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은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대학 내 신문’을 일컫는다. 그러나 때로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기사를 담기도 하고,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 대학신문이 지니는 가치이다. 그렇다면 해외 대학의 학보(學報)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또 앞으로의 대학신문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까?

이시철 교수(행정)에게 미국 예일대신문(Yale Daily News)의 사례를 통해 대학신문의 가치는 무엇인지, 대학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8. 2. 수십 명의 예일대 학생들이 캠퍼스 집회에서 대학 측을 성토한다. 모임의 공식 주제 “예일 30조 원의 내막(Inside Yale’s $27,000,000,000)”에서 보이듯 예일대의 막대한 적립금이 화석연료 산업, 민간 교도소 등 나쁜 쪽으로 투자 운용된다는 격렬한 비판인데, 대학 측에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자금투자 책임관(Chief Investment Officer, 이하 CIO) 명의로 3월초 예일대신문(Yale Daily News, 이하 YDN)에 낸 별도 기고문에서 집회 자체는 물론 성토대회 기사를 썼던 YDN 취재기자/편집진에까지 성난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 사실관계와 취재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이제는 대학신문과 대학행정 고위관계자 간 싸움이 되었고, 이 CIO가 내뱉은 모욕적인 언사 등 전체 이메일 내용을 신문사가 공개해 버리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2018. 4. 예일대 학생회장 선거, 전체 학부생의 43%인 2,500명쯤이 선거에 참여했고 총학생회장 후보로 5명이 출마했다. 예일대의 수많은 학생 단체, 동아리 가운데 회원수가 많은 모임에서는 공식 후보지지 선언을 한다. 그런데 가장 많은 단체의 지지를 얻은 학생이 아니라, 예일대신문이 사설로 지지선언을 해 준 인도계 미국인 여학생이 38% 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외에도 직선 부회장, 이벤트 국장(Events Director) 모두가 YDN이 힘을 실어준 후보들이었다. 대학신문은 특정 후보지지 이유로 경험, 능력, 열정을 들면서, 특히 학비보조 자문, 정신건강 대응책으로 아이비리그 대학들과의 실질 협력 등 공약의 현실성에도 점수를 줬다. 타 후보에 대하여는 칭찬과 함께 지지하기 어려운 이유도 밝힌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현행 법령상 일반 신문도 공직선거 후보자를 공식 지지할 수 없다)

두 장면 모두 예일대신문의 역할과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사례는 독립 언론으로서의 위상과 책임 이슈로 연결되고, 둘째는 YDN에 대해 학생 대다수가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으며, 그에 어울리는 전문 역량을 신문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1701년에 설립된 예일대는 1878년 1월 발간된 대학신문 YDN이 미국 대학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신문’이라 주장한다. 10년 전 쯤 필자가 머물렀던 매사추세츠 주립대는 그들의 대학신문 Massachusetts Daily Collegian이 뉴잉글랜드 최대의 발행부수임을 내세운다. 하버드 대학신문 Harvard Crimson은 ‘가장 오랜 기간 끊임없이 발간되어’ 왔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논란이다. 어쨌든 역사와 스케일이 부럽긴 하다. 

미국의 많은 대학과 비슷하게 예일대신문도 대학당국으로부터 행정/재정/편집 모두가 독립돼 있다. 우리나라 대학신문과 달리 발행인이 총장이 아니다. 운영 예산 또는 주간교수의 지원(혹은 간섭)을 받는 일도 없다. 온전히 학부생 중심으로 취재/제작/배포까지 되며, 당연히 무료이지만 일반인/동문 등이 따로 배달을 원할 경우 1년에 290달러를 받는다. 이는 대학신문에 대한 기부/지원의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싶다. 주된 수입원으로서 상업광고는 꽤 하는 편이다. 학기 중 월~금 매일 발행하는데, 주말판(WEEKEND), 월요 스포츠특집(Sports Monday)을 내며, 별도로 잡지(Daily News Magazine)도 따로 낸다. 특별한 이벤트, 예컨대 하버드와의 풋볼 정기전(Harvard-Yale Game Issue) 특집이나 신입생판(Freshman issue), 졸업식판(Commencement Issue)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약 50명의 학부생이 자원봉사로 신문을 만들어 내는데, 편집장이 최고 책임을 지는 가운데 일반 신문과 비슷하게 오피니언/대학/도시/과학/문화/스포츠 등 주제별, 그리고 생산/사진/일러스트레이션/웹디자인/광고 등 기능별로도 나뉜다. 경영 측면에서는 단 1명의 풀타임 일반인 관리직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학부생이다. 다시 말하면 기자나 칼럼니스트가 아닌 학생도 많다는 얘기다. 글쓰는 자리의 경우, 신입 6개월 동안 “heeling”(졸졸 따라다니기) 기간을 거친 후 점차 책임/자율의 영역이 넓어지는 건 아마 우리 대학신문과도 비슷할 것이다. 여름에는 광역권 고등학생들을 위한 여름 저널리즘 학교도 개설하는 게 특이하다.

예일대신문 졸업생의 면면은 화려하다. 부시, 클린턴 등 대통령 5명을 배출한 예일대에서 학생시절의 YDN 기자/스탭 경험은 아마도 특별했을 터이다. 상하원의원, 장관 등 정치인도 많지만 역시 언론계 쪽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타임지 설립자를 비롯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저명 기자, 칼럼니스트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우리 대학신문의 기자 출신으로 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는 동문이 많은 것과 비슷하다.

YDN이 다루는 기사/칼럼의 대상은 예일대, 뉴헤이븐, 코네티컷에 관한 것으로 제한한다. 주로 학생들이 글을 쓰지만, 학장/처장급 등 학교 보직교수나 이른바 스타 교수들도 자주 필자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잦은 인터뷰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Yale-NUS 즉 예일대-싱가포르 국립대가 연합해서 만든 인문교양대학에 대한 비판성 기사/의견이 나가자 부총장급이 직접 반론 의견을 제기했다. 며칠 전 총학생회장 선거 때는 예일 학부대학장(Yale College Dean)이 직접 투표권고 글을 싣기도 했다. 필자는 운이 좋아 경북대신문과 예일대신문 양쪽에 글을 내는 영광을 누렸는데, 지난 11월 YDN 칼럼의 초고에 예일대/뉴헤이븐 얘기가 많지 않다고 내용을 보완해 달라 요청받았다. 그래서 제목과 내용 초반에 예일대 얘길 새로 더했더니 통과! 교수들끼리 하는 얘기로 어렵게 학술논문을 쓰면 10명도 안 읽는데, 신문에 내면 적어도 2천 명은 읽는다지 않는가. 칼럼 게재 후 의외로 많은 사람이 캠퍼스 안팎에서 말을 걸어온다. 우리 땅의 교수들은 얼마나 대학신문에 글을 쓰려 하고 또 읽을까.

이 동네 학생 편집진/기자들의 실력은 알아줄 만한데 우리 학교 신문도 그러리라 믿는다. 앞서 투자담당 CIO와의 맞싸움 얘기도 했지만, YDN 편집진의 노력과 희생이 대단하다. 학생이든 교수든 의견 초고를 쓴 후 최종 게재까지 2~3회 온/오프라인으로 논의하게 되는데, 사소한 행정사항부터 전반적 글의 흐름이나 사실관계 확인, 최종 교정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정성을 보여준다. 발간 하루 전날엔 직접 신문사로 와서 단어 하나하나까지 함께 최종 교정하도록 요구한다. 내 칼럼의 경우에도 사설/의견란의 책임 에디터가 개별 상대했는데, 4년 전 학술서 출간 때 만났던 우리나라 유수의 출판사 프로 편집진을 다시 대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땅, 우리 대학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쉽사리 예일이나 외국 명문대학의 학생신문을 비교하면 안된다. 오랜 전통이나 대학의 연구/교육 역량도 쉽게 견줄 수 없다. 우리 대학과 대략 비교하면 학생수는 2:1로 우리가 많지만, 전임교수 수는 1:4쯤으로 역전이다. 우리 학생들이 힘든 것인가, 교수들이 더 많은 학생들을 상대하니 행복한 것인가. 경북대 캠퍼스 주위를 넘나드는 돈이 연간 6천억 원쯤인데 예일대의 예산 규모는 약 4조 원이다(적립금 30조원은 별도).

그럼에도 현실을 짚고 장기적인 꿈의 형태로나마 그려볼 만한 게 있다. 간명히 자원, 시스템, 스토리로 나누어 본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물론 사람이다. 대학신문의 주인인 우리 학생들이 워낙 바쁨에도 불구하고 매주 신문을 만들어내는 노력과 성과를 치하한다. 예일이나 다른 미국 대학처럼 주 5회+주말판 등은 현재의 자원으로는 무리임에 틀림없다. 대학 측에서 돈을 많이 대주고 장학금도 늘린다면 기자/제작 인력의 숫자와 품질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지만,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 재정/편집의 독립성 문제가 걸린다.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요즘은 대학 측이 직접 사설/칼럼 등 편집에 대해 직접 통제하는 일은 없겠지만, 논조와 재정/인사는 결국 연결되기 마련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한민국의 주요 일간지를 보라. 

시스템은 자원과 연결된다. 재정 독립이 요원하고 당장의 형편이 빈약하니 쉽사리 기자나 독립 제작 인력을 더 뽑을 수도 없다. 자주 발간하지 못하고 방학에는 쉬니 목소리가 약하고 독자층도 제한되며 악순환으로, 교수는 물론 많은 학생들조차 대학신문을 열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어려운 환경이지만, 열성 넘치는 학생자원을 뽑아서 좋은 시스템으로 교육시켜 훌륭한 학내 언론인이 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 얼마간 기반과 성과를 먼저 보인 후 외부 광고 확대, 별도 사업, 학내외 모금활동까지 구상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학신문을 경영수익 모델 삼아 벤처 투자의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생모임은 없을까. 혼자 어려우면 연대하라고 했다. 우선 다른 대학신문, 예컨대 영남권 대학신문은 물론 전국 거점국립대 학생신문과의 실질 협력은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일대를 포함한 Ivy League 8개 대학은 각 신문마다 아예 별도의 Ivy 난을 두기 때문에 예일대신문에도 하버드, 코넬, 콜롬비아 등의 기사가 실린다.  물론 이 모든 것과 동시에, 정론지로서 의미와 재미를 함께 더하여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스토리 - 학생들이 특별한 보수 없이 자생 동아리처럼 운영하다 보니 시간과 에너지 동원에 한계가 있지만, 결국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기사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원고를 청하는 수밖에 없다. 학생과 교수집단이 어떻든 더 읽고 더 써 보려고 만들어야 할 터이다. 예일대신문에서는 가끔 특종, 독점취재, 기획 기사가 뜨는데, 일간지 등 다른 언론에 나오지 않거나 덜 다뤄진 스토리이다. 2018년 적립금 투자관련 대학 CIO 논쟁(결국 사과를 받아냈음), 학생회장 선거 기사는 물론, 2016년 기사로 예일대 선배인 John Calhoun 전 부통령이 노예제도를 옹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으로 붙여진 기숙대학 하나를 대학측이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는 기사(얼마 후 이름이 바뀌었음), 심지어 2009년 대학원생 1명이 실험실에서 살해된 소식까지 제일 먼저 전했다. 초명문 예일 교수들의 수많은 연구 업적 요약소개, 세계적인 명사(앨 고어, 힐러리 클린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의 강연 전후 소식은 YDN 지면에서 가장 먼저 독점으로 발견된다. 지난 1월 기획기사에서는 캠퍼스 범죄 등을 주제로 예일대와 뉴헤이븐 시청과의 갈등/협력 역사와 함께, 교수/공무원 등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바람직한 방향을 짚어내기도 했다. 반면 주말판은 ‘경망 발랄’스럽기까지 한 내용으로 뒤덮일 때도 많은데, 예일대생들도 여전히 학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정도다. 만화, 신변잡기, 맛집 순례, 심지어 어떻게 하면 짝을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까지 쓴다. 대학신문, 보통은 심각하게, 가끔은 재미있게!

이시철 교수

(행정)

* 2017~2018 예일대 Fulbright Visiting 

  Fellow로 8월까지 근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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