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고등학교 졸업식, 학교 정문은 어김없이 꽃다발을 파는 아주머니들로 붐볐고, 운동장은 졸업생들의 들뜬 목소리로 가득 찼다. 당시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재수학원을 알아보기 바빴다. 친구들은 마주치기만 하면 대학을 물었지만, 나는 재수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참했던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9살, 실패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이였다. 그렇기에 대학 불합격은 내 앞에 놓인 큰 벽이었다. 그 벽은 나를 가로막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등지고 서서 외면하려 해도 큰 벽의 그림자가 내 눈을 가려 돌아가지도 못하게 했다. 나는 큰 충격과 자괴감에 빠졌고, 이 낯설고 무서운 감정들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웃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를 포장했다.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졸업식 날, 나는 여느 아이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꽃다발과 선물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웃는 모양새를 할 뿐,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식적인 졸업식이 마무리됐다. 그 후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됐고 나름대로 잘 지냈다. 나의 감정들을 지우고 가면을 쓰니까 모든 것들이 편했다. 그렇게 3개월, 6개월이 흘렀다. 부작용은 그 시점부터 시작됐다.

“채빈아, 많이 힘들지” 6개월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건넨 첫 마디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혀 힘들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는 힘들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니, 감정이 없었다. 

재수학원 친구들은 나를 보면 줄곧 멘탈이 강한 친구, 내면이 단단한 친구라 말했다. 그 말들이 내심 싫지는 않았다. 마치 내가 힘든 시기를 스스로 이겨낸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힘들다 칭얼대고 울고, 자신의 감정을 다 표현해내는 그 친구들이 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친한 지인들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보면 하나같이 “왜 이렇게 감정이 없어졌어, 기분 좋은 거 맞지?” 등 이상한 말들을 하기 일쑤였다.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한 친구가 나에게 “고생 많았어”라 말을 건넸다. 이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나의 눈물이 낯설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 친구는 “왜 감정을 억누르냐”며, “울고 싶으면 울라”고 했다. 그때 알게 됐다. 나는 힘들었다. 하지만 몰랐다. 정확히 말해 외면했다. 가면을 쓰고 감정을 삭제해버리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겉은 멀쩡하지만, 내면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지속됐다.

희로애락-4가지의 감정, 그중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사람은 완성되지 않는다. 나쁜 감정도 나의 일부라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다. 하지만 매 순간 기분이 어떤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끝에는 꾸며진 감정의 가면을 벗고 ‘윤채빈’이라는 진실된 감정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윤채빈

탐구팀 정기자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