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저녁, 서울 강남 일대에서는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약물을 이용한 강간 및 경찰 유착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여성들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 학기 강의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아니나 다를까 버닝썬 이야기이다. 최근 각종 예능에 등장하며 주가를 올리던 승리와 정준영은 아무래도 이번엔 빠져 나가지 쉽지 않아 보인다, 역시 지저분한 애들이었다, 최종훈용준형은 또 뭐냐는 둥. 그러나 이 사건을 ‘승리발 쇼크’라며 연예인들의 난잡한 성문화나 충격적 일탈로 볼 수만은 없다. 그러기에는 이 사건과 연일 언론을 달구는 또 다른 사건들, 전 차관 김학의의 성폭력과 다수의 권력형 가해자들이 얽혀 있는 고(故) 장자연 씨 사건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 사건은 결국 같은 뿌리,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와 남성 카르텔이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사건들이다.

전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개하고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Me Too 운동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기 시작하자 곧 성차별은 중장년 남성들의 구태의연한 습속인데 남성 일반의 문제로 보지 말라는 젊은 남성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편 중장년층 남성들은 몰카불법 동영상 문제 등이 요즘 젊은이들의 잘못된 성문화를 보여준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버닝썬-김학의-고 장자연 씨 사건은 이게 단지 남성 세대 간 차이의 문제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구축된 남성성(masculinity)의 문제이다. 여성의 성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남성다움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남성 동성사회(homosociality)의 문제인 것이다. 인생삼락은 ‘주색잡기’(돈, 여자, 노름)라는 말보다 flex(힙합 신에서 성공을 ‘과시하다’라는 의미로 쓰임)라는 말이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익숙한지 몰라도 남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대상에 여성이 있는 것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남성 동성사회성이 여성의 ‘성’이라는 가장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공모 관계 속에 작동하고, 이는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여성을 대상화/비하하면서 남성들의 우애와 유대를 끈끈히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내부자들>과 같은 영화에서, 그리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일상적 풍경이다.

그렇지만 이건 다 권력층, 유명인 남성 소수의 문제이지 않은가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남성 중 특정 계급만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버닝썬, 김학의를 포털에서 검색만 해도 연관검색어로 ‘동영상’이 뜬다. 정준영 피해자 명단이라면서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교수라는 사람이 버닝썬 무삭제 영상에 대해 언급하며 성범죄 피해를 희화화시켰다. 언론까지 합세해 피해자 찾기에 나서고, 피해자를 추정하며 “몸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댓글이 달린다. 동영상을 보고 싶어 하고, 피해자를 궁금해 하고,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 여성에게 돌리는 이런 ‘일반인’들은 강간 문화의 동조자가 아닌가? 정준영승리의 단톡방 내용이 그렇게 낯선가? 최근 여러 대학의 남학생들이 자신들의 SNS 단체 대화방에서 여성 지인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유희처럼 즐기는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카르텔은 없다’며 강간 문화를 구조의 문제가 아닌 소수 일탈적 남성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나? 그래도 나쁜 짓 안 하고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남자들도 있잖아! 라는 생각이 든다면, 맞다 그래서? 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성평등 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생기는 바람직한 현상을 두고, 역사적으로 구축되어 온 가부장적 남성성과 우리 사회의 강간 문화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치 노예 해방을 외쳤던 백인들이 있다고 해서 백인 우월주의가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해자를 ‘일반인’과 분리시켜 병리화하고 ‘도려내는’ 것에 집중하지 말자. 성폭력 사건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를 요구함과 동시에 여성의 몸을 거래/유희의 대상으로 삼아 착취하는 이 유해한 구조를 깨뜨리자. 당신 역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적인 대화에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끼어 있었다면, 이제 용기 있게 그만이라고 말할 때다. 강간 문화와 지속적인 2차 가해, 지금 당신이 끊어내야 한다.

육주원 교수

(사회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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