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다. 한자어로 방학(放學)은 ‘공부에서 벗어나다’는 뜻으로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수업을 쉬는 것”을 말한다. 이와는 달리 방학을 일컫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s))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그 어원은 vacant으로 ‘텅 비어있는’ 혹은 ‘무위(無爲)의’라는 뜻이다. 

이 의미에서 바캉스란 일이나 공부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도 좋고, 아니면 집에서 빈둥빈둥 뒹굴어도 좋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바캉스는 자신을 옭죄고 있는 현실에서 떠나고 벗어나는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는 휴식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종강을 했으니 학생들은 여행과 취미 활동 등 나름의 방학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수업과 시험공부에서 벗어나 약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아무런 구속과 제약 없이 자유롭게 지내는 것은 대학생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대학생 모두가 이 권리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다. 많은 학생들은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공무원시험이나 취업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어느 시대나 청년들에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1970~1980년대 대학은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투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전경, 백골단, 최루탄, 분신, 시위, 데모, 고문, 실종 등 온갖 침울하고 비관적인 상황으로 대학은 편한 날이 없었다. 그나마 그때는 청년들이 앞장 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리라는 강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모색하려는 열망이 있었다. 

이제 그 세대가 사회의 주류세력을 형성하고 기득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 사이 국내외의 정치경제상황도 급변하여 개인 간 경쟁은 격화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단기계약에 목매여 신음하고 있다. 그들은 열정페이를 강요받으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미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은 요즘은 후학들에게 권고나 당부를 하는 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고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식의 격려나 “모두 네 탓이야” 식의 비난도 힘겨운 상황에 처한 대학생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나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학을 맞은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이 말은 파리코뮌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외친 구호다. 여러분이 어떤 방학을 보내든, 또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이 말은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 남이 나 대신 살 수 있는가?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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