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바지 바람 빠지듯, 노병이 사라지듯 물러나려 하는데 교내에 소용돌이가 치는 와중에 소회를 쓰게 되었습니다. 신의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의 글을 쓰기 위해 복잡한 머리를 잠시 제쳐두고 자판을 두들깁니다.

갑(甲)스런 정부 재투자 기관의 갑 위치인 부장에서 경북대학교에 조교수로 부임하여 자유로움과 청국장을 만끽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참 세월이 빨라 삶이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교수도 갑이기 때문에 억하심정은 전혀 없고 다만 우물 속 같은 아쉬움 몇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대학은 교육기관입니다. 교육의 소명과 열정과 보람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나요? 교수님들이 성과급에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자폐화하거나 학생들에게 갑질로 상처를 주지는 않나요? 대학의 교육이 본질을 벗어나 단순히 취업용 또는 학점 취득용이 되고 있지나 않나요?

물론 대학은 연구의 산실입니다. 그런데 그 연구가 사회에 도움이 되거나 조그만 울림이라도 있는지요? 혹 본인과 심사자 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 실적을 위한 논문을 쓰고 있지는 않는지요? 논문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비해 논문의 질은 얼마나 향상되었는지요?

학생은 학점을 딸 뿐 공부는 하지 않고, 교수는 논문을 쓸 뿐 연구는 하지 않고, 둘 다 책이라곤 읽지 않는 건 아닌가요? 책을 읽고 성찰하고 토론하며 오랫동안 천착하지 않고 어떻게 제대로 내공을 쌓을 수 있으며 품격 있는 연구가 나올 수 있나요?

저는 진리·긍지·봉사라는 교시를 참 좋아합니다. 대학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입니다. 옛날 당나라 한유도 스승의 첫 번째 일이 도(道)를 전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를 Ph.D.(철학박사)라고 하는데 얼마나 해당 분야의 도를 깨우치고 전달하고 있는지요?

긍지는 지성의 보루인 대학인의 자존감입니다. 고결함을 가지고 자긍심으로 이름을 지키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름으로 남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어려움이 있는 곳에 힘이 될 수 있는 것에는 기꺼이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 불의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의 등불이 되고 시대의 등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재물보다 탤런트(talent)가 더 유용하고 보람될 것입니다. 재물은 무능하면 잃어버리지만 탤런트는 언제나 자기 것이니까요. 그런데 재물을 물려받으면 상속세를 내지만 탤런트는 물려받아도 아무 것도 내지 않고 오히려 혜택을 봅니다. 그러기에 탤런트를 타고나서 자신만을 위한다면 사회는 불평등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탤런트가 있는 대학인은, 특히 국가의 혜택이 있는 첨성인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는 마약과 같습니다. 한 번 맛보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수라는 직 자체가 권력이고 명예이고 기본적인 돈은 되는 선택받은 직입니다. 그런 교수가 인간의 본성이라 어렵다 하더라도 돈과 자리와 명예의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스스로 홍보하며 좇아서는 더욱 안 됩니다.

대구에서 자라지 않았고 학연이 없는 자로서 처음으로 교수회 의장으로 피선되어 일하고, 경북대 민교협 회장, 지역 민교협 의장, 전국 민교협 공동의장, 국립대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 대구시민연대회의 창립 공동대표 등 부끄럽지 않게 봉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함께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경북대학교 교수로서 한국금융학회, 한국재무학회, 한국재무관리학회 회장으로 봉사하게 된 것도 고맙고 영광입니다.

지역 내는 고사하고 대학 내에도 교류와 참여는 너무 미약하기만 합니다. 전공분야 교수들의 교류와 회합을 위한 금융경제연구회, 영호남 교류가 뒤안길로 사라지고 학생들을 위해 만든 한국선물포럼과 복현금융연구회, 복현콜로키움이 최근 사라졌거나 사라질지 모르는 것은 아쉽습니다.

대학은 본질적 사명이 있기에 근 구백년을 이어왔습니다. 세간의 평가와 세속의 풍파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류는 발전해왔고 이 나라도 눈부시게 발전해왔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여러분께서 원대한 포부와 꿈을 가지고 자랑스러운 경북대학교를 만들어가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김석진 교수

(경상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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