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5 (일)

  • 구름많음동두천 9.7℃
  • 구름많음강릉 12.9℃
  • 흐림서울 10.5℃
  • 구름많음대전 13.0℃
  • 구름많음대구 12.0℃
  • 구름많음울산 10.3℃
  • 구름많음광주 14.3℃
  • 구름많음부산 12.1℃
  • 구름많음고창 13.8℃
  • 구름많음제주 16.0℃
  • 구름많음강화 8.6℃
  • 구름많음보은 10.8℃
  • 구름많음금산 12.7℃
  • 구름많음강진군 13.9℃
  • 구름많음경주시 10.7℃
  • 구름많음거제 11.1℃
기상청 제공

KNU, 이거 나만 궁금해?

내 생활관은 얼마나 오래 됐을까?


▲오는 10월에 개관할 예정인 누리관의 모습

현재 본교 생활관은 대구캠퍼스 기준 4,400여 명의 관생을 수용하고 있다. 생활관은 타지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캠퍼스 내 접근성으로 인기가 많다. 어쩌면 지금 생활관에서 이 신문을 펼쳐볼 당신, 지금 살고 있는 생활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우리는 생활관이 필요하다
캠퍼스 내 생활관이 개관하기 전, 타지 출신 학생들은 주로 하숙이나 자취를 통해 거주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이같은 거주 형태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됐고, 학생들은 생활관 건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개관부터 현재까지
생활관 건립은 1980년대 초부터 추진되기 시작했다. 1982년 4월 첫 번째 기숙사 건물 공사가 시작됐고, 1984년 9월 남학생 기숙사(B동, 현 긍지관)를 개관했다. 기숙사 개관에 따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동(현 문화관)도 1985년 9월 신축됐다. 이후 1988년 3월 여학생 기숙사(C동, 현 협동관)를 개관했으며, 1989년 3월에는 새로운 남학생 기숙사(A동, 현 성실관)를 개관했다.
이후 대학원생 기숙사인 D동(현 봉사관)이 1998년에, 새로운 2인 1실 기숙사인 E동(현 진리관), F동(현 화목관)이 2001년에 개관했다. 이후 2004년에는 알파벳으로 불리던 각 기숙사에 현재와 같은 이름을 붙였고, 2005년에는 기숙사라는 명칭을 생활관으로 바꿨다.
그 뒤로는 지자체 등 민간자본과 연계한 BTL 기숙사가 본교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향토관, 2009년에는 첨성관을 개관했고, 신축 기숙사인 누리관도 오는 10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생활관은 내·외부적인 사건사고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큼직한 사건으로 2002년 제27대 사생자치회(현 관생자치회) 회장 탄핵사건이 있다. 당시 사생자치회는 회장의 직무유기, 사생 권익 침해 등을 사유로 탄핵안 투표를 발의했고, 투표 결과에 따라 탄핵됐다.
2006년 2학기에는 생활관 출입 시스템을 손등 정맥 인식기로 바꾸며 크게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존 출입 방식인 바코드 카드 시스템이 낡아 현재 모습의 손등 정맥 인식기로 출입 시스템을 교체했는데, 이것이 관생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진행된 것이 문제였다. 정맥 모양은 생체 정보이기 때문에, 한동안 정보인권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기도 했다.
작년 여름에는 누리관(제2BTL) 공사에 대해 캠퍼스 인근 원룸촌 주민들이 집회를 열며 학생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누리관에 대한 수용 인원 감축은 막았지만, 이로 인해 누리관 개관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게 됐다.

생활관(대구캠)
*학부생 입주 가능 인원

긍지관 : 560명
성실관 :135명
첨성관 : 1362명
향토관 : 716명
협동관 : 428명
화목관 : 246명


유동현 기자/ydh17@knu.ac.kr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