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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나지 않은 죄책감이길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의도치않게 재단 모회사 직원 자녀이기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 사립재단 소속 학교를 나왔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경시대회나 공모전에서 높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성적순으로 자르면 30% 내외에 어중간하게 들어가서, 아예 못한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구나!”라고 칭찬을 듣지도 않았다.
진학 당시 우열반이 사라진지 3년이 넘지 않았으니, ‘학업성적’으로 학생을 차별하는 풍토도 남아있었다. 우대를 받는 쪽도, 무시를 받는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들의 기준에서 중간을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도서관에 박혀 살며 책을 읽었다. 가끔 다독상을 받거나 독서토론대회에 나갔고, 도서관에 어질러진 책을 보고 참지 못해 정리를 하면 그만큼 봉사시간을 받았다.
여러 소문을 들었다. 입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한 친구가 졸업할 때까지 계속 전교 1등을 유지해서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는. 그 친구가 수학 시험 서술형 문제를 조금 덜 풀었음에도 그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가 만점으로 채점됐다는.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친구 부모님이 교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소문이 시작이었다. 후배들에게 특정 교사가 입시면접에서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느냐’고 묻고는 ‘의사’나 ‘변호사’라고 답하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후배들 중 상당수는 부모님 직업이 ‘의사’, ‘변호사’, ‘교사’였고, 학부모교실에서 그 사실이 증명됐다. 몇몇은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대학원생과 교수와 과외를 했고, 몇몇은 연구실에 가서 작은 연구를 돕고 일지를 썼다.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생활과 마찬가지로 나도 적당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언젠가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겠지’라고 철없이 살고 있었다. 지난 8월 말, 본교 총학생회에서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제기된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를 냈다는 것을 보도하고 난 후,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해당 의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사고나 외고가 무슨 잘못인데?” “S대, K대 오면 다 입시비리 저지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짜증나”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조금’이었던 것은 어쩌면 그 친구들의 생각을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그 말을 듣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안다.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생긴 약간의 ‘정의감’과 적어도 스스로가 입시·성적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결백감’으로, 그 소문의 공간에서 눈과 귀를 막았던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 반성이 철이 완전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고 믿고 싶다.


권은정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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