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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혼자 살고 있나

나는 왜 자취를 시작했나. 직전학기 성적이 낮을 것 같아 기숙사를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께 ‘3학년부터는 기숙사를 신청해도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명목을 내세워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괜한 걱정에 성적표가 나오기도 전부터 걱정만 하고 있던 나와 달리 부모님은 추진력이 있으셨다. 덕분에 나는 기숙사 퇴관일에 새 집으로 짐을 옮길 수 있었다.
자취생활 준비는 어떻게 했나.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 생활을 약 2년간 했기에 일상생활 용품은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엌이라는 공간과 개인 세탁기가 생기는 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칼을 다루는 것이 아직 서툴러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건만 혼자 하루에 밥 한 끼라도 챙겨먹기 위해서는 많은 기구가 필요했다. 그릇, 접시, 수저 등은 나 혼자 지내는 곳임에도 두세 개씩 준비해야 했다. 1년간 정든 이불은 새 이불로 바꿨고, 종량제 봉투를 대량 구매해 서랍에 넣어뒀다. 
자취생활은 어떤가. 부모님은 1·2주에 한 번씩 나를 방문하시고, 두 분은 모두 깔끔한 것을 좋아하신다. 기숙사 생활을 할 때는 부모님이 기숙사 내부로 들어오시는 일이 없어, 룸메이트와 둘이 편하게 살았는데. 바닥과 책상은 물티슈로 매일 닦아야 하고, 흩어진 머리카락은 청소기로 흡수해야 한다. 세탁기는 습하지 않게 열어두고 옷들은 각을 만들도록 노력하며 갠다. 두 달이 넘도록 하니 이제는 습관이 돼 부모님은 오지 않는데도, 나는 깨끗한 방에서 지낸다.
자취를 시작할 때는 다들 로망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로망이었다. 기숙사와 달리 정말 혼자 지내니까 누구랑 이야기하지도 않고, 집중해서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그런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외출약속이 없으면 방 안에서만 이틀이고 사흘이고 멍하니 지내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심지어 설거짓거리를 만드는 것이 싫어 식사를 거르는 날도 있었다. 혼자 있으면 무기력함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움직이게 할 일이 더 줄어든다는 것을 잊은 나의 패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자취를 하나.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피곤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누워도, 하루 종일 책을 읽기만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나만의 공간. 2년간 기숙사에서 생활해도 사실 룸메이트들이 장기간 외출을 즐겨서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건만. 결국 다른 이와 한 공간에서 먹고 자는 동안 누구도 주지 않은 눈치를 보고 미묘한 압박을 받아왔나 보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 있다. 반면 나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라도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는 사람이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본가에 가는 것조차 가족과 함께하는 휴식이 아니라 가족을 대하면서 내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느껴져 힘들 때도 있었다. 자취는 성적하락으로 인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 충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직까지 완벽한 ‘자취(自炊)생활’이라기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최근 몇 주는 외출약속이 생겨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좋다. 내게 사람과 부딪히는 공동체 생활은 낮에 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밤에는 나만 있는 공간에서 다리 뻗고 뒹굴며 ‘나’를 챙기고 싶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혼자’ 산다.


권은정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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