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을 먹으며 TV를 켠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유치원 원복을 입은 희극인이 등장한다. 새해 목표를 묻는 아빠에게 김치를 잘 먹어서 ‘김치녀’가 될 것이란다. 관객들이 낄낄 웃는다. 전혀 웃기지 않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린다. 아프리카 국적의 방송인이 등장한다. 같이 등장한 아시아계 방송인이 묻는다. “가나에도 명절이 있어? 가나에도 TV가 있어?” 질문의 무례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TV를 끄고 SNS에 접속한다. 청소년은 급식충이고, 노인은 틀딱이며, 성소수자는 호모다. 체념하고 노래를 튼다. 이별이 사람을 ‘병신’ 같이 만든단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적막 속에서 밥을 먹는다. ‘혐오’표현의 ‘자유’ 시대다. 

대학생 역시 혐오표현을 생산하는 동시에 피해를 받는 주체 중 하나다. 학내 설문조사 및 커뮤니티 분석을 통해 본교생들의 혐오표현 사용 실태에 대해 분석하고, 사용을 지양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한다●

무엇이 혐오표현인가?

현재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혐오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을 일률적으로 정의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어떤 표현이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혐오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박민경 조사관은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혐오표현이 아닌 말도 집단·사회가 혐오표현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중탁 교수(법전원)는 “혐오표현(Hate speech)자체가 해외에서 수입된 표현”이라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혐오표현에 관한 논의는 주로 해외의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찬반 논의, 해외 입법례 등을 한국에 대입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혐오표현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이후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혐오표현의 실태와 규제방안연구’ 결과 보고서에서는 혐오표현을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으로 규정했다. ‘소수자’는 단순히 수적으로 열세한 집단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 수가 적지 않음에도 ‘소수자’로 분류된다. 박 조사관은 “혐오표현 자체가 해외에서 수입된 개념이다 보니 ‘minority’의 정확한 번역이 이뤄지지 않아 오해가 생긴 듯하다”며 “소수자는 권력을 적게 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기존 기득권 세력에서 밀려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남성 혐오표현의 대표격인 ‘한남’이 혐오표현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조사관은 “특정 집단을 공격할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는 표현의 경우 혐오표현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기득권층인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한남충’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육주원 교수(사회대 사회)는 “해당 표현이 일종의 혐오를 표시하는 말로서 자리 잡을 수는 있으나 이러한 표현이 지속적으로 진행된 여성혐오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 비하와 혐오표현은 공격 위험성의 유무에서 그 차이를 보인다. 박 조사관은 “둘 다 상대방을 공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지만 혐오표현의 경우 대상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이 직·간접적인 차별을 당한다는 것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욕설로 사용하고 있는 ‘병신’이나 ‘호모’ 등의 경우 특정 집단에게 직접적으로 가하는 표현이 아니라도 혐오표현으로 정의될 수 있다. 박 조사관은 “특정 소수 집단에 대한 비하적 요소와 혐오가 포함된 ‘증오선동’ 역시 혐오표현”이라며 “혐오표현 사용은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실제 인권위에서는 혐오표현과 관련된 사건을 ‘차별’로 분류해 조사를 진행한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이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차별 선동에서부터 혐오 범죄에 이르기까지 혐오표현의 수준은 다양하다. 성 교수는 “성소수자·이주민·여성 등 특정 개인이 그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합당한 근거 없이 비하당할 때 개인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질 수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소수자의 사회적 발언과 활동을 위축시켜 그들의 권리를 배제되게끔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 만연한 혐오표현

대학생 역시 혐오표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본지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본교생 총 304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혐오표현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질문은 ▲혐오표현을 접해본 경험 ▲혐오표현 사용여부 ▲혐오표현의 체감 심각성 등으로 구성됐다. 백분율은 소수점 첫째자리에서 반올림했다. 

‘혐오표현을 접해본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7%(203명)가 그렇다고 밝혔으며, 이중 52%(106명)가 ‘혐오표현을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까?’라는 질문에 기분이 ‘매우 나쁘다’고 답했다. 혐오표현은 불쾌감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를 초래한다. 이대관(IT대 컴퓨터 13) 씨는 “SNS 같은 곳에서 친구들끼리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곤 하는데 (내가 해당 집단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계명대학교에 재학 중인 성소수자 이유 씨는 “게이라는 말을 욕으로 사용하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레즈비언이냐고 묻는 등의 장면을 주변에서 쉽게 접한다”며 “내 존재를 지우는 것 같아 화가 나고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유경(인문대 일어일문 17) 씨는 “명절에 친척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시대 비판적 이야기를 꺼내자 ‘여자가 어디서 목소리를 키우냐’는 말을 들었다”며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왜 이런 모멸감을 느껴야하는지 불쾌했다”고 말했다.     . 

‘혐오표현을 주로 접한 곳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8%(158명)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밝혔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경북대 HOT게시판(공감 10개를 받은 게시물을 모아놓은 게시판) 내 최근 6개월 간 댓글·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약 330여 개의 게시글 가운데 20% 가량이 혐오표현을 담고 있었다. ‘병신’, ‘틀딱’ 등과 같이 특정 집단에 증오를 담은 단어 사용을 비롯해 ‘같은 조건에 놓였을 때 여자는 남자보다 일을 덜 한다’ 등과 같이 소수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글들이 무분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DC인사이드 경북대 갤러리에서는 ‘홍어’ 등과 같은 지역에 대한 혐오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의 혐오표현을 제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관리자가 존재하는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혐오표현의 정의가 불분명하고, SNS 내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의 규제가 상충하는 등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본교 관련 SNS 페이지 ‘경북대학교 대나무숲’ 대숲지기팀 팀장은 “아직 혐오표현 사용에 대한 제재기준은 따로 없다”며 “과도한 혐오표현이 들어간 게시글들에 대해서는 미게시 혹은 부분적으로 필터링을 하는 등의 조취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혐오표현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에는 응답자의 23%(71명)만이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용 이유에 대해서는 해당 집단에 대한 혐오가 32%(23명)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으며 다음으로 혐오표현에 대한 무지가 31%(22명)를 차지했다. ‘혐오표현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과 ‘심각’이 각각 38%(115명)와 27(82명)%였다. 구성원 절반 이상이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표현의 뿌리, 차별을 도려내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모욕죄 ▲명예훼손죄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 혐오표현을 처벌할 수있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표적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의 경우 처벌에 한계가 있다. 성 교수는 “혐오표현은 차별의 일종”이라며 “차별금지법에 의한 차별규제로써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육 교수 역시 “혐오표현 개념에 대한 혼란이 있다 보니 혐오표현을 단순히 욕설 정도로 생각하거나, 혐오표현 규제에 관한 논의를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검열 기제’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며 “혐오표현이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며 차별행위의 일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적 차원에서 혐오표현에 대항하여 적극적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육 교수는 “상위 법기관의 제도적인 규제뿐만 아니라 온라인 문화 안에서의 대응도 중요하다”며 “주목을 받기 위해 혐오표현을 발화하는 사람에게 ‘그건 쿨하지 않은 일’이라고 대항함으로써 혐오표현 발설 동기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한 고통을 야기한다. 성 교수는 “혐오표현은 사상 자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혐오표현 개념과 그 해악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된다면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규제가 충돌하는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척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대 비판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여자가 어디서 목소리를 키우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껴야하나 불쾌했습니다" 

-여성

"최근에는 젠더 퀴어로서의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마주해요. 특히 젠더라는

말 앞에 아무 단어나 갖다 붙이며

혐오를 조장하죠. 그럴 때마다 나의존재가 사라졌다는 기분이 듭니다"

-성소수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욕설처럼 사용하겠지만,

해당 집단에 속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여요. 해당 혐오표현을

들은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움츠러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애인

자문

- 박민경 조사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 성중탁 교수

  (법전원)

- 육주원 교수

  (사회대 사회)

손정우 기자/sjw17@knu.ac.kr

편집 이홍은 기자/lhe16@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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