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말 촉발되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시민들이 공적으로 위임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신가산제(neo-patrimonialism)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면서 1700만여 개의 촛불을 들었고 좌고우면하던 제도 정치권을 압박하여 불가능해보이던 대통령의 탄핵을 이루어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 역사적 사건은 촛불시민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촛불시민혁명은 1987년 6월 항쟁의 정치적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정부였으며 스스로도 촛불 정신의 계승을 자임하였다. 출범 6개월을 이제 막 지난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70%를 웃도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6개월 지지도 73%는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김영삼 정부 6개월 지지도 83%에 이어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도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세웠고, 집권과 함께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 하에서 지난 정권의 적폐 청산과 국가 개혁을 진행 중이다.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서 소득 주도 성장론을 통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 의료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통한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운전자론으로 대표되는 평화와 한반도 체제의 구축을 위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 등을 제시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민심을 반영하여 올바른 개혁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의 고공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높은 지지율이 개혁 과정 전반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정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다. 지난 6개월간의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여론 중심의 개혁 드라이브와 제도화의 지체로 특징지을 수 있다. 촛불 민심의 지속적인 지지, 박근혜 전 정부의 기저효과(base effects)와 야당의 비타협과 무기력은 여론 중심의 개혁 드라이브를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여론중심 개혁 드라이브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공의 지지는 개혁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을 때 실망(desencanto)으로 변모할 수 있다. 개혁의 전선은 촛불국면에서 80 대 20의 압도적인 국면이 아니라 양면전(two-front war)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Huntington 1994). 개혁 작업은 급진주의자들의 요구를 조정하고 보수주의자들의 저항과 비판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여론의 높은 지지와 대비하여 의회의 상황은 녹녹치 않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현재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의 지위에 올랐지만 국회의 의석수는 여전히 121석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100대 입법과제 중에서 91개가 입법이 필요한 과제이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서 여야 간 합의가 없는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면 전체 국회의원의 5분의 3인 18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여야 간 대치국면에서 개혁연합이 형성되지 않으면 입법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 추진 전략은 여야 간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의회를 우회하여 대중과 소통하고 여론을 동원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에 의해서 개혁과제의 공론화와 처리가 이루어져왔다. 또한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입법과제를 후순위로 미룬 채 시행령과 시행규칙과 같은 하위법령 개정으로 국회를 우회하고 개혁의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개혁은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났던 시행령 통치와 닮아있다. 또한 남미의 대통령제에서 나타났던 위임 민주주의의 특징과 닮아 있으며 미국에서 1980년대 이후 나타났던 국민투표제적 대통령제(plebiscitary presidency)와 유시하다. 제도화 과정을 우회하고 시행령과 위원회에 의존하는 정치는 중장기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은 광장의 열광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치열한 예산과 입법 게임의 시간이다. 즉 문제는 다시 국회인 것이다. 대통령은 뜨거운 열정에 기반을 둔 요구들을 조정하고 개혁을 이루어내는 개혁 연합의 형성자 역할을 해야 한다. 개혁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개혁의 현실적인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며 거부권 행사자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형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 내고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강우진 교수

(사회대 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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