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익숙함을 느낄 때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고 한다. 타지 생활을 하는 중 잠시 집에 들러 집밥을 먹을 때가 그러하고, 가슴 안주머니에서 언제나처럼 볼펜과 수첩을 꺼내들 때가 그러하고, 요즘에는 듣기 힘든 고등학교 시절 별명으로 불려질 때가 그러하듯 말이다. 

나 역시 이러한 익숙함에 극도로 취해있는 사람 중 하나다. 포근한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낯설음에 적응해야 하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어찌 보자면 당연한 이 과정이 나에게는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이런 탓에 9년째 고등학교 추리닝 바지를 걸치고, 2013년 출시된 핸드폰을 사용하며, 입대 전 맞춘 안경을 낀다. 특별한 문제 없었다면 오래 사용한 물품에 유달리 애착이 강한 한 사람의 일화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추리닝 바지는 한쪽 주머니가 닳아 물건이 빠지기 십상이고, 핸드폰은 추운 날씨를 더는 버티지 못해 취재를 하는 도중에 제멋대로 꺼지며, 책을 읽을 때 안경을 꺼내어 써도 눈은 여전히 어둡다. 이쯤 되면 마땅히 보내줄 때가 온 익숙함들을 내 고집으로 끌어안고 버티는 형국이다. “제발 좀 새것을 장만하라”는 주변의 조언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타인들은 이미 나를 구제불능으로 여길는지도 모르겠다.

학보 기자를 하면서 학내 크고 작은 사안들을 이전보다 집중해서 보게 됐다. 그러다보면 느끼는 것이, 학내에는 나만큼이나 고집이 강한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이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전부터 그래왔다는 익숙함에 관성적으로 지켜진다. 신입생들에게 우스꽝스러운 장기자랑을 강요하고, 음성 흡연구역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며, 학과 행사에 불참하는 학생들로부터 과한 액수의 학생회비를 요구하는 것 등이 그렇다.

혹자는 이전부터 이어져온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말하기도 한다. 소속감 고취와 동질감 형성이라는 나름의 장점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그래 왔고,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해서 다 미풍양속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구멍난 추리닝 바지와, 기면증에 걸린 핸드폰과, 패션 아이템으로 전락해버린 안경이 진품명품에 출연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낡은 소지품들이 언젠가 새로운 것으로 대체돼야 하듯, 학내의 낡고 그릇된 악습들 역시 변화한 시대에 맞춰 새롭게 단장될 필요가 있다.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내 핸드폰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가끔 보면 괘씸하다가도 저 녀석이 무슨 잘못이 있나 싶다. 놓아주지 않는 것이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다.

여하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큰맘 먹고 소지품들을 대거 교체하기로 결심했으나,  그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떠올라 잠시간의 유예기간을 갖도록 했다. 다음 주면 벌써 11월이다. 내년에 교체하면 나름대로 의미 있고 시원한 이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악습들을 끌어안고 있는 학내외 구성원들도 조금 이른 신년 다짐을 해보도록 하자. 이르면 이를수록 좋지만, 늦어도 내년부터는, 학내외 여러 악습은 그때 그 시절 이야기에서만 만나는 것은 어떨까.

장은철

탐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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