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 사대부의 노래인 정가(正歌)를 아시나요?” 정가는 예악을 겸비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인격 수양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우리 전통 음악이다. 김향교 청구정가문화원 대표(예술대 국악 94)는 정가 중 하나인 영제시조(대구시 무형문화재 제6호)의 전수교육조교이자 가곡(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이수자로서 국악의 전통을 잇고 있다. 김 대표는 영제시조의 이론 체계를 세우고, 본교에서 강의를 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 대표를 찾아가, 그가 영제시조를 접하면서 시작된 국악인으로서의 삶과 현대사회에서 국악의 가치를 들어봤다●

Q.다른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본교 국악학과에 진학한 계기가 무엇인가?

중·고교 시절부터 국어국문학과에 재학할 때까지도 고전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시조나 가사 등을 좋아했고 국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장구를 연주하기도 했다. 국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스승인 일관 이기릉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대학교 졸업 후인 1987년에 내 전공인 시조와 관련된 강연이 열려 참석했다. 그런데 시로서의 시조를 다룬 것 인 줄 알았던 그 강연은 시조에 음을 붙여 부르는 시조창 강연이었고, 그렇게 영제시조와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 처음 접한 영제시조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 후 선생님에게 영제시조를 배웠고 1993년에 국악협회 시조 분과 위원장을 하는 등 국악계에 몸담게 됐다. 국악 활동을 하면서 시조창의 이론적 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1994년에 본교 국악학과 학부과정에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Q.영제시조란 무엇인가? 

영제시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악 체계의 이해가 필요하다. 국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눠진다. 정악에는 왕실에서 쓰인 궁중음악과 양반이 즐긴 풍류음악 등이 있는데 감성을 절제하는 특징이 있다. 민속악은 정악과 대칭되는 말로, 민간에서 만든 음악인 민요나 판소리, 잡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악 중에서 목소리로 소리를 내는 시조, 가곡, 가사 등을 정가라고 부른다. 시조창은 선비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행해졌다. 선비들이 시조를 읊으면서 흥얼거리다가 음악적으로 다듬은 것이 시조창이다.

영제시조는 영남지방에서 불려지는 시조창을 뜻한다. 영제시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영남지방의 기질과 비슷한 특징을 지닌다. 남성적인 특징을 띠어 웅장하고 힘찬 느낌을 준다. 창을 할 때도 악센트나 굴림이 강한 특징도 있다.

Q.시조창을 할 때 고려하는 점이나 어려운 점이 있나?

노래 한 곡 한 곡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어렵다. 창은 동영상이나 CD 등을 통해서 독학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육이 일대일 개인 지도를 통해 이뤄진다. 시조는 노래 한 곡이 3분 반에서 4분 정도 걸리는데 이를 간단히 부르기 위해서 보통 한 달을 잡는다. 거기에 꾸밈음이나 가락까지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곡 하나를 완전히 소화하려면 깊은 인내심을 지녀야 한다. 내가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점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Q.영제시조에서 다루는 여러 시조 중에 특히 좋아하는 시조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사실 모든 시구를 다 좋아한다. 시조를 이루는 초장, 중장, 종장을 다 사랑한다. 시조의 주제에도 사랑, 자연, 인격, 충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특히 좋아하는 주제는 자연이나 구도(求道)와 관련한 시조다. 나옹 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나 서산 대사의 시조, 그리고 송시열의 ‘청산도 절로절로’ 등의 시조를 특히 좋아한다. 자연을 향유하고 깨달음을 구하는 내용들이 나에게 와닿았다.

Q.단순히 국악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국악의 이론 체계를 세우는 것에 관심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돌아가신 선생님과 영제시조의 이론 체계를 세운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릉 선생의 여러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1990년에 영제시조가 대구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그 후로도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국악을 해왔다. 그러나 선생님이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영제시조는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 선생님은 명맥만 이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가슴 아파했다. 그러한 선생님의 고민에 제자로서 존경심을 느꼈고, 동시에 정가를 가르치는 지도자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들었다. 선생님은 당시에 젊은 사람이 국악을 별로 안 해서인지 젊은 축에 속했던 나를, 이론 정립이 되지 않던 영제시조를 이어갈 사람으로 기대했다. 그 기대를 이어받아 국악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나 전공을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논문 주제로 영제시조를 택했을 때 자료가 거의 없고 가곡 등에 비해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핀잔을 듣기도 했다. 선생님과 한 약속과 스스로의 다짐이 있었기에 논문 주제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선생님이 수집한 자료나 구두로 전달된 내용을 종합해서 영제시조에 대한 계보나 창법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쓴 논문이 영제시조에 대한 최초의 논문이 됐다. 논문을 쓴 뒤에는 논문집을 가지고 선생님의 산소에 찾아가 인사드리기도 했다. 

Q.국악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현대사회는 스피드의 시대가 아닌가.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노래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느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하는데 국악은 한 번 시작하면 오랜 기간 진득하게, 끝까지 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국악을 배우게 되면 한 길을 끝까지 간다는 끈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국악을 지루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주의 깊게 듣다 보면 시의 내용을 돌아보게 되고, 가락에 흠뻑 젖어 국악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18일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진행된 ‘김향교 정가 독창회’에서 공연하고 있는 김향교 청구정가문화원 대표(예술대 국악 94)(본인 제공)

김민호 기자/kmh16@knu.ac.kr

장창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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