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생입니다. 21살, 아직 20대 초반인 나이와 학업에 대한 열정은 여느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지요. 그러나 거리를 지날 때마다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시선이 와 닿습니다. 때로는 미소와 함께 따뜻한 온기가 담긴 시선이 건네어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찌푸려진 눈살과 함께 차가운 시선이 날아들기도 하지요. 

학교에 오면 시선들은 더 많이, 더 차가워진 채로 내게 달라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보름달을 닮은 내 배, 내가 ‘엄마’라는 사실 때문이겠죠●

아기를 가진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대구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8일과 19일, 기자는 이틀 동안 ‘객원 임산부’가 됐다. 20대 초반의, 혹은 대학에 재학 중인 임산부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서구에 위치한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경북지회에 방문해 만삭(출산 직전)의 임신 상태를 체험해볼 수 있는 ‘임신체험복’을 대여했다. 웬만한 악력과 팔 힘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임신체험복의 무게는 7kg 정도지만, 실제 임신을 했을 때 임산부의 몸무게는 태아 무게와 양수, 태반 등을 합쳐 평균 11kg 정도 증가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경북지회 김명순 과장은 “만삭 임산부의 경우 방광을 비롯한 체내의 여러 장기가 눌리고 압박을 받게 돼 소화 불량 등의 신진대사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며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임신체험복을 착용한 직후부터 큰 고비가 닥쳤다. 임신체험복 위로 평상복을 입어야 하는 일 때문이었다. 무거운 배를 부둥켜안고 옷을 입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신히 옷을 입은 후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타는 순간 또한 고비였다. 버스 계단의 턱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저상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대구광역시에 등록된 버스 중 저상버스는 26.9%에 불과해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간신히 버스에 올랐지만 앉을 만한 빈자리가 없었다. 노약자석 앞에 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50대 남짓의 중년 남성이 기자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기자를 외면했다.

지하철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1호선·2호선·3호선에서 총 10차례 만원인 지하철에 오른 기자는 단 한 번 자리를 양보 받았다. 잠깐 서 있는 것조차도 어려운 만삭 임산부들에게는 자리 양보와 같은 배려가 몹시 절실하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의 경우 1호선과 3호선에는 ‘임산부 배려 스티커’만이 일부 좌석에 붙어있고, 2호선에는 분홍색으로 임산부 배려좌석을 따로 표시했으나 그마저도 전 객차에 설치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임산부들은 더욱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환승을 위해 플랫폼 의자에 앉아있던 중 비어있는 기자의 옆자리에 한 노인이 앉았다. 잔뜩 부른 기자의 배를 한 번, 더위 탓에 조금 상기된 기자의 얼굴을 한 번 본 노인은 혀를 차며 자신의 무릎으로 기자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왜 그러시냐고 묻자 노인은 “큼” 하는 소리와 함께 “어린 것이 벌써부터 배가 불러가지고는…”이라고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하철에서 내려 중앙로 일대로 나가 길가의 벤치에 앉자 무수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개중 눈이 마주치거나 기자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들에게 평소 임산부에 대한 생각과 인식에 대해 물었다. “그냥 그렇다”, “별 생각이 없다”와 같은 평범한 답들이 돌아왔다. 이어 “나처럼 20대 초반인, 혹은 대학생인 임산부를 봤을 때에는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다. 별다를 게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다양한 답변들이 나왔다(오른편 하단 참조). 긍정적인 답들도 많았지만 부정적인 답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몇 개월이나 됐어요?” 하며 웃는 얼굴로 물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자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저거 결혼은 했겠나?”, “애비 없는 거 아니가?” 라고 속삭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기자만이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에 임신 및 출산을 경험한 A씨는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도 드문 일”이라며 “임산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경험을 한 B씨는 “젊은 나이에 임신을 했다고 해서 문란하다거나 더럽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체험복을 입고 난 후 3시간 이상이 흐르자 어깨와 허리가 쑤시고 무거워졌다. 더운 날씨 탓에 땀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임신체험복의 무게보다도 기자에게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에게 친절한 사회가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에서 매년 10월 10일인 ‘임산부의 날’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531명 중 ‘임산부로 배려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9.1%였다. 즉 40.9%의 임산부들, 10명 중 4명의 임산부가 임신 중 배려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응답한 것이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대중교통에서의 자리 양보 ▲근무시간 업무량 조정 ▲짐 들어주기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배려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임산부 배려 인식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41.2%)는 응답결과가 나타났다.

2015년 통계청의 ‘시군구/합계출산율’ 중 임산부의 연령대별 출산율을 살펴보면 20~24세인 20대 초반 임산부 출산율은 12.5% 정도다. 하지만 기자가 실제로 겪었듯이 20대 초반 임산부, 대학생 임산부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인 편이었다. 여기에 ‘미혼모’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그 시선들은 더욱 사나워졌다. 이에 대구여성가족재단 가족정책팀 성지혜 연구위원은 “같은 20대 초반의 임산부더라도 결혼 유무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해 미혼모에게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선입견이 쉽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리에서 만난 한 시민은 기자에게 아이 아빠는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B씨는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임산부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겪는 불편 또한 상당했다. 대중교통 등 사회 제반 시설들뿐만 아니라 대학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교 재학 중에 임신을 했을 경우,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4학기 동안의 육아 휴직 신청뿐이다. 타 대학교의 경우에도 이외의 별도 지원이나 시설 지원은 없다. 이화여자대학교에는 학내에 ‘모유수유실’이 있긴 하지만 이뿐이다. 이에 관한 대구광역시 차원의 조례나 권고사항도 없다.

그렇다면 임산부, 특히나 20대 초반 혹은 대학생인 임산부들에게 ‘친절’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A씨는 “나이나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좀 더 임산부에게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씨 또한 “임산부, 그리고 미혼모에 대한 안 좋은 인식들이 많이 개선되면 좋겠다”며 “임산부 지원 정책의 경우 지원되는 금액과 질병의 범위를 넓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성 연구위원은 “성 평등 실현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높이되 전통 사회에서의 남성의 책임과 의무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근본적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며 “월경과 임신, 출산 등에 수반하는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고, 이에 필요한 것들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임파워먼트(권한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영 기자/jhy16@knu.ac.kr

▲ 임신체험복의 무게는 약 7kg이다. 그러나 만삭의 임산부는 10kg 이상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비록 체험용 도구이지만 임신체험복을 입는 순간부터 어깨와 허리가 비상식적으로 아프기 시작한다. 만삭 임산부들에게는 이러한 고통이 일상이다.기특하다. 엄마가 되는 데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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