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과 13일, 기획기사 취재를 위해 강정고령보를 방문했다. 강정고령보에는 보도블록으로 된 넓은 들판이 있다. 대구 시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지평선’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탁 트인다. 그리고 그 지평선의 끝에는 도자기를 형상화했다는 건축물 ‘디 아크’가 있다. 이는 동양 최대 규모의 수문과 함께 어울린다. 밤이 되면 디 아크와 평지 곳곳에서 나오는 불빛이 공원을 더 아릅답게 한다. 

이곳에서 전동 휠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광경과 정말로 잘 어우러진다. 걱정과 고민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지평선을 누비기 바쁘고, 곳곳의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웃음꽃을 피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여기만큼 평화로운 곳도 없다. 심지어 시내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마치 딴 세상에 온 기분이 들게 한다. 주말에 외출하기 딱 좋은 장소. 두류공원이나 동성로처럼, 강정고령보는 ‘편안한 장소’로 굳혀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강정고령보의 풍경에 감탄하고 있던 중, 문득 공원 입구에 풀밭을 향해 반쯤 누운 비석이 보였다. 거기에는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강정고령보를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제서야 이곳이 4대강 사업의 주요 항목 중 하나인 ‘강정고령보’라는 것을 상기했다. 

아직까지 낙동강의 상황은 좋지 않다. 강정고령보도 다른 수문과 같이 지난해 6월부터 수질·생태계 등의 모니터링을 받았다. 그러나 강정고령보 근처에 대규모 취수장이 있기 때문에 수문을 완전히 개방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수문을 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류 농도는 오히려 올라갔다.(영남일보 6월 30일자 보도 “‘대구 취수원’ 강정고령보 녹조 도리어 늘었다” 참조) 수문 개방으로 인한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강변의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강의 모습과 처참한 강의 상태는 대비된다. 강 옆에서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자유를 표방하는’ 예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기자 역시 이 풍광에 잠겨 그냥 ‘좋은 장면’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강에 있는 물은 언젠가는 마셔야 하는데 말이다.

문득 편안한 장면에 빠져 중요한 문제를 놓칠 뻔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남긴 기록을 보고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를 발견한 것처럼 아무리 지엽적이더라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작게나마 기억할 곳을 만들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강정고령보 역시 화려하고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좋지만, 거기에 다른 가치까지 담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듯이, 오늘도 강정고령보에선 방송이 나온다.

“잠시 후 수문을 개방해 유속이 빨라지고 유량이 대폭 늘어날 예정입니다. 낚시와 물놀이 등을 하는 시민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광희

탐사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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