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가 공들여 쓴 글을 즐겁게 읽고, 기억해주는 것만큼 가슴 떨리는 일은 드물겠지요.” 인터넷 플랫폼이나 독립출판등 글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증가하는 가운데, 누구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하는 이들이 있다. 등단 여부나 글을 쓴 경력과는 상관없이 글을 투고 받는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문예지 영향력(이하 영향력)’의 편집자 은미향 씨와 김정애 씨를 만나 현대사회에서 글을 쓰는 것의 의미와 ‘영향력’의 역할을 들어보았다●

 

‘영향력’의 시작

영향력은 2016년 2월에 첫 호를 출간하기 시작해서 올해 9월에 10호가 출간됐다. 영향력 1호는 은미향 편집자와 김은진 편집자가 시작했고 2호부터 김정애 편집자가 합류했다. 김은진 편집자는 5호를 마지막으로 떠났고 6호부터는 은미향 편집자와 김정애 편집자, 2인 체재로 출판을 진행했다. 은미향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대구 고향집에서 쉬고 있을 때, 김은진씨가 올린 영향력 투고 모집 글을 보고 연락했다”며 “김은진 씨와 만들고 싶은 책에 대한 구상이 비슷해서 함께 영향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육아로 바쁘게 지내던 김정애 씨는 영향력 첫 호에 투고한 것을 계기로 영향력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키친테이블라이팅

영향력은 키친테이블라이팅(kitchentablewriting)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소설가 김연수가 자신의 산문에 쓴 ‘키친테이블노블’이라는 표현에서 따온 것으로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이 부엌 식탁에서 일과를 마치고 소설을 쓴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키친테이블라이팅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김정애 씨는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시나 수필 등 모든 종류의 글쓰기를 아우르자는 의미에서 키친테이블라이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며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키친테이블라이터라고 부르고, 영향력은 키친테이블라이터들에게 투고를 받는 잡지”라고 말했다. 두 편집자 역시 키친테이블라이터다. 은편집자는 회사를 마치고 소설을 쓰고, 김정애 씨는 육아를 마치고 시를 쓰고 있다. 은미향 씨는 “약 9개월간 따로 일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었는데, 상상했던 것만큼 글쓰기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며 “나는 낮에는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그 외의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니 더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은미향 씨에게는 직업을 갖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계에 대한 고민과 사회로부터의 고립감이 글쓰기에 집중하는데 방해로 작용했고, 오히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환경이 글을 쓰기 위한 자극이 됐다. 키친테이블라이팅은 글쓰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애 씨는 “우리나라에서 전업 작가의 비율은 매우 낮아 온전히 글만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며 “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고 글을 쓰면 글에 경험이 잘 드러난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계간문예지 ‘영향력’

김정애 씨는 “대학시절 문학을 배우고, 글을 쓰다가 사회로 나왔다”며 “일과 육아에 치이면서 글을 쓰지 않고 독자로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싶어지더라”고 말했다. 은미향 씨는 “등단을 하지 않고, 청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지면을 만들고 싶었다”며 “결국은 나도 영향력을 통해 3개월마다 꾸준히 편집준비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애 씨는 “시인 기형도 씨도 ‘청탁’이자신이 작품을 쓰는 원동력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좋은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독자와의 만남도 중요한 것 같다”며 “영향력을 통해서 내 글을 만나게 될 독자들을 생각하면 흐름이나 문장에 더 공을 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영향력은 ‘문예지’로 ‘시, 소설(단편·장편·초단편 등), 수필’ 등의 문학을 다루고 있다. 은미향 씨는 “문학을 규정하는 시각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므로 그 시각들을 포괄하는 문예지를 만들고 싶다”며 “그러나 너무 많은 세부장르를 다루면 현재로선편집자들이 피드백을 하거나 편집을 하기에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분야를 한정해 투고 받는다”고 말했다.

 

독립출판

영향력은 편집자 2명이 독립출판으로 제작하는 잡지다. 독립출판물은 대개 1인 출판으로 제작되며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독립출판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가볍고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김정애 씨는 “영향력의 문학작품들은 쉽게 쓴 글이 아니라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편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편집자들 스스로가 아마추어 느낌이 난다고 여겨지는 것이 싫어서 기본적인 교정·교열을 넘어서 꼼꼼하게 피드백을 거쳐 출판을 한다”고말했다. 은미향 씨 역시 “두 명의 편집자가 직접 편집하고 제작한다는 점에서 독립출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며 “그러나 목표는 정통문예지로,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전달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과 종이책을 통한 소통의 가치 하상욱, 글배우 등과 같은 SNS 시인이등장하면서 SNS에 올리는 글귀도 시문학으로 여길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임수영 교수는 한국시학연구에 실린「디지털 시대의 독자는 어떻게 시로 소통하는가?」에서“SNS 시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환경과 형태를 변경한 ‘시’이다”고 한 바 있다.김정애 씨는 “SNS나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짧은 문장들도 작가의 감정을 담아내고 독자에게 내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면 문학”이라며 “다만 아직까지 SNS시의 형태가 단순하고 독자들 역시 잠시흥미를 가지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은미향 씨는 “온라인공간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집중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남는 것처럼,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종이책과 전자책은 다른 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편집자는 SNS나 전자책을 통한 문학에 대한 접근은 문학의 작가 및 독자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향력의 편집자들 역시 SNS를 통해서 처음 만났고, 독립출판물이라는 특성상 영향력도 온라인을 통해 독자들에게 먼저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종이책으로 문학작품을 접해온 두 편집자는 종이라는 전통적인 매체로 문예지를 제작하고 있다. 그들은 종이가 문학을 전달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은미향 씨는 “개인적으로 종이책을 통해 문학을 접해왔기 때문에 종이책을 기반으로 하는 서체나 종이의 질감, 면 편집 등이 작품 전달에 적합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김정애 씨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로 단순히 나열된 글을 읽는 것을 넘어 내용을 사유하고 내면화시키는 작업”이라며 “손으로 종이책을 넘기며 문학을 접하는 것은 그 작업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상을 글에 담다

영향력은 한 호당 2·30여 편의 작품을 싣고 있다.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진정성’과 ‘완성도’이다. 그 중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진정성이다. 은미향 씨는 “솔직히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글’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작가의 개성에서 나오는 진정성과 완성도를 갖춘 글이라면 글을 읽고 영향을 받는 독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애 씨는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문장

이 흠잡을 데 없는 글보다는 읽었을 때, 마음에 여운이 남는 글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며 “그래서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은 분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셔서 선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애 씨는 “산 속이나 집 안에서 혼자 글만 쓰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작가가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글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며 “독자들도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후자에 더 진정성을 느끼고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작품으로서의 각색은 있겠지만 그 속에 담긴 자신의 일상을 통해서 작품에 진정성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김정애 씨는 “시든 소설이든 단순한 이미지로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 작품에 힘이 실리게 된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우리에게

사람이 글을 쓰고 문학작품을 읽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자기 이해’를 하기 위해서다. 글쓰기, 특히 문학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가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김정애 씨는 “글을 쓰는 과정에는 글을 쓴 ‘나’와 작품 속에 화자로 있는 ‘나’, 그리고 글을 읽는 ‘나’가 존재하는데, 이 셋은 모두 다르다”며 “하지만 내가 쓴 글을 통해서 세 명의 ‘나’는 서로 일치하게 되고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은미향 씨는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못난 인간인지,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한 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며 “글쓰기를 하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인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은

미향 씨는 “이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나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회의하던 것이 조금 약해졌다”며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로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 편집자는 모두 글쓰기와 문학이 그들의 일상 속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문학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문학가, 즉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춘문예나 권위 있는 문예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다. 은미향 씨는 “우리나라는 등단제도가 있기 때문에, ‘문학가’라고 해서 다 똑같은 위치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현실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작가라는 본질적인 위치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어떤 매체나 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느냐에 따라 작가에 대한 평가나 인지도에서 차이가 나기도한다. 김정애 씨는 “중앙문단에서 등단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며 “등단 작가라고 해도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미등단 작가만큼 적은 작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영향력은 기존의 문학잡지와 제작방식이 다르고 등단·미등단 작가를 구별하지 않고 투고를 받기 때문에 기존 문단에 반하는 잡지냐는 의문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김정애씨는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등단을 해야 작가라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며 “영향력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을 독자에게 보일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기존 질서에 대항하기 위한 잡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판타지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리포터’를 쓴 J.K. 롤링 작가는 12개의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했으나 블룸즈버리(Bloomsbury)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면서 ‘작가’가 됐다. 국내에서도 웹진(webzine), 웹소설, E-book 등이 발달하면서 등단을 하지 않아도 책을 출간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을 모두 작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본지 1606호 ‘10분이면 읽는다! 보는 문학 웹소설’ 참조) 영향력 역시 등단과 비등단,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 작가와 지망생 같은, 경계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영향력에 글을 싣는 사람 모두를 작가로 대우하고 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김정애 씨는 “등단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알리기 어려운데, 사실 등단을 한 사람들도 글을 실을 지면이 부족하다”며 “영향력의 역할은 글을 쓰고, 독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투고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영향력’에게 기대하는 영향력은?

영향력의 편집자들은 영향력이 사회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은미향 씨는 “독자들이영향력의 작품을 읽고 어떤 종류로든 감정이나 행동에 사소한 변화가 온다면 좋겠다”며 “그 변화가 긍정적인 내용이거나 독자들도 글을 쓰고 싶다는 방향이라면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애 씨는 “영향력 외에도 다양한 신예 문예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므로 작가나 독자들이 굳이 영향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독자들이 새로운 작가 한 분의 글을 만나고, 그 만남을 즐길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 영향력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문예지 영향력’은 첫 호부터 지난 9월에 출간된 10호까지 색상과 책 사이즈의 차이만 두고 표지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했다. 영향력의 표지 로고는 편집자들의 지인인 정규아 씨가 만들었다. 로고는 영향력의 모음인 ‘ㅕ/ㅑ/ㅕ’를 형상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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