 동행취재를 하기 전에도 달성공원 동물원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동물원의 어떤 점에 개선이 필요한지 묻자 전 대표는 “달성공원 동물원의 환경을 개선하려면 사실상 동물원의 사육사를 모두 다시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관람 코스를 따라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맹금류 사육사에 들어섰다. 케이지는 ‘AI 파동으로 관람을 제한합니다’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검은 천이 케이지를 아래에서부터 반쯤 덮고 있었다. 부엉이, 독수리 등의 조류가 천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를 지나가려고 하는 순간 독수리 한 마리가 케이지 앞으로 몸을 던졌다. 날다가 케이지에 부딪힌 것이다. 전 대표는 “맹금류는 활강하면서 사냥하는 습성이 있다”며 “그러나 높이가 낮은 케이지에서 활강을 시도하면 케이지에 몸이 부딪히고 만다”고 말했다.맹금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육장이 동물에게 필요한 넓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듯 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주 동물원에는 동물 종에 따라 체류 사육장의 최소 넓이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는 최소 넓이이기 때문에 뉴사우스웨일주 동물원에서는 이보다 더 넓게 할 것을 권장한다. 위의 기준을 참고하면  침팬지는 실내 체류장을 기준으로 9.5M 폭을 가진 사육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달성공원에 사는 침팬지 두 마리가 나와서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공간의 폭이 최대 10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에조불곰의 방사장은 흙 들판에 우물 하나와 인공 나무그늘만이 놓여 있었다. 방사장에 있을 땐 동물들은 언제나 사람의 시선에 노출돼 있다. 늑대사, 물새장, 조류, 코끼리사, 호랑이사 등의 방사장이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탁 트인 공간에 놓여 있다. 전 대표는 에조불곰의 사육사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전 대표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듯이 동물도 관람객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며 “숨어서 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동물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이다”고 말했다. 또 이들에게 야생의 습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도록 하는 사육사도 눈에 띄었다. 코끼리의 방사장은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 암수 한 쌍의 코끼리가 놓여 있었다. 전 대표는 “코끼리는 번식기가 돼서야 다른 성별과 만나는 동물이다”며 “암수 한 쌍을 같이 놓으면 잘 지낼 것이라는 건 인간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들도 보였다. 호랑이는 벽면을 왔다갔다 하고, 코끼리는 실내 사육장과 방사장을 오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늑대의 경우 한 자리를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정형행동은 동물들이 좌절과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보이는 증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매년 폐사하는 동물들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달성공원 동물원에서는 매년 10~16마리의 동물들이 폐사한다. 2012년부터 지난 11월까지 폐사한 동물 61마리 중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동물은 35마리. 이 중 평균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폐사한 동물은 약 2/3인 21마리이다. 주 폐사원인은 병사나 사고사. 2012년부터 지난 11월까지 폐사한 동물 중 자연사한 동물은 단 2마리이다. 달성공원 동물원의 최란형 주무관은 “시설이 협소하다 보니 생식기에 같은 종끼리 싸우다 죽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열악한 동물원, 적은 예산

그러나 사육사를 확장하기 전에, 달성공원의 시설물을 단순히 보수하는 데도 많은 난관이 있다. 먼저 달성공원 전체가 사적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달성공원 동물원 이대식 주무관은 “동물원에서 어디를 개발해도 되는지, 어디를 개발하면 안되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며 “주어진 환경 안에서는 동물의 습성에 맞는 통나무를 깔아주거나 샤워를 자주 해주는 등 최선의 조치를 취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산 부족도 동물원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해 달성공원에 약 36억 원 가량의 예산이 편성됐다. 여기서 동물원 동물 관리비용으로 편성된 예산은 약 3억 원이다. 달성공원 동물원 손영구 주무관은 “동물관리 예산 중 대부분은 동물원 동물의 사료 비용으로 투입된다”며 “요구한 예산이 예산 편성이나 시 의회 심의 과정에서 깎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 배경식 경제예산팀장은 “각 사업소나 부처에서 요구하는 예산의 합이 시 의회에서 심의할 수 있는 예산의 상한선을 넘다 보니 편성 과정에서 예산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달성공원 동물원 손영구 주무관은 “예산이 된다면 같은 부지 안에서 사육사의 개축 등 노후 시설들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동물들을 보호할 수 없는 동물보호법

법은 달성공원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동물보호법에도 동물원 동물을 위한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동물보호법 4조 1항에는 ‘국가는 동물의 적정한 보호·관리를 위하여 5년마다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된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계획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각 호는 유기동물, 축산동물, 실험동물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동물원 동물에 대해서는 그저 6호에 표시된 ‘그 밖에 동물학대 방지와 동물복지에 필요한 사항’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는 5월 30일에는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이하 동물원법)’이 시행된다. 동물원법은 ▲동물원 설립 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동물원으로서 등록 ▲동물원에 동물원 현황, 운영상황 기록 및 제출의무 부과 ▲동물원 동물 학대 금지 ▲규정을 어겼을 시 과태료를 비롯한 제재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전까지 동물원은 사립의 경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소속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조성된다. 여기서 동물원 동물은 법적으로 각각 박물관의 수집품과 공원의 한 부분으로서 인식된다. 이들에게 필요한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은 볼 수 없다. 제19대 국회 당시 동물원법을 발의한 장하나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큼 동물원 동물 관련 복지 법이 부족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영국의 동물원 자격증과 미국의 ‘동물원 및 수족관 협회’의 형태를 참고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물원법이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얼마나 증진시켜 줄지는 알 수 없다. 법안 초안에 장 전 의원은 동물원의 관리 주체를 전문성을 가진 환경부로 설정하고 체계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2016년 5월 19일 통과된 법안에는 동물원 관리 주체가 지방자치단체로 설정되어 있다. 장 전 의원은 “환경 감수성을 좀 더 가진 부처에서 관리를 맡았으면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동물원 동물들의 질병 유무를 파악하는 정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손영구 주무관은 “동물원법의 시행으로 지금 당장 달성공원 동물원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없다”며 “법 시행 이후 환경부의 공고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는 있다”고 말했다.

동물원을 옮기자?

동물원 자체에서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물원의 이전이 추진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대구광역시는 1993년부터 추진됐던 대구대자연공원 계획에 달성공원 확장이전을 포함시켰다. 대구시 권기철 공원녹지과 주무관은 “2001년 동물원 이전이 포함된 이후 계속 민간사업자를 물색했다”며 “그러나 2,000억원 가량의 사업비를 투자하려는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달성토성 복원사업’을 ‘3대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의 대구지역 선도사업으로 선정했다. 선정 이후 대구시는 대구경북연구소에 용역 연구를 통해 달성공원 이전 후보지 평가를 의뢰했다. 그 결과 기존 수성구 구름골 일대 부지와 문양역 일대, 달성군 하빈면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그러나 수성구와 달성군 사이의 동물원 유치 경쟁이 일고, 민간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달성토성 복원사업이 2013년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대구시는 달성토성 복원사업을 위해 지원받은 국비를 모두 반납해야 했다. 지난해 12월에 이르러서야 대구대공원 부지에 아파트와 함께 동물원을 건설하는 사업이 민간사업자로부터 제안됐다. 권기철 주무관은 “현재 제안서를 오는 5월까지 심의하려고 한다”며 “제안이 긍정적으로 통과된다면 동물원 이전의 기미도 보일 것이다”고 말했다.

인간이 만든 동물원,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에 조성된 최초의 동물원은 1911년 일제강점기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바꾼 ‘창경원’이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에 최초로 동물원이 조성된 지 100년이 넘은 셈이다. 달성공원 동물원 역시 1970년 처음 조성돼 2020년이면 조성 50년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동물들을 우리 터전으로 데려온 것은 인간이다. 이기섭 서울대공원 동물원 원장은 “앞으로의 동물원은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는 생태적 환경이 요구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대식 주무관은 “(달성공원 동물원이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최상의 조건을 맞춰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광희 기자/lkh16@knu.ac.kr일러스트: 김은별 기자/keb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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