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B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쩌면 ‘A가 더 좋긴 하지만, B+도 나름 괜찮은 성적이야’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B라는 기호는 사회 속에서 ‘아주 좋음’으로 인식되진 않는다. 이런 ‘B급’ 공간이었던 방천시장을 A급 예술문화공간으로 만든 조각가가 있다. 바로 B 커뮤니케이션 정세용 대표(예술대 미술 90)다. 그는 방천시장 예술전시기획단체 ‘B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해 숨겨진 에이스같은 작가들의 초청전을 진행하고, 예술잡지 [b]racket(이하 브라켓)을 통해 전국에 숨은 작가들을 알리고 있다. 정 대표와 만나 방천시장과 함께해온 시간과 지역 예술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들어봤다●

Q. B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곳인가?

B 커뮤니케이션은 2009년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에 초대되면서 만든 단체다.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는 중구청의 후원으로 방천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B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젊은 신진 작가들을 위한 초청전을 열어,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B 커뮤니케이션의 B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방천시장의 ‘B’다. 또 다른 부분은 예술 자체의 의미인데, 예술 등급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닌, 사회의 이면을 살린다는 뜻으로 ‘B’를 썼다. 

Q. B 커뮤니케이션에서 신진 작가들의 초청전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인 때 혼자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보통 미술가가 전시를 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화랑의 초대를 통해 전시를 진행하는 ‘초대전’이 있고, 그게 아니라면 작가가 직접 공간을 대관해서 전시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청년 작가들은 당연히 신인이기에 초대받지 못한다. 

신인 작가 당시 첫 대관전시를 진행하면서 팸플릿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했다. 또 매일 전화기를 돌리며 지역 방송사와 신문사에 직접 연락해 전시를 알려야 했다. 전시를 하고 나서도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뒷풀이까지 참석해야 했다. 

이런 과정 끝에 작가 정세용을 보는 시각들이 생겼다.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청년 작가를 지원하는 대구문화재단 같은 곳이 없었기에 전시회 준비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돈을 아꼈는데도 3~400만원이 들었다. 

Q. 중진 작가 초청전을 위한 B 스페이스를 따로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방천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한 건축사무소가 이전을 하면서, 사무실 주인이 날 보고 ‘공간을 제공해 줄 테니 미술 전시를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월세 없이 내가 기획자를 맡는 ‘B 스페이스’를 개관했다. 

B 스페이스에서는 주로 4-50대 작가들이 전시회를 연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고 작가로서의 의지가 있는 중진 작가들이 참여한다. 신진 작가들이 전시를 하면서 계속 발전을 한 다음, 성장해 B 스페이스로 온다. 내게는 좀 더 성숙한 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정제된 공간’인 셈이다.  

이후 정 대표는 전시의 규모를 늘려갔다. 2015년 11월, 방천시장에 모인 작가들은 B커뮤니케이션의 주도로 78평 공간에서 전시와 공연을 복합적으로 여는 초청전 ‘방천난장’을 기획했다. 

Q. 방천난장이 이전에 B 커뮤니케이션에서 진행했던 기획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공간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하던 전시는 작은 공간(10~15평)에서 이뤄졌다. 반면 방천난장은 78평이다. 공간 안에 100명가량이 들어갈 수 있었다. 넓은 공간에선 여러 작가들을 초청해 단체전시도 진행할 수 있었고,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공연도 기획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기존에 하던 자그마한 기획들을 모아서 총체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Q. 방천난장을 진행할 당시 지역민들, 그리고 예술가들의 반응은 어땠나? 

시민들 혹은 관광객들은 시장 안에 수준 높은 문화공연장이 있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낀 듯했다. 그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의 해프닝이었지 않겠나. 많은 외국인들도 관심을 가졌다. 방천난장을 진행할 때부터 시장 예술가, 외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현재 B 커뮤니케이션의 잡지 [b]racket을 만들어내고 있다.

Q. 방천난장의 경우 지역과 예술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예술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예를 들어 뉴욕은 처음에 소호 지역에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이후 예술가들이 개성있는 샵과 갤러리를 운영하자 지역은 유명해졌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됐다. 소호 지역의 임대료가 오르자 예술가들은 뉴욕 내 다른 지역으로 떠나 똑같은 방식으로 지역을 활성화시켰다.

이외에 중국의 789거리도 정부주도적인 성격은 있지만, 외국인 예술가들이 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도시가 살아났다. 영국과 같은 유럽국가에서는 오래된 공장이 폐쇄하면 스튜디오나 박물관으로 개조한다. 예술가들이 제대로 모이면 도시가 활성화된다는 건 분명하다.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자갈마당에도 전시장이 가장 먼저 생기지 않았나.

아쉽게도 2017년에는 방천난장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1년으로 기획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한편 브라켓은 2014년부터 B 커뮤니케이션이 운영해온 예술 잡지다. 정 대표가 기자를 만나자마자 건넨 브라켓에는 마치 외국 잡지를 보는 듯 온통 영어가 가득했다. 

Q. 브라켓을 창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브라켓은 2012년 대구에서 원어민 교사였던 외국인 3명이 창간한 예술잡지다. 이들은 매번 6명의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풀어냈다. 그러나 내부 사정상 2014년에 잠시 폐간했다. 폐간 당시 어려움을 겪는 걸 보고 도와주기로 마음먹고, 내가 발행인을 맡았다. 이후 교사였던 원년멤버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근무한 후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브라켓은 한국인과 외국인 필자들이 모여 발행되고 있다. 

2015년 7월 복간한 브라켓은 한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해진 발행일이 있기 보다는 계절에 맞춰 발행하는 편이다. 소개할 작가를 선정할 때는 작품 활동이 왕성한 작가 중 최고의 작가 1명을 포함해 사회 비판적인 작가와 중진 작가를 적절히 섞는다. 올해 11월 말에 가을호 발간이 예정돼 있다.  

Q. 다양한 국적의 필자들이 함께 일하니 시각 차이도 두드러질 것 같다.

한국인은 평론을 어려워하는 듯하다. 전시를 할 때도 학예사가 작품 설명글을 쓰는데, 이런 글들은 ‘미술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다’이다. 이는 자칫 틀에 박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브라켓에서 글을 쓰는 한국 필자들도 대부분 미술 관련 전공자들이다. 반면 외국인 필자들은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개성적인 면모를 톡톡히 보여준다. 

Q. 브라켓의 최종목표는 무엇인가?

대구에서 만들어지는 국제시각잡지가 되고 싶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참석했고, 유럽 투어를 갈 때도 브라켓을 왕창 가져가 나눠줬다. 사람들이 전부 외국에서 만든 건 줄 알더라(웃음). 또 예술가들의 동의를 얻어 잡지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관련된 굿즈를 만들어보고 싶다. 계속하다 보면 브라켓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지 않겠나.

정 대표는 지난 2010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인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이하 김광석거리) 조성에 참여했다. 지금도 김광석거리에는 정 대표가 그린 벽화와 작품들이 남아있다. 기자는 김광석길이 조성된 직후인 2012년 이후 5년만에 처음 김광석길을 걸어 보았다. 빈집 투성이었던 거리에는 카페와 편의점 ‘김광석길 명물간식’이라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들이 보였다. 20만원에서 출발한 주변지역 월세는 내년에는 100만원을 바라볼 정도로 올랐다고 한다. 

Q. 초기에는 예술가들의 거리였던 김광석길이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기 기획 단계에 참여했던 예술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김광석길은 대구의 첫 문화·예술 관련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다. 우리도 우리가 기획한 그 길에서 쫓겨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김광석길 근처에 땅을 사뒀을 거다(웃음). 이런 활동이 예술가에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행정적으론 어떤 뒷받침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술로 유명해진 공간에는 자본이 따라온다. 다만 젠트리피케이션과는 관계없이 예술가들이 한곳에 정착하면 5~10년 정도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예술가들의 연대를 도와주는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기 때문에 시장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연합할 수 있는 ‘방천예술협회’를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공무원들이 문화·예술 관련 행정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

이광희 기자/lkh16@knu.ac.kr

일러스트: 김은별 기자/keb15@knu.ac.kr

▲ 지금까지 발간된 모든 [b]racket을 볼 수 있는 QR코드. 매번마다 다르게 나오는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 방천시장에서 정세용 대표가 활동하는 지역을 표시해둔 약도. 오래 활동하며 많은 장소를 만든 만큼, 시장을 지날 때 마다 정 대표에게 인사하는 시장 상인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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