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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지난 1월 구독자 50여 만 명의 인기 유튜버 채널이 운영정책 위반으로 영구 정지당했다. 이 유튜버는 시사, 사건·사고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동영상으로 편집해 본인의 채널에 게재했다. 그가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안 혹은 인물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과 혐오 때문이었다. 그는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 페이스북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의 게시글로 80여 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기도 했다.

“입학할 때 부모님 가슴이 무너졌는데 건물마저 무너지네”
이는 지난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한 대학교의 건물 외벽이 무너지는 영상과 함께 그가 쓴 페이스북 게시글이다. 이렇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욕설과 혐오 표현을 게시물에 도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팔로워(구독자) 수가 이미 그것을 증명했고, 실제 게시물의 댓글들 역시 그의 혐오에 동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여기에는 화려하고 논리 있어 보이는 그의 언변과 자신의 주장에는 오류가 없다는 식의 당당함도 한몫했다. 심지어 이런 콘텐츠를 베껴 새로운 채널을 만드는 유튜버도 생겼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격 당한 이들 중 일부는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고소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더 거친 조롱과 인신공격을 들고 나왔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추종자들은 화살을 피해자로 돌렸고, 피해자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월 해당 유튜버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유저로 밝혀졌고 신상이 공개되면서 구독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어 누적된 신고로 해당 채널은 영구 정지당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인터넷상의 풍조는 전염되듯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로 옮겨갔다. 현재도 누군가를 비난하고, 이에 동조하며 쾌감을 느끼는 구조가 상당수의 커뮤니티에 만연해 있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있듯, 인간은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표출할 때 쾌락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왜곡돼 타인에 대한 비난 자체가 쾌락이 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이는 우리가 분명 ‘문제’로 인식하고 있던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악플이 그랬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그랬다.
그런데 왜곡된 카타르시스가 앞의 사례처럼 콘텐츠화되는 순간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머리에서 문제의식이 사라졌다. 혐오가 당연하다는 듯 게시물에서 친구를 태그하며 웃고, 콘텐츠에 동화된 사람들은 혐오 행위가 일상으로까지 이어졌다. 혐오에 대한 제동장치가 풀려 버린 것이다.
이는 유튜브 등 SNS 미디어의 개방성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넷상에 쏟아지는 SNS 미디어 게시물은 댓글이나 관련 게시물 외에는 사회·윤리적 판단을 맡길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이에 대한 판단은 이용자 본인에게 달렸다.
본교 커뮤니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익명성이 보장된 몇몇 커뮤니티에는 비하와 혐오로 도배된 게시물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는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쉽게 노출된다.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고, 이곳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이용자 본인만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 SNS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오염된 섬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이용자만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게시자는 본인의 게시물이 단순히 비하하는 글이 아닌지, 상대에게 의미 없는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혐오할 자유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동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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