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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그린 사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그림, 픽토그램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바로 비상구 그림이다. 1972년 일본에서는 일본 건물 화재 역사상 최악으로 남은 센니치 백화점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비상구 그림이 있기 전이었던 사고 당시는 ‘非常口’라는 문자를 사용했다. 제대로 된 비상계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있던 상태에서 비상구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숨졌다. 비상계단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었던 사람은 여직원 한 명 뿐이었다. 사고 후 피난유도사인을 그림으로 변경하는 안이 검토되고 공모안으로 모집된 이 비상구 그림은 국제표준으로 지정되어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 되었다. 단순한 디자인을 통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커뮤니케이션 수단‘픽토그램(Pictogram)’에 대해 알아봤다●

짧고 굵게 소통하는‘픽토그램’
픽토그램은 ‘그림(pi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로, 사물, 시설, 행태, 개념 등을 일반 대중들이 쉽게 공감하고 직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림 문자다. 문자가 있기 전에는 의사 표현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지금 당장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서 친구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는 의사를 표현하려고 한다면 간단한 내용이지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처럼 문자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상황에서 오차를 줄일 수 있도록 만든 기호적 약속이다. 하지만 그 문자를 가지고도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문자를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림픽 게임이나 여러 민족이 모이는 공간인 공항 등에서는 의미 지시를 위해 국제 표준 픽토그램이 사용된다. 각 국가들이 제안한 픽토그램을 국제표준화기구 (ISO)에서 심의하여 국제 표준을 정한다. 79개 공공안내그림 표지와 188개 안전표지 중 33개가 우리나라에서 제안한 것이다. 국제표준 픽토그램은 문화적 배경이 아닌 인류가 공통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정서적 교집합의 상황에 있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자연스럽게 여기는 여자, 남자 사람을 표현하는 기본 픽토그램에서 여자 픽토그램은 붉은 계열로 표현되거나 삼각형 모양으로 치마를 입은 듯 표현된다. 하지만 이런 픽토그램이 아랍 국가에서도 아무런 설명 없이 본능적으로 받아들여질 지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픽토그램에 고유한 특성까지 담아내다
픽토그램의 본질은 하나다. 그렇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것은 다양하다. 기본적인 대상인 사람 얼굴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자. 같은 주제를 두고 고흐는 터치하듯, 렘브란트는 빛을 중요하게, 그리고 피카소는 재분해해서 그렸다. 그렇듯이 픽토그램 또한 어떤 사람이 그리느냐에 따라 좀 더 색다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픽토그램의 본연적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문화적 특성을 드러낸 좋은 예가 있다. 올림픽 게임에서의 픽토그램이다. 올림픽 픽토그램의 특징은 우선 전세계인의 축제답게 모든 언어로 나타내지 않더라도 픽토그램 하나로 여러 종목을 구별해 알 수 있도록 한다. 거기에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각국이 돌아가며 개최한다는 특성을 살려 각 나라만의 개성을 살짝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의 픽토그램을 살펴보면 픽토그램이 어떤 종목을 뜻하는지 알아채기 쉬우면서도 전체적인 생김새가 마치 중국의 갑골 문자의 느낌을 풍긴다. 그 나라만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픽토그램을 예술로 가져오다,
픽토그래퍼 함영훈

픽토그램은 그림 문자, 일종의 사람들 사이의 약속과도 같기 때문에 대중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픽토그램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앞서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함이 끌어내는 픽토그램의 매력은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도 단순한 정보 전달의 기능을 넘어서는 작품의 영감을 주는 차원으로까지 끌어내도록 하는 좋은 소재가 돼주었다.
픽토그램을 소재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함영훈(37) 씨는 그래픽 이미지를 리서치 하던 중 간결한 형태와 직관적인 메시지가 매력으로 다가온 픽토그램에 관심이 생겼다. ‘이를 활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그와 픽토그램의 첫 만남이었고 지금까지도 발전되고 있다. 함 씨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픽토그램의 단순성, 명료성에 집중한다.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는 곁가지가 많으면 핵심이 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수처럼 많은 정보가 돌아다니는 시대를 고려했을 때 정확하고 간결해야지만 정확한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 외에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많이 이야기하려고 할수록 그 이야기는 효과적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픽토그램의 본질적 특성이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고 쉽게 밀고 나가기에 꽤 까다로운 걸림돌이 될 만도 하지 않나 하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점이 픽토그램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픽토그램이 가지는 공공성과 보편성이라는 특성은 다시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해요”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질 수 있는지, 그것들이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 인지를 늘 묻습니다” 이전에는 그 또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지금은 책임감이 생겼고 사람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나름의 작품관도 가진 작가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픽토그램 뿐만 아니라 디자인일은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에서부터 출발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표현하여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시기 바란다”라는 말을 전했다.

 

 

픽토그램에서의 개성, 그리고 존재 가치
사람은 불과 몇천 년 이래로는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의 옷이나 사고 방식 등은 조금씩 변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사람’에 대한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 대구 지하철 3호선의 디자인을 맡아 완성한 조철희 교수(예술대 시각정보디자인)는 “픽토그램은 원칙적으로 변화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당부를 거듭했다. 그의 픽토그램 중 하나인 ‘휴지통’ 픽토그램을 보면 이전의 경직된 팔을 부드럽게 고치고 부자연스럽던 쓰레기 모양도 자연스럽게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핸드폰에 대한 픽토그램도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폰 모양이었던 픽토그램을 스마트폰 모양으로 바꿔준 것이 인상 깊었다.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옷이나 사고 방식이 변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픽토그램이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도 다양한 형식을 갖출 수는 있지만, 픽토그램이 다양해질수록 보통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교감 지수는 낮아지고 픽토그램의 존재 자체가 낮아지게 된다는 점을 집었다. 그렇게 계속 된다면 개성의 가치는 존재할지 몰라도 픽토그램의 존재 의미는 자꾸 부족해지게 된다고 말하는 그의 픽토그램에 대한 애착이 남다름이 느껴진다. ‘What’s better?’의 문구가 있는 작품도 우리 눈에는 픽토그램과 다를 바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엄연히 따져보면 픽토그램이 아닌 그래픽 디자인이다.

 


조 교수의 사무실 선반 위에 세워져 있는 작은 모형이 있다. 모자를 쓰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조그만 키의 사람 모양이다. 그 이름은 암펠만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 암펠만은 독일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암펠만이라는 이름은 신호등을 의미하는 암펠(ampel)과 남자를 의미하는 만(mann)의 합성어다. 독일의 신호등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보통의 픽토그램이 아닌 모자를 쓴 작고 귀여운 암펠만이 있다. 암펠만은 동베를린의 교통 사고 예방용 픽토그램으로 처음 등장했다. 신기한 것은 실제로 교통 사고율을 줄이는 효과도 만들어냈다고 한다. 암펠만은 분명히 픽토그램이지만 단순한 보통 픽토그램과는 다르다. 암펠만은 독일 시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동독·서독 통일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뻔한 암펠만은 독일 시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태어나 독일 전역에서 쓰이게 되었다. 다른 도시와는 다른 특별한 모양새 때문에 상품화가 되기도 해 암펠만과 관련된 상품만 300여가지가 넘고 우리나라 백화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픽토그램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픽토그램도 좋지만 어떤 상징이 될 수 있는 픽토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 이미 우리만의 특별한 픽토그램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변의 픽토그램에 관심을 가져보자.

 

 

자문

조철희 교수(예술대 시각정보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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