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 산에 오른 까닭은? - 영남 선비의 유산문화(遊山文化)」(정병호 교수, 한문) 강연을 듣고

얼마 전에 대학원동을 지나다 우리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2018년 릴레이 인문학 ‘인문학으로 읽는 지역과 현실’ 강연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보게 됐다. 포스터에는 여러 강좌들의 강사·제목·일시·장소 등이 표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꼼꼼히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사진을 찍어갔다. 시간이 지나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포스터를 다시 꺼내보았다. 12개의 강좌 중 흥미가 생기는 주제 위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 중 처음으로 듣게 된 강좌가 바로 10월 30일 오후에 있었던 정병호 교수님의 ‘선비들, 산에 오른 까닭은? -영남 선비의 유산문화(遊山文化)’이었다. 이 강좌는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 지역의 산들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앞산 공원, 앞산순환도로, 앞산터널 등 매일 부르고 지나다니는 앞산의 명칭이 ‘대덕산’이라는 것, 지금 반월당 지역이 원래는 아미산이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침산, 오봉산, 수도산, 두류산 등 대구의 여러 산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듣는 내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아 놀라기도 했다.이후 교수님께서는 본론으로 들어가 조선 중기 이후에 선비들이 유산(遊山)하는 문화가 매우 성행했음을 설명하셨다. 사실 강좌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왜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이나 ‘유람’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고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셨는지, 이 부분에 대해 유학의 대가인 공자·맹자·주자·퇴계 등의 인물들이 한 말들과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관점을 들어 설명해주셨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산을 오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산에 올라가는 것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고 한다. 유산이란 산에서 노니는 것, 심성수양의 직접적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 발 한 발 아래서부터 위로 산에 오르는 것을 차근차근 책을 읽어나가는 것(공부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겼다. 또 산에 오르며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면 책을 읽을 때처럼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게 됐고, 물이 흐르는 곳에 가면 책을 읽을 때처럼 사물의 근원을 알게 된다고 생각했다. 즉, 유산이라는 것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심성수양을 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청량산과 퇴계의 예를 들어 설명해주셔서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유산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었는지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라’고 말을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서로 나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노는 것이 곧 공부이고, 공부하는 것이 또한 노는 것이었던 선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결같은 순수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이번 강좌는 한문학과 학생으로서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가,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나 다시 학교에서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된 것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 듣고 싶은 강좌가 여럿 남아 있는데, 다른 강좌들에는 어떤 재미와 유익함이 있을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정지아(인문대 한문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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