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2009년에 출범된 로스쿨 제도가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 지난 10년간 긍정적인 변화도 적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재판연구원에, 의사·군인·경찰관·철강업체 직원 출신이 검사에 임용되는 등 법률가의 구성이 다양해졌다. 변호사의 활동 범위가 기업, 노조, 시민단체 등 각 방면으로 확대됐고, 비수도권의 변호사 수도 현저하게 늘어났다. 다수의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약자들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원래 내걸었던 목표에 견주어 보면, 지금 로스쿨 제도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시험에 의한 선발’로부터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법률가 양성의 중심축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법률가를 길러내자는 비전은 심하게 퇴색되고 있다. 로스쿨 제도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는 이 위기의 핵심은 다름 아닌 변호사 시험이다. 지난 10년은 한 마디로 변호사 시험을 개혁하지 않으면 로스쿨 제도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변호사 시험의 결과

올해 제8회 변호사 시험의 합격자 수는 1,691명, 합격률은 50.78%, 합격점은 905.55점(만점 1,660점)이다. 아래의 <표>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올해 응시자 수는 3,330명으로 제1회 시험 대비 2배나 늘어났다. 합격점도 증가추세를 이어가 올해는 제1회 시험 대비 185점이나 높아졌다. 합격률은 제1회 시험 때 87.15%였던 것이 뚝뚝 떨어져 작년에 50% 밑으로 내려갔다가 올해는 겨우 50%에 턱걸이했다. 변화의 폭이 가장 적은 것은 합격자 수이다. 소폭증가 추세를 이어오다가 올해는 작년에 비해 92명이 늘어나 최대의 증폭을 보였다. 

문제는 아래의 <표>에 등장하는 각각의 수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법무부는 “기존의 합격자 결정기준인 ‘입학정원 대비 75%(1,500명) 이상’으로 하되 로스쿨 도입 취지, 응시인원 증가, 법조인 수급 상황, 로스쿨 학사관리 현황, 채점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애당초 1,500명이라는 수의 근거는 없다. ‘변호사시험법’에는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 취지를 고려해 시험의 합격자를 결정해야 한다”라고만 되어 있는데도 법무부는 법률에는 없는 온갖 요소들을 들이댄다. 무엇보다 법무부가 제시하는 요소들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왜 올해 1,691명이고, 50.78%이고, 905.55점이어야 하는지, 905.54점을 얻은 응시자는 왜 불합격이 되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정했으니 그냥 그런 줄 알라’라고 으르대는 ‘갑’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12(1회)

’13(2회)

’14(3회)

’15(4회)

’16(5회)

’17(6회)

’18(7회)

’19(8회)

응시자수

1,665

2,046

2,292

2,561

2,864

3,110

3,240

3,330

합격자수

1,451

1,538

1,550

1,565

1,581

1,600

1,599

1,691

합격률

87.15

75.17

67.63

61.11

55.20

51.45

49.35

50.78

합격점

720.46

762.03

793.70

838.50

862.37

889.91

881.9

905.55

<표> 변호사시험 결과

변호사 시험의 실상

실상은 이렇다. 변호사 단체는 ‘수’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시종일관 로스쿨 제도 도입에 반대했고, 도입 이후에도 사법시험 시대의 합격자 수인 ‘한 해 1,000명’을 고수하려 했다. 법무부가 그것을 받아들여 ‘총입학정원 대비 50%(1,000명) 이상’이라는 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애당초 말장난이다. 합격률은 분모와 분자가 변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분모인 총입학정원이 2,000으로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50%는 항상 1,000이라는 정수이므로, 그저 1,000명 정도 뽑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그걸 밀어붙이려 했다. 당연히 로스쿨 측의 대대적인 반발에 부딪혔고 그래서 50%가 75%로 바뀌었다. ‘한 해 1,500명’이 새로운 저지선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응시자 수는 계속 늘어났고, 당연히 합격률은 계속 떨어졌다. 매년 10여 명씩 합격자 수를 늘려주는 것으로 얼버무려 왔는데, 올해는 제도 도입 10년을 맞아 로스쿨 측으로부터 강한 질책이 이어지자 92명을 늘려 합격률 50%를 넘기는 ‘선심’을 쓴 것이다. 

합리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변호사의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의 합격자 결정이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문자 그대로 ‘힘겨루기 판’이다. 그래서 매년 합격자 발표 직전이 되면 변호사 단체는 변호사 단체대로 로스쿨 측은 로스쿨 측대로 시위를 하고 성명서를 내고 삭발을 하며 부딪친다. 그러면 법무부는 힘 관계를 보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충 퉁치고 넘어간다. 

변호사 시험이 로스쿨을 뒤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풍부한 교양,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 및 자유·민주·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보다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개방되어 가는 법률시장에 대처하며 국제적 사법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과 다양성”을 지닌 법률가를 양성한다고 하는 로스쿨 제도의 목표는 그림 속에만 있는 떡일 뿐이다.

예측가능성이 없으니 로스쿨 학생들은 시험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얼마나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없으니 무작정 시험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수점 이하 두자리에서 합격점이 결정되니 오답시비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지상목표가 되어 이미 나와 있는 판례를 근거로 문제를 출제하게 되고, 시험 합격이 급한 로스쿨 학생들은 1만 개가 넘는 판례를 외워야 한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두드리면 언제든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고,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판례를 비싼 돈 내고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이 열심히 외운다. 법률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판례의 논리와 맥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인데도, 판례의 결론만을 정답이라며 외우고 있다. 이렇게 모든 로스쿨 학생들이 시험에 매달리니 25개 로스쿨에서 하는 일도 똑같다. 시험공부!

그래서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80%가 넘었던 1, 2기 때의 학생들이 관심 있는 과목의 강의실을 찾아 열심히 고민하고 토론하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각 로스쿨마다 IT법, 문화예술법, 동북아법 등 특화된 법 영역의 전문가를 길러내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특성화는 유명무실해졌다. 시험과목이 아니면 폐강 위기에 몰리고, 시험과목 강의에서도 시험에 관련이 없는 내용은 배척된다. 로스쿨들은 교육의 내용이나 질이 아니라 오로지 합격률에만 목을 매어야 하니 어느 로스쿨이나 시험공부만 시킨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대학 서열과 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는 로스쿨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변호사 시험 개혁 없이 로스쿨은 없다. 

로스쿨 교수도, 학생도 알고 있는 문제이다. 법무부 담당자 등 로스쿨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10년 동안이나 뻔히 내다보이는 파국의 길을 내달려왔다. 이제 곧 절벽이다. 지금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추락한다. 

애당초 변호사 시험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국내 로스쿨의 한 해 입학생수는 2,000명으로 묶여 있다.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총입학정원’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2,000등 안에 들어야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다. 변호사 시험에 관한 한 심포지엄에서 만난 미국 변호사는 그 점을 지적하며 한국에서는 아예 변호사 시험이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들 합리적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 전국에서 2,000명만 선발해서 3년간 교육을 시키고서 왜 또 시험을 치느냐?”라고.

한 발 양보해 ‘최소한의 시험’으로서 변호사 시험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형태여서는 안 된다. 로스쿨은 ‘자격시험’을 전제로 하는 제도이다. 의과대학과 의사시험이 그런 것처럼, 로스쿨에서 충실한 교육을 시키고 그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자질과 능력’을 점검하는 변호사 시험을 실시해서 대부분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해야 한다. 의사시험처럼 합격점을 미리 정하고 응시자의 대부분이 합격할 수 있는 시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최소한의 이론과 판례를 사전에 특정해서 학생들에게 미리 알리고, 그 범위 내에서만 출제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새로운 일을 ‘어려운 시험으로 소수만 뽑아 법률가 자격을 줘야한다’라는 생각에 젖은 과거의 법률가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변호사 단체는 ‘변호사의 형편이 어려우니 합격자를 줄여야 한다’라는 주장만 반복한다. 변호사의 취업률이 90%를 넘고, 고수입 직종이라는 사실이 수치로 증명되는데도 수십 년간 같은 주문만 외고 있다. 애당초 자유직업인인 변호사의 수입을 왜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떠올리지도 않는다. 한 술 더 떠, 변협 회장이라는 사람들이 신문에 기명 칼럼을 실어 ‘배고픈 변호사는 사자보다 무섭다’라며 으르댄다. 생각해보면 사법피해자가 넋두리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사자처럼 국민에게 덤벼드는 변호사가 있다면 가장 먼저 나서서 징계권을 행사해야 할 단체의 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변호사법’ 제2조)은 온 데 간 데 없고, 참담한 겁박으로 으르대며 사익을 위해 공적인 제도를 뒤트는 헐벗은 모습만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도 새로운 일을 맡을 자격이 없다. 시험은 시험 전문가가 연구하며 운영하고 관리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때가 되면 출제위원을 선정해서 감금하고 명확한 기준도 없이 관리만 하는 소수의 법무부 관리들이 맡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변호사 시험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운영하는 독립된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질과 능력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추어 시험의 범위를 특정해 공개하고, 모의시험을 실시해 점검하고, 세밀한 통계를 만들어 제시하는 등 변호사 시험을 자격시험으로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맺음말

사법시험은 완전히 폐지됐고, 그 수많은 문제점을 가진 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예비시험이라는 우회로가 약자를 위한 제도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일본의 사례에서 이미 입증됐다. 달리 길이 없다. 로스쿨을 성공시키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소중하게 챙기며 앞으로의 10년, 100년을 헤쳐나아가야 한다. 변호사 시험 개혁이야말로 그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자 출발점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다시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 직전에 시위하고 성명서 발표하고 삭발하며 국력을 낭비하는 일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다.

김창록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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