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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어본 나의 위상

특정한 사건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위상을 생각한다.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지,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판단하는지, 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래야만 나의 판단에 실수나 오류가 섞이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나의 위상을 그리던 중, 나는 스스로가 텅 빈 공간에 던져진 것 같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불안은 갑자기 닥쳐왔다.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불편함을 느낀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여태껏 나에겐 “학생인데요”라는 훌륭한 방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은 학생의 본분이라는 공부로 치환될 수 있었다. 이를 핑계로 나는 많은 것을 외면해왔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올해 설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벌써 대학교 3학년이구나!’라며 내지르는 감탄에 나는 방패의 내구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새로운 직위를 얻기 위해서라면 필통 속을 굴러다니는 볼펜들이 몇 년 안에 보호구 아닌 무기류로 변신해야 할 터. 전장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나는 좀이 쑤셨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나는 2차 전직을 위해 이토록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 몰랐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이상만 품고 있을 뿐, 글쓰기에 재능은 물론이고 그 흔한 토익점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었다.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을 보며 그들의 고충에 공감할 수 없었다. 당대는 난세라고, 언제 어느 때이든 인생은 퍽퍽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태평천하로 알려진 요순시대에도 누군가는 삶이 힘들었노라 말하지 않았을까.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사회’라는 형체 없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쏘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였다. 고교시절, 문과로 진학하면 취업을 못한다는 친구들의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될 놈은 된다’고 믿었고, 그 될 놈이 나일 줄 알았던 근거 없는 패기와 자신감은 시간이 지나며 차차 흐려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학을 ‘취업양성소’나 ‘평범하기 위해 가는 곳’ 따위로 치부하는 건 아니다. 대학은 꽤 괜찮은 곳이다. 문제는 이 대학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한, 어쩌면 안 한 것인지도 모를 나에게 있다. “장래희망이 뭐예요?”, “뭘 하고 싶어요?” 따위의 질문에 답은 정해져있는데 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애석할 뿐이다. 과제를 받고 한국 사회라는 애매모호한 경계 속 나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며칠을 끙끙거렸다. 도착지는 명확한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망망대해 속 돛단배만 떠오를 뿐이었다. 기자라는 진부하고도 과분한 직업만을 목표로 한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이 글을 본 누군가는 나를 ‘직업’이라는 편협한 범위로 스스로를 구속한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모하고, 어리석고, 의욕이 넘쳤던 나는 지금의 나를 표류 중이라고 밖에 말 못하겠다. ‘학생’이라는 유예 기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의 위상’을 이렇게밖에 못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도 의문이다.


이승연
대학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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