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구미는 너른 공업단지에 솟아 있는 굴뚝과 보수적인 색채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민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사람과 책을 잇다’라는 구호 아래 탄생한 ‘삼일문고’와 극단에서 문화예술기업으로 거듭난 ‘공터_다’가 그것이다. 이러한 복합문화공간들이 지역의 도시에 어떠한 의미인지 담아봤다●

삼일문고

붉은 벽돌과 노란 조명, 마치 숲을 거니는 듯한 독특한 구조. 삼일문고는 밝은 조명과 직선적인 형태를 지닌 다른 일반적인 서점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서점 안에는 노인, 직장인, 연인, 아동 등 다양한 세대와 구성으로 이뤄진 시민들이 있었다. 평소에 삼일문고를 이용해온 김지문 씨는 “삼일문고는 책과 쉼의 공간, 책 읽을 맛이 나는 공간배치가 되어 있다”며 그 매력을 설명했다. 삼일문고는 ‘㈜삼일’ 법인이 설립한 서점으로 작년 5월 20일 문을 열었다. 삼일은 1970년 구미 지역의 전파상으로 시작해 전자제품을 유통하는 향토기업이다. 삼일문고는 1991년부터 시작한 삼일장학문화재단에 이어 두 번째 문화사업이다.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는 “구미에서 문화사업은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하지만 삼일은 구미에서 성장한 기업이고 이 사업을 통해 그 혜택을 돌려준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색다른 서점삼일문고의 서가 배치는 일반적인 책 분류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 페미니즘, 구미 출신 작가 등 주제마다 묶어 둔 서가들이 눈에 띠었다. 유의정 씨는 “서가 배치가 책 종류가 아닌 주제별로 되어있어 독특하면서도 찾기 좋다”며 “페미니즘 도서를 좋아하는데 오늘 와 보니 앞 쪽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옛날에는 도서량이 많은 서점이 이기는 구조였지만 온라인 서점 시장이 열리면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며 “오프라인 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책을 만나게 하는 색다른 경험과 기획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일문고는 그림책 서가를 따로 운영하고 있고 시간제로 운영하는 만화 도서관을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어릴 때 책을 접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책을 소비할 확률이 낮다”며 “책의 매력에 빠지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 시작점이 그림책과 만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행복한 그림책 놀이터’라는 그림책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이숙현, 이진우 그림책 작가 부부는 처음 삼일문고가 만들어질 때부터 인연을 가져왔다. 이숙현 씨는 “그림책과 관련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서가에 팟캐스트에서 소개된 그림책을 모아놓기도 했다”며 “대표의 말처럼 이곳이 사람과 책을 잇는 공간이고 여러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 흔한 참고서를 찾기 힘든 것도 삼일문고의 특징이다. 김 대표는 “참고서나 스티커 북, 고속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출판사가 어디인지도 모를 책들을 파는 것이 이익이 나겠지만 그것들은 어디에나 있고 독자에게 도움이 안된다”며 “이용자들에게 더 좋은 질의 도서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점은 책만이 아닌 문화를 판다28일 저녁 7시 반 삼일문고 지하에서는 ‘세바퀴 자전거 인문학’의 첫 강연 ‘공부한다는 것-논어’가 열렸다. 이번 강연을 진행한 이윤호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서점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지역사회에 새로운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지방서점 몇 군데와 연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인과 함께 방문한 김보리 씨는 “구미에 직장이 있어서 시간을 보낼 장소를 검색하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며 “오늘 강연처럼 문화적인 요소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문고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 작은 방에서는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라는 주제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논문과 신문 기사에서 언급된 자살사례들을 모은 팻말들을 세운 예술가의 전시와 죽음과 관련한 책들이 함께 걸려있었다. 한쪽에 설치된 테이블에서는 자신의 장점과 지금까지 이룬 것을 서점 이용자들이 적도록 해 스스로의 삶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했다. 삼일문고는 이외에서 영화제, 작은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와 공간들을 제공하고 있다. 삼일문고의 중고서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본교 출판부 김용훈 기획편집실장은 “삼일문고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다보니 규모나 안정성이 독립서점보다 크고 대형서점이 갖추지 못한 특색을 갖춘, 그 둘 사이의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지역민들이 이런 공간을 고마워하고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삼일문고 ‘세바퀴 자전거 인문학’의 첫 강연을 이윤호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진행하고 있다.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 인터뷰

▲‘앞치마를 입고 찍고 싶어요’ 인터뷰 당시에는 평상복 차림이었던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는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이유로 사진 촬영을 앞두고 문고 앞치마로 갈아입었다.

Q.수많은 문화 사업 아이템 중에 서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A. 지난 2014년에 구미의 거의 유일한 대형서점이었던 60여 년 역사의 ‘춘양당’이 2014년 문을 닫았다. 저녁에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구입하는 것이 삶의 낙이었는데 갈 곳이 없어졌다. 야속한 마음도 들었지만 서점의 존속은 기존의 서점업을 해오던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점 운영을 하기에 자금이 있고 책을 사랑하는 내가 적임자란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월급이 80만 원대로 줄어들긴 했지만 이전 사업의 업무보다 더욱 즐겁고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책이 경험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래도 여전히 책이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도 좋은 문화시설이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최근 책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는데 책을 매입한 후에 보관해야하는 도서관의 특성상 유연한 대처가 힘들다. 또한 저녁과 주말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일과 후에 문화생활을 즐기려하는 지역민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해주기 어렵다.

Q. 현대사회에서 서점이 지역민들에게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A. 개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방에 독립서점 붐이 일면서 책 판매뿐 아니라 문화 활동으로 수입을 얻는 것이 시대적 화두가 됐다. 서점이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었다. 우리 서점도 이에 발 맞춰 콘서트작가와의 만남영화제 등 여러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사상의 다양성과 균형을 맞추는 것도 서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최근 외지에서 구미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 이유는 관(官)의 메시지만이 일방적으로 외부에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반하는 목소리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외지인이 많은 구미의 특성상 문화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채 한 색깔의 사상만 강요한다면 돈을 번 후에는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도시가 된다.

Q.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문화 사업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A. 오히려 지방이니까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너무나 거대해 한 개인의 노력이 티가 나지 않는 곳이다. 이 서점을 여는데 자본금 약 10억 원이 들었는데 이 돈으로 서울에서는 20평 아파트 한 채밖에 사지 못하고 그런 사업 아이템에는 대기업의 자본들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방은 다르다. 꿈꾸면 변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지방이 살아야 서울이 살 수 있다. 서울은 이미 포화됐다. 문화와 자연공간을 확보해 지방을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서 포화 상태에 놓인 시민들이 서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A. 서점을 하기 이전에 미대륙 횡단 자전거대회 등 험난한 도전들을 하면서 이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를 걱정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도전의 성공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처럼 이 서점이 끝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얼마까지 했는가가 관건이라 생각한다. 20년 후까지 삼일문고가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 없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역량껏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삼일문고의 이상향은 지역민이 편하게 쉬고 마음을 여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어둡지만 그 어둠 속에서 시민들이 닫히지 않고 열리도록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특히 아이들이 최근 배울만한 멘토나 어른, 존경받을 인생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책을 통해 실제 인물 혹은 가상 인물이라도 닮고 싶은 삶을 찾게 하고 싶다.

문화장착집단 공터_다

▲지난달 28일 저녁 공터_다의 제86회 정기공연 ‘템프 파일’을 위해 극단 배우 정우혁 씨가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저녁 문화창작집단 ‘공터_다’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 연극제’의 예선격인 ‘경북 연극제’의 심사를 받는 공연 준비로 한참 분주했다. 출품 작품은 제86회 정기공연인 연극 ‘템프 파일’이었다. 오후 8시, 공연을 앞두고 지하 소극장으로 내려가는 입구는 꽤나 긴 줄이 이어졌다. 이번 연극을 보러온 구미시민 김미영(49) 씨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층이 점점 늘고 있다”며 “좁은 구미 연극판에서 구미의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기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1시간 동안의 공연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2층 갤러리 DA에서는 김기중 삼일문고 대표가 기획한 전시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구미 출신인 박도 작가가 쓴 ‘한국전쟁’과 ‘미군정 3년사’에 대한 전시회로 저서에 실린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공터_다 황윤동 대표이사는 “김 대표와는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를 넘어 교류를 하고 있다”며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중개자의 역할을 맡아 삼일문고에게 예술가를 주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3층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무실과 연습공간으로 쓰던 이곳을 구미시민들의 전시 대관 공간으로 이용토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터_다의 역사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미의 연극판은 1986년부터 그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IMF 사태를 겪으면서 대여섯 개에 달하던 아마추어 극단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고 결국 2001년 ‘구미 레퍼토리’라는 이름의 극단으로 통합했다. 황 대표는 “구미 극단이 생존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전업 연극인이 아닌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며 “전업 연극인이 살아갈 수 있는 극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극장과 문화예술기업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4년 대한민국 연극제의 전신인 ‘전국 연극제’의 은상 수상 상금으로 지금의 소극장을 구했고 2009년에는 구미에서 열린 전국연극제를 성공적으로 기획하면서 문화예술기업으로 거듭나는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2011년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하면서 원래 소극장의 이름이었던 ‘공터_다’를 새로운 이름으로 해 사단법인 문화창작기업 공터_다로 이름을 바꿨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극단 ‘안동’의 김신근 대표는 “지역도시에서 소극장을 갖춘 몇 안되는 극단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연극제에서도 인상적인 이력을 남겼다”며 “이외에도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난 공터_다의 사례는 지역극단의 롤모델이다”라고 말했다. 공터_다는 ▲공연제작사업 ▲예술교육사업 ▲축제기획사업 ▲해외교류사업 등 크게 4가지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공연제작사업은 말 그대로 연극 제작으로 매년 3회 이상의 정기공연과 기획공연을 진행 중이다. 축제기획사업으로는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 ‘구미 아시아 연극제’, ‘청소년 연극제’ 등 연극관련 축제나 관에서 수주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 연극제의 경우 구미 지역의 고등학교 연극 동아리들이 꼭 참여하는 연극제가 되는 등 구미 지역의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해외교류사업의 경우에는 일본 극단과 협업해 연극을 공동제작 하거나 연극 투어를 돌았다. 현재는 중국과의 교류도 추진 중이다. 예술교육사업은 3층의 상상공간 ‘놀_DA’에서 주로 진행된다. 직장인 상대의 연극 수업주말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가족 예술 교육 프로그램 등이다. 황 대표는 “구미는 지금까지 경직된 도시였다”며 “우리가 시행하는 문화 교육을 통해 다시 연극이나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그 경직을 풀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운영 극단의 수도 늘렸다. 청소년 극단인 ‘꿈꾸다’와 일반인 극단인 ‘늘봄’, ‘날다’가 그것이다. 황 대표는 “구미 극단의 통합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서 모였다”며 “공터_다가 성장한 상황에서 이제는 극단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작년 꿈꾸다 4기 회원으로 활동한 경구고등학교 3학년 진수아 학생은 “연극 놀이를 통해 교육을 받고 그 후 우리끼리 연극을 만들어 요양원, 도서관 등을 찾아가는 공연을 했다”며 “연극을 배우기 위해서는 대구 등의 대도시로 가야하는 현실 속에서 공터_다는 나에게 소중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예술교육을 받은 이들이 관객이 되거나 극단의 단원이 되는 등 그 인연은 지속되고 있다. 황 대표는 “우리는 ‘예술과 함께 꿈꾸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모토로 생활연극을 추구하고 있다”며 “스타를 키우거나 테크닉이 훌륭한 연극을 만드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와 문화란 가치를 나누면서 연극으로써 도시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kmh16@knu.ac.kr권은정 기자/kej17@knu.ac.kr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