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안(준연동형 권역별비례대표제)을 다른 두 법안(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였다. 최장 330일간의 논의를 거쳐서 본회의에서 선거제도 개편안이 처리될 수 있는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봉쇄하였고 극심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자유한국당은 집권당 시절 박근혜 전 대표가 주도하여 통과시켰던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물리적으로 봉쇄하여 스스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켰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혁은 이루어져야 하나?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역설적으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혀 어려워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주권자로서 우리의 관심이 선거제도 개혁에 모아질 때다.

두루 알듯이 한국 선거제도는 총300명의 국회의원을 단순다수대표제를 통해서 지역구에서 253명을 선출하고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통해서 47석을 선출하는 혼합형 선거제도이다(mixed electoral system). 유권자는 한 표는 지역구에서 후보자를 선출하기 위해서 행사하고 다른 한 표는 정당에게 투표한다(1인 2표제). 혼합형 선거제도는 학자들에 의해서 다수제의 장점과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결합한 이상적인 선거제도로 거론되어 오곤 했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제도는 혼합형임에도 불구하고 단순다수 소선거구를 통해서 선출하는 지역구 의원이 전체 의석의 84.3%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상 승자독식의 다수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수제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보다 명확한 책임성을 보장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수제적 선거제도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 간에 불일치가 큰, 즉 불비례성이 큰 제도로서 많은 사표를 발생시켜왔다. 지난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균 1000만 표에 달하는 사표가 발생한 것이다(제17대 총선 49.99%, 제18대 총선 47.09%, 제19대 총선 47.09%, 제20대 총선 50.32%).

둘째, 혼합제이지만 비례대표의 비율이 15.7%에 그치기 때문에 청년, 여성, 노동자, 농민, 장애자와 같은 소수자의 대표가 매우 취약하다. 여성대표를 살펴보면 민주화 이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해왔다(제16대 국회에서 2.2%에서 제20대 국회에서는 17%). 하지만, 2018년 기준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의 순위(국제의원연맹 자료 기준)는 여전히 116위에 그쳤다. 또한 청년의 정치적 대표 또한 심각하다. 제20대 국회에 진출한 30세 미만의 국회의원은 비례대표에서 한 명에 그쳤다(40세 이하는 2명, 지역구 1명 비례대표 1명). 또한 20대 국회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는 단 한 명도 없다.

셋째, 소수자 과소 대표의 자연스런 결과로서 법조인·관료·정당인 집단과 같은 특권집단이 과대 대표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직업을 살펴보면 전체 300명 중에서 상위 3개 집단인 정당인, 법조계, 관료가 각각 50명. 47명, 42명으로 나타나 과반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할 때 승자독식의 다수제 성격이 강한 현행 한국의 선거제도를 진입 장벽을 낮추어 비례성이 높으며 소수자가 더 많이 대표될 수 있는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가 다양한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이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승자독식의 경향이 강한 현행 선거제도의 다수제적 성격을 완화할 수 있는 비례성(proportionality)을 높이는 것이다. 두루 알듯이 비례성이 가장 높은 선거제도는 완전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이다. 완전 비례 대표제를 제외하고 높은 비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Mixed Member Proportional System). 이른바 독일식 선거제도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제도는 각 정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을 의석수로 연동하여 보장해주는 선거제도이다. 예를 들어 가 정당이 정당 득표를 통해서 20%를 얻고 지역구에서 30석을 얻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지역구에서 얻은 30석은 그대로 인정하고 전체 의석(300석)의 20%에 해당하는 60석에서 모자라는 30석은 비례대표에서 보전해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원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례대표 의석의 확보가 전제조건이다. 또한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와 같이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분리되어 선출되는 경우(병립형)에도 비례성이 보완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의 증가가 필요하다. 원래 혼합형의 취지에 맞도록 승자독식의 성격을 가진 다수제의 불비례성을 충분히 완화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요컨대, 완전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는 급격한 개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한 비례성을 높이는 쪽으로 모아져야 한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 첫째, 현 300석을 유지한다면 지역구 의석수를 상당히 줄여서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지역구 53석 감소(지역구 200석 대 비례대표 100석)를 제안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이 대표적이다(2015년 2월). 하지만 이 안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 둘째, 지역구 의석은 현행 253석으로 고정하고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충분히 늘리는 것이다. 이 안의 문제는 국회의원 정수 증가에 국민들의 불신이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비례성 향상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인 방안이다. 국회의 총예산 동결과 보좌관 공유제와 같은 과감한 특권 내려놓기를 통해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해서 비례대표 의원 수 증가가 이루어진다면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 비례대표 선출과정을 어떻게 민주화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지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와 같이 주요 정당 모두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파동을 겪었다. 비례대표 공천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제도적 통로의 확장이라는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의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패스트 트랙에 올라간 선거제도 개혁이 주권자를 위한 트랙이 되기 위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강우진 교수

(사회대 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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