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같은 용어는 과거의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 우리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서서히 발전한 사회를 사실과는 다르게 급진적인 의미의 ‘혁명’으로 이름 붙였다. 이처럼 용어라는 틀이 역사적 사실조차 오도하는 경향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현재에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지만,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와 초연결 사회로 나아갈 때 발생하는 걸림돌을 잘 제거한 후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16세기 종교 개혁과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직업과 일의 가치는 지속해서 높아져 왔다. 일은 과거의 생계를 위한 도구적 가치를 넘어 자아실현을 이루는 디딤돌로 의미가 확장됐다. 이는 흔히 “꿈이 무엇이니?”라는 질문과 “되고 싶은 직업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이 상통한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함에 따라 기계가 인간의 여러 직업과 일을 대체하게 됐고 앞으로도 더 많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1인당 노동생산성은 증가했고, 작은 투입량으로 높은 산출량을 얻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인간은 육체적 노동의 굴레에서 점차 벗어나게 됐으며, 삶의 여유도 더 늘어났다. 새로운 수단을 통해 사람만의 가치에 더욱 탐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했다면, 인간만이 지닌 마음과 지혜에서 인간적 가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도 16세기 이전처럼 자본의 소유자가 부를 독점하고,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경제적 지위로 계층이 분리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 계급은 여전히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 어디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할 것이고 이에 반해 자본가는 인문학적 가치에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인문학적 가치를 탐구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순 없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공유경제 사회 또한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경제는 생각보다 더 우리 삶에 깊게 녹아 들어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위키피디아(Wikipedia), 유튜브(YouTube) 등의 사이트 및 플랫폼 또한 공유경제의 일부다. 이 중 위키피디아를 예로 들어보면, 위키피디아는 사람들에게 비용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무료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수단들을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탐구할 수 있다. 

우리는 2016년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면서 기계에게 지능의 영역을 내어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만이 지닌 가치, 사유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고 침범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반이 무직이 될 수도 있는 시대에서 사색의 힘으로 존재의 가치를 실현하며 인공지능과 사람의 지혜를 잘 결부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김성민

(경상대 경제통상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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