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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엔딩’으로 만나는 벚나무

박상진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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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공대 2호관부터 센트럴 파크까지 학내 곳곳에 만개한 벚꽃


가수 장범준의 벚꽃엔딩은 ‘그대여 그대여…’로 시작하여 ‘봄바람 휘날리며/흩날리는 벚꽃 잎이/울려 퍼질 이 거리를/둘이 걸어요’로 이어진다. 우리대학 정문에서 시계탑을 돌아 본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어느새 벚꽃엔딩 세상 그대로의 장면이 펼쳐졌다. 벚나무는 커다란 나무에 잎도 나오기 전, 화사한 꽃이 나무 전체를 구름처럼 완전히 덮어버린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도 아름답지만 꽃이 질 때의 깔끔함도 또 다른 매력이다.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하여 일주일 정도면 한꺼번에 져버리는 꽃인데, 동백이나 무궁화처럼 통째로 꽃이 떨어져 나무 밑에 굴러다니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다섯 개의 작은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바람결 따라 훌훌 날아가 버린다. 산들바람이라도 부는 날 흩날리는 꽃잎의 모습은 영락없이 꽃비가 내리는 듯하다. 연인이라면 한 번쯤은 흩날리는 꽃잎 아래를 손잡고 걸어가면서 꽃비를 아쉬워할 낭만의 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벚꽃의 느낌은 항상 이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젊은이들을 일컫는 산화(散華)한다는 말과 벚나무의 산화(散花)는 같은 뉘앙스이라서다. 불행히도 이 아름다운 꽃은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는 그들이 사는 곳을 벚나무로 치장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궁궐 창경궁에까지 벚나무를 줄줄이 심고 동물원을 만들어 시민의 휴식처란 이름으로 꽃구경 놀이터로 만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벚나무로 상징되는 치욕의 역사를 우리는 쉽게 지울 수 없다. 오늘 이 시점에도 안타까움은 벚꽃으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의 습관인 꽃구경(花見み)문화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우리의 옛 시가에는 단 한 수도 벚꽃을 노래한 시는 없다. 우리 선조들에게는 벚나무가 지금처럼 꽃구경에 넋을 빼앗기는 ‘꽃놀이’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인들에게는 옛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등장할 만큼 생활문화 속에 녹아있는 그들의 나무다. 우리 선조들은 봄날 온통 마음을 산란하게 해놓고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 벚꽃의 그 경박함을 싫어한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꽃으로서가 아니라 나무 자체의 쓰임으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벚나무 껍질은 화피(樺皮)라고 하여 자작나무 껍질과 함께 군수물자로 이용하는 무기산업의 첨병이었다. 껍질은 활의 탄력성을 좋게 하는 부품으로 들어간다. 세종실록의 오례(五禮)에 관한 내용 중에 ‘붉은 칠을 한 활은 동궁이라 하고, 검은 칠을 한 것은 노궁이라 하는데 화피를 바른다’하였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화피 89장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병자호란을 겪고 중국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은 그때를 설욕하려고 대대적인 북벌 계획을 세우고 활을 만들 준비로 서울 우이동과 전남 구례의 화엄사에 많은 벚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한다.
또 다른 쓰임은 옛 목판(木板)인쇄의 재료였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에 쓰인 나무의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최근 현미경을 이용한 과학적인 조사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적당한 크기의 물관과 글자 새기기에 좋은 재질을 가지고 있음을 선조들은 알고 있었다.
광복 후 한때 벚나무 제거 운동까지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 벚나무가 널리 심겨져 지금은 나라 전체가 온통 벚꽃천지다. 벚나무를 심는 최대의 명분은 ‘왕벚나무 제주도 자생설’이다. 우리 나무이니 더 많이 심어야 한다는 논리다. 꽃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그 꽃의 자생지가 자기 나라라고 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식물학자가 아니고서야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생지가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도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국화로 선정된 것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무에 얽힌 문화와 역사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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