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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낭만의 꽃 라일락

박상진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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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대 본관 앞에 핀 라일락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영국 시인 토머스 S. 엘리엇의 황무지 ‘The Waste Land’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휘감고 있던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1922년의 작품이다. 엘리엇이 노래한 것처럼 언 땅, 춥고 바람 부는 황무지에서도 라일락은 잘 자라는 강인한 나무다. 라일락은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만 갖춘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꽃과 매혹의 향기를 갖는다.
봄이 깊어갈 즈음, 연보랏빛이거나 새하얀 작은 꽃들이 구름처럼 모여 핀다.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꽃 냄새가 강렬하다. 온몸이 나긋나긋해져 녹아내릴 것 같은 라일락은 젊은 연인들의 꽃이다. 꽃향기는 첫사랑과의 첫 키스만큼이나 달콤하고 감미롭다. 학내 어디에서라도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면 금방 강렬한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특히 본관 앞, 도서관 뒤 교양과정동 앞에는 보라와 흰 라일락이 지금 한창이다. 영어권에서는 라일락lilac이라 부르며 프랑스에서는 리라lilas라고 한다.
꽃말도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이다. 낭만과 사랑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는 순수 우리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 모양이 옛 잡곡의 하나인 수수꽃과 너무 닮아 “수수꽃 달리는 나무”가 줄어 수수꽃다리란 멋스런 이름이 붙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은 각자의 학명을 가진 다른 나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수꽃다리인지, 아니면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수입 꽃나무로 들여와 온 나라에 퍼진 라일락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전문가도 어렵다. 두 나무는 멀리 멀리 떨어져 자란 다른 나무이나 모양새가 무척 닮았다. 수수꽃다리보다 라일락의 꽃이 더 크고 향기가 훨씬 강한 것이 특징이지만 두 나무의 구분은 쉽지 않다. 사실 라일락은 중국에 자라는 수수꽃다리 종류를 유럽 사람들이 가져다가 개량한 것을 우리가 다시 수입하는 경우도 있으니 크게 다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수수꽃다리는 개회나무, 꽃개회나무, 털개회나무, 정향나무, 버들개회나무 등 6~8종의 형제 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꽃나무들을 좋아한 옛 선비들은 이 나무들을 머리 아프게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합쳐서 정향丁香이라 불렀다. 속동문선, 산림경제, 화암수록 등의 조선시대 문헌에도 등장한다.
지금 교내에 꽃피고 있는 라일락을 보면 새잎도 함께 돋아나고 있다. 잎과 꽃이 거의 같이 피는 셈이다. 잎은 손바닥 반만 하고 서로 마주나기로 달린다. 라일락은 달콤한 향기로 사랑을 상징할 뿐만아니라 잎도 영락없는 하트 모양이다. 냄새와 모양새가 사랑의 화신이니 맛은 어떨까? 달달한 맛을 상상하고 잎사귀 끝을 조금 씹어 보았다면 지독한 쓴 맛에 크게 놀랄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달콤한 것만 아니라 쓴맛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라는 경고를 하는 것 같다.
라일락의 여러 원예 품종 중에 미스킴라일락이 있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에서 원예가로 근무하던 엘윈 M. 미더가 북한산에서 채집한 우리 토종식물인 털개회나무 씨앗을 가져가서 개량한 라일락이다. 보통 라일락에 비해 키가 작고 가지 뻗음이 일정해 모양 만들기가 쉽고, 짙은 향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는 뛰어난 품종이다. 지금은 로열티를 주고 사다가 심어야만 하니 우리에게 식물 자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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