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세계 천문학계는 매우 들떠 있었다.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 측에서 4월 10일에 예정한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블랙홀을 최초로 목격했다는 소식이 발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공개된 M87 은하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질량블랙홀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어떤 이는 감격하기도 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생각보다 단순한 모습에 약간의 실망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그림의 물리적 의미를 명확히 이해했는지 여부를 떠나, 그 단순한 그림이 대중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마침 필자의 연구 분야와 연관이 깊어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했을 때 학생들이 보인 반응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인간의 평범한 일상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학문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아마도 천문학은 자연과학 중에서 가장 낮은 순위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러한 절대적인 척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어렴풋한 인식 속에서도 비슷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 의무감으로 종종 천문학이 우리 생활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 설파하면서 대중들의 편견이나 인식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을 한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와이파이와, 고급카메라에 들어가는 CCD는 천문학 분야에서 최초로 개발되고 발전되어 온 기술이다. 이번에 블랙홀 그림자를 포착할 때 사용한 전파간섭계의 관측 기술도 의료용(MRI)으로 응용되었다. 금성의 대기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연구가 지구에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지구 온난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자는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다. 연구를 위해 기술 개발을 할 뿐이다. 그 결과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응용될지는 사실 천문학자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천문학은 쓸모 있음을 위해서 존재하는 학문은 아니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블랙홀의 그림자를 보거나, 해석하기 어려운 중력파의 파형을 보고 열광했던 이유는 그 발견의 실질적 유용함 때문이 아니라, 그 발견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어떤 희열감 같은 것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희열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발견이 적어도 인간에게는 쓸모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종종 천문학을 소설이나 시에 비교하곤 한다. 로버트 팬 워렌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다.” 앞의 문장에서 소설 대신 천문학을 대입하더라도 문장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떠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듯 지구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 사진 속에서 우리가 삶의 터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지구는 칼 세이건이 명명했듯이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았다.

관측 천문학자는 일상적으로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멀리서 온 빛을 거대한 망원경으로 모아 희미한 이미지를 얻어내곤 한다. 관측 중간에 관측소 밖으로 나가서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칸트의 정언 명령처럼 혹은 좋은 글이나 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어쩌면 내가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혹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 역시 M87의 블랙홀 그림자를 보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천문학을 통해서 알려진 과학적 결과를 가장 아름답게 기술한 글로 나는 단연코 한강의『바람이 분다, 가라』를 뽑는다. 소설 속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왜 천체물리학을 배웠어요?/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서.../ 그래서 그걸 배웠어요?/ 배웠지./ 처음과 끝을 알았어요?/ 아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계는 거대하며 우리는 왜소하다는 것, 그리고 세계는 우리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 천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민진 교수

(자연대 지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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