홑흔들이(단진자)란 가느다란 줄에다 추를 매달아 두고 그 줄을 어떤 고정된 곳에 묶어 추를 좌우로 왕복 운동시키는 단순한 장치다. 자그마한 추가 움직이는 작은 그네라고 보면 된다. 홑흔들이는 운동하는 정면에서 살펴보면 수직면 좌우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하는 왕복운동을 하는데, 평형점이라 부르는 한가운데에서 그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 왕복운동은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며 만일 추의 운동을 방해하는 아무런 부가적인 힘이 추에 작용하지 않는다면 추는 영원히 왕복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홑흔들이는 왕복운동의 폭이 조금씩 줄어들어 길어봐야 한두 시간 내에 평형점에 멈춰 서게 된다. 추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운동이 가장 빨랐던 그 지점, 평형점에 멈추는 것이다. 홑흔들이를 서서히 멈추게 하는 것은 부가적인 힘인데 이런 힘으로는 공기에 의해 추에 작용하는 부력, 홑흔들이의 속력에 의존하는 공기 저항력, 그리고 홑흔들이 주변에서 추의 운동과 함께 일어나는 공기의 운동(추가질량 효과) 등이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자연에는 운동을 일으키는 힘이 있고 운동을 방해하려는 힘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방해하려는 힘이 대체로 더 많다.

홑흔들이(단진자) 실험은 하나의 줄과 하나의 추와 줄을 묶는 하나의 장소만 있으면 언제든지 해보일 수 있는 실험이다. 실험은 간단하지만 이 실험으로 과학자 푸코는 지구의 자전을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갈릴레이는 등시성의 원리를 찾아내어 해시계, 물시계로부터 추시계를 제작하게 했다. 등시성이란 추가 한 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추가 흔들리는 폭(진폭)이나 추의 질량에는 상관없고, 추가 매달린 줄의 길이에만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시간의 정확성을 가져온 것도 등시성의 원리 덕분이다.

물리학에서 힘(force)이란 물체에 작용하여 물체의 운동 상태를 바꾸는 원인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한 물체와 다른 물체와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며 이것은 서로 간의 구속을 의미한다. 두 질량체 사이에 나타나는 중력과 두 전하체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은 서로를 가만히 두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밀고 당겨서 간섭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간섭(구속)의 정도는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커진다. 자연은 홑흔들이에게도 가만히 보고 있지를 못해서 줄에 매달린 추가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주변은 추에게 지속적인 간섭을 해댄다. 즉, 추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공기가 추를 가만 놔두지를 않고 평형점에 추가 멈춰 설 때까지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평형점은 힘이 미치지 않는 지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여러 힘이 작용해도 그 힘의 합이 0인 곳이 평형점이다. 힘이 가해지지 않는 곳이므로 그 지점에서 물체는 운동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평형점에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하게 된다. 인간도 결국은 외줄에 묶인 추와 같은 존재이고 일상을 반복하면서 주변의 영향을 받아 서서히 진폭이 줄어들다가 결국은 멈춰서는 존재가 아닌가 한다. 홑흔들이의 추가 평형점 즉 힘이 작용하지 않는 곳, 구속이 전혀 없는 곳, 가장 자유로운 곳에서 멈추듯 자연 속의 모든 것들은 가장 자유로운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그러니 사람의 삶이란 추는 집과 일터를 오가며 영원히 움직일 것 같았지만 주변의 간섭에 의해 서서히 운신의 폭이 줄어들다가 자신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던 바로 그 지점, 평형점에 영원히 멈춰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애운해 할 것은 없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멈춰 선 그곳이 다른 어떤 것의 간섭이 전혀 없는 가장 자유로운 곳이니까 말이다.

운동을 끝낸 홑흔들이의 고요한 정지에서 나는 열반과 흡사한 자유를 배운다. 수직으로 꼿꼿이 멈춰 있는 홑흔들이의 미동도 없는 자세는 경건할 정도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삶이란 홑흔들이와 같은 존재로 살면서 만들어 내는 고독한 몸짓이다.

손상호 교수

(사범대 물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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