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친한 친구가 오랜 수험 생활 끝에 올해 18학번으로 대학에 가게 됐다. 마땅히 축하받을 일이지만 그 애는 이것저것 걱정을 많이 한다. 대학생들은 어떤 옷을 입지? 신입생은 어떻게 꾸며야 하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기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나는 좀 많이 늦었는데, 그래도 괜찮나? 그 애의 고민은 자신이 ‘좀 더 뒤에’ 출발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2년을 더 투자했을 뿐인데, 그 애는 ‘후발주자’인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또 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한국 사회는 선두가 아닌 사람들 혹은 존재들을 곧잘 지워내고는 한다. 매번 의도하고서 배제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더욱 의문스럽다. 후발주자에게는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것이다. 똑같은 길을 달리는 사람인데 왜 먼저 달리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주목을 받고,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사람은 선두주자의 엑스트라 취급을 받는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여러 이슈와 새로운 스타들을 남기고 무사히 마무리됐다. 시작하기 몇 주 전부터 화려한 광고와 홍보 캠페인이 여러 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던 올림픽 때와는 달리, 오는 9일부터 진행될 패럴림픽에 대해서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음에도 비교적 잠잠한 반응이다. 둘 다 똑같이 중요한 국제 스포츠 무대이며 화합과 외교의 장이 되는 ‘세계인의 축제’인데, 어째 축제는 올림픽 기간 동안이었던 것만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기대하고 응원해주신 국민들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본인이 아쉬워 흘리는 눈물이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2등이라는 높은 성적을 거두고도 죄인이라도 된 듯한 얼굴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1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과했던 것이다.

후발주자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뒤섞여있다. 말 그대로 뒷순서로 출발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뒤를 이어 어떤 분야에 후임으로 도전하는 사람도, 혹은 몇 번의 실패를 겪은 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출발대에 서는 사람도 후발주자라 불린다. 이는 대학에서도 자주 보인다. 취업률이 높고 유망한 학과에만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을 보내고, 순수 학문이나 소위 ‘돈벌이’가 안 되는 전공의 학과에는 그저 무관심하다. 눈앞의 빛나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조금 더 멀리에 있는 찬란한 것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온 캠퍼스에 만연하다.

후발주자에게도 적극적인 관심을, 격려를, 응원을 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내가 후발주자라도 걱정하지 않고, 상대방이 후발주자라는 이유로 염려를 하거나 그에게 너는 왜 후발주자냐고 묻지 않는 사회에 살고 싶다. 언제가 됐든 출발선을 지나 달리기 시작한 모두가 똑같이 관심을 받고 ‘더 뒤에 출발했다’는 이유로 눈길을 끌지 않는 세상을 기대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엔 후발주자를 위한 스포트라이트가 너무도 적다. 하지만 언제 출발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누구에게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질 것이다.

조현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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