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동안 교도소에 들어가겠는가?!” 보도에 따르면, 대학생 절반이 그럴 수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10억 원은 큰돈이다.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꿈의 연봉이 4천만 원이니까, 25년 연봉을 꼬박 모아야 10억 원이다. 그 10억 원을 위해 평생 지워지지 않을 범죄자 낙인을 감수하겠다는 청춘이 열에 다섯이란 얘기다. 뭔가 스산하고 암울하다. 현대사회에서 돈이 제공하는 온갖 편의와 행복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세례를 받은 청년세대에게 돈은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선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돈을 추구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이다. 범죄자가 되어도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섬뜩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의지하는 인생에서 인과관계가 결석한 결과 지상주의는 참혹하다. 10억 원의 불의한 돈에 손대는 것이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세계관이 버젓하게 활개 치는 처참한 세상에 우리는 내던져 있다. 돈에 중독된 눈먼 자들의 세상.  

두 번째 문제는 10억 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봤는지 하는 것이다. 범죄로 생긴 거액을 어디에 쓸 것인지 진지하게 고려했는지, 그것이 문제다. 명확한 목적이나 기획도 없이 맹목적으로 돈을 탐하는 청년들의 흐트러진 사유와 인식이 두렵다. 한국인 누구나가 돈을 탐하니까 나 또한 돈을 추구한다는 대중 추수주의가 아쉬운 것이다. 그것도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미래세대의 주역 가운데 절반이 그러하다니 더욱 두려울 따름이다.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편력자(遍歷者) 타루는 18살 나이에 가출한다. 차장검사인 아버지가 키 작고 가엾은 남자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그의 사형을 참관하는 냉혹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법권력의 부당하고 불의한 사형집행에 저항하면서 타루는 사랑과 공감에 기초하여 세상의 온갖 불의와 부정과 타락과 맞서 싸운다. 무지가 자아내는 악덕과 투쟁하면서 타루는 자신도 페스트균에 감염되었음을 자각한다. 

70년 전의 세계가 전쟁과 제노사이드의 페스트균에 전염되었다면, 21세기 한국사회는 불의한 돈과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10억 원의 유혹에 무너진 대학생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어떤 범죄행위에도 눈을 감는다. 그중 하나가 커닝 같은 부정행위다. 교수나 조교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노골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부정행위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첫걸음이다. 아무 수치심도 없이 부정행위를 자행하고, 그 결과에 기뻐하는 대학생은 불의하고 부정한 범죄자다.  

거점 국립대의 청년 대학생이 미미한 이득을 보고자 저지르는 부정행위는 페스트균처럼 한국사회 전역을 오염시키고 마비시킨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커닝하고, 나이 들어서는 10억 원 때문에 교도소에 자발적으로 갇히려는 청춘에게 미래는 없다. 대학에서 최소한의 정의와 사랑과 공감을 배우지 못하고 세상에 나가는 청춘이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이제야말로 크고 작은 불의와 부정과 단호하게 작별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청춘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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