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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기획

개성에서 본 평화의 블루오션



2016년 2월 10일 개성공업지구(이하 개성공단) 가동이 갑작스레 중단됐다. 당시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들은 막대한 물적 자원을 공단에 두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이러한 기업들을 돕고,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힘쓰고 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이사장(정치외교 88)은 북한을 연구하는 북한학자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경력도 있다. 그는 현재까지도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와 남북평화를 강조하며 각종 강연에 참석하고 있다. 그의 북한 연구 일대기와 개성공단의 가치를 들어봤다●


Q. 북한 및 통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계기는 무엇인가?
A. 학부 때 정치에 대해 굉장히 많이 공부했고, 이 과정에서 ‘분단’을 만났다. 왜 우리는 이런 불합리한 삶을 살아야 할까? 분단의 원흉을 공부하자 일제를 만났다. 전쟁이 끝나고 일제는 패망했지만, 한반도의 분단으로 일제 식민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일제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은 분단의 주체가 됐다. 군대도, 경찰도, 사법도, 행정도, 그리고 언론도.
한반도는 스스로 분단된 것이 아니다. 외세의 힘으로 인해,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갈라진 것이다. 일제는 청산됐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물적 토대는 분단이었다. 또 한반도의 분단은 여러 거짓, 왜곡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그 분단 체제 속에서 정치권력은 마음껏 독재를 일삼을 수 있었다. 정부에 저항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단을 해결하는 것이 이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곧 대학원을 가게 된 계기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분단의 진실을 공론화하고, 학자로서 이를 규명하고 싶었다.

Q.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A. 학생운동, 책, 술(친구) 3가지다.
정치외교학과였으니 당연히 많은 학과생들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 때는 학교에서 경찰이 학생들을 잡아가고, 사건을 날조하는 등 독재정권의 실체가 너무 명확했다. 당시에는 누구나 학생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책도 정말 많이 읽었다. 학생운동을 하려면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고, 책에서 읽은 지식들은 곧 자양분이 됐다. 애초에 대학은 학생들이 책을 보고 공부하는 기관이지 않나.
마지막으로 술(친구). 당시 우리가 가장 많이 썼던 단어는 ‘고뇌’다. 학생운동, 책, 술은 ‘삶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나’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 많은데, 과연 이것을 외면한 채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캠퍼스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밤을 샐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논쟁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Q.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A.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서 학생들에게 북한과 통일 문제를 가르쳤다. 어느 날 한 학생이 “교수님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북정책을 보면 너무 답답하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북맹(北盲)”이라고 늘 말했다. 분단체제이기에 국가는 북을 왜곡시키고 구조적으로 그들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었다. 즉 북에 대해 제대로 알면 평화통일은 바로 온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후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북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시작했다. 이 때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만나 북한 관련 정책을 도왔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으로 근무하게 됐다. NSC에서는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등 현안들을 보좌했다. 당시 내 직책은 전략기획실 행정관, 그중에서 한반도평화체제 담당관이었다. 대북정책 수립, 남북관계 현안 정리, 부처들을 점검하는 등의 일을 했다. 남북관계의 컨트롤타워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남북관계의 컨트롤타워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북과 만나보고 싶다고 강사 시절부터 이야기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일을 실제로 하고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북 평화주의 정책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협상했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Q. 청와대에서 나온 후 어떻게 개성공단에서 일하게 됐나?
A. 남북은 2000년 8월 개성공단을 짓기로 합의했다. 2003년 개성공단을 착공했고 2004년 첫 제품이 나왔다. 2003년 착공하던 시기 청와대에서 개성공단 업무를 담당했던 것이 나와 개성공단의 첫 인연이었다. 그 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개성공단에 직접 들어가 개성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대북 협상을 전담했다.
개성공단에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북한학자였기 때문이다. 북의 체제를 연구한 학자가 4년간 직접 그 체제에 들어가 장기 체류하며 연구한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들과 대화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학습이었다. 북은 미국과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일 전략은 무엇인지 등의 주제로 북측의 당원, 관료, 주민들과 매일 토론했던 경험은 학자로서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들에게 북한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얘기하면, 그들은 어이없어하곤 했다. 북한 주민들은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윤리적이었다.
그곳에서 북한에 대한 상식이 대부분 깨졌다. 우리가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와 집단주의 체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항상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역사는 북한을 전쟁을 원하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을 잘 알더라도, 북한은 잘 모르기 때문에 북미관계는 알지 못한다. 이것이 전에 이야기했던 북맹이다. 북한을 알면 북이 평화를 원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평화통일은 금방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배운 그 4년은,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다.

Q. 개성공단에서 지냈던 날들 중 인상 깊었던 날이 있다면?
A.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남북 간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개성공단 내 남·북측 근로자들은 모두 각별히 말과 행동을 주의해야 했다. 그 때 북측의 한 공단 직원이 남측 주재원에게 “오늘 날씨가 맑은 것이 남측 주재원들과 공차기 딱 좋은 날씨다”라며 “개성의 겨울은 많이 추우니 서울에 계신 분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전화했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미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간 평화롭게 통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처음 개성공단을 만들었던 이유는 남북평화를 경제부터 실현하자는 목적이었다. 평화경제는 서로가 단절된 분단경제와는 달리, 남북 6만 노동자들이 한 장소에서 같이 일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 달러를 벌기 위해서 개성공단을 가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은 평화를 위해 개성공단을 설치했다. 개성공단 착공을 위해 기존에 있던 최전선 부대를 후방으로 옮겼다. 월 100달러 이상의 금액을 줄 수 있었음에도 북한은 한 달에 50달러(63,000 원)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했다. 북은 개성공단을 돈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2015년에 임금이 최고로 많이 올랐는데, 그 금액이 월 15만 원 정도였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한 기업의 사장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대한민국의 제조 기업들에게 개성공단보다 좋은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높은 임금경쟁력과 임금인상률, 무관세, 서울과의 가까운 거리 등 개성공단은 입주 기업들에게 처음부터 특혜 그 자체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다. 한국의 동남아 노동자 1명을 고용할 임금으로 개성공단에서는 13명의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물류가 서울에서 개성까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반면. 동남아까지는 2주가 걸린다. 여기에 같은 언어와 문화, 정서가 공존해 친근함도 느껴진다. 가장 좋은 점은 이들이 북한의 경제구조에 의해 이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곧 숙련 노동자가 되고, 이들은 서울의 여느 공단보다 제품을 더 잘 만드는 인력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이 여러 곳에 만들어지면 구조적 저성장 및 일자리 문제도 모두 해소할 수 있다.

Q.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의 역할은 무엇인가?
A.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개성공단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개성공단 재개 정상화의 명분을 마련하는 역할이 51%다. 현재 개성공단은 미국의 반대로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문제다. 개성공단의 실질적 가치를 국민들이 알기만 하면 재개는 시간문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개성공단이 비정상화되기 시작했다. 공단에 기업이 입주하는 것을 막고, 들어가 있던 기업들조차 쫓아내려 했었다. 남북과의 관계는 나빠졌는데, 우리 기업들은 개성공단 안에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지난 2016년 2월 10일 대한민국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날은 설 연휴 마지막 날로, 공단 역시 휴일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내려와 있을 때 정부가 전면폐쇄를 발표했고, 기업들은 북에 있던 원자재, 완제품, 금형, 장부, 금고 등을 대부분 들고 오지 못했다. 이렇게 손실된 자산이 5,000~7,000억에 달하고, 대부분 기업은 망하거나 겨우 연명하는정도가 됐다. 우리 재단의 나머지 49% 역할은 개성공단에서 내려온 기업들의 경영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Q. 마지막으로 본교생들에게 개성공단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면?
A. 현재 청년들은 통일을 냉소적으로 보고, 잘못된 통일을 생각하고 있다. “통일에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은 전제부터 잘못된 이야기다. “평화에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에 찬성한다고 대답한다면, 통일에 찬성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개성에 있는 공단이 아니다.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고, 평화경제의 첫 시작이다. 개성공단의 재개는 우리 청년들의 삶을 완벽하게 바꿔 놓을 것이다. ‘통일 비용론’은 왜곡이다. 통일의 과정 속에서 세금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내고 기업과 경제에 번영을 부여하는 곳이 개성공단이며, 이것이 곧 국민 행복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개성공단이라는 블루오션으로 와라.



개성 공단 사람들
기획 총괄: 김진향
취재: 강승환 이용구 김세라
출판사: 내일을여는책

영화 속에서만 보던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이 함께 살을 부대끼며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 북한 사람들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았음을, 그들은 우리와 같은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었다.
개성공단의 사람들과 생활에 대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김진향 이사장(오른쪽)이 개성공단 직원들과의 체육대회에서 족구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유동현 기자/ydh17@knu.ac.kr
편집 곽나영 기자/gny18@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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