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4 (금)

  • 맑음동두천 6.8℃
  • 흐림강릉 10.6℃
  • 맑음서울 8.4℃
  • 구름많음대전 7.1℃
  • 구름많음대구 11.0℃
  • 구름조금울산 9.3℃
  • 흐림광주 12.1℃
  • 구름조금부산 10.8℃
  • 흐림고창 7.2℃
  • 구름많음제주 14.2℃
  • 맑음강화 5.3℃
  • 구름조금보은 3.9℃
  • 구름많음금산 4.2℃
  • 구름많음강진군 6.4℃
  • 구름조금경주시 6.3℃
  • 구름많음거제 10.1℃
기상청 제공

대학시론

인도 빈민과 한국인의 보건·의료

빈곤국에 대한 원조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극과 극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양쪽 다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보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한쪽은 빈민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충분한 식량과 투자할 돈일 뿐이기 때문에 충분한 원조와 기회가 주어지면 빈곤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다른 한쪽은 원조가 자유 시장을 왜곡하기 때문에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인 말라리아를 방지하기 위해 모기장을 무료로 나눠주면 장기적으로 모기장 산업 기반이 무너져서 오히려 해롭다는 식이다. 원조보다는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도록 사유재산권 제도 등을 정비하면 자연스럽게 빈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올해 빈곤 문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머드 알리,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는 빈곤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실제 인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그들이 만난 빈민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소비자처럼 경제적 인센티브에 단순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보건·의료 시장에서 그러한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인도의 빈민들은 오염된 식수 때문에 쉽게 장염을 앓는다. 인도 빈민들은 상수도 시설이 없고 멀리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하루 종일 쓴다. 길어 온 물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염소 캡슐 하나만 투입해도 장염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당연히 저렴한 비용에 공급되는 염소 캡슐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장염이 걸렸을 때 거의 효과가 없는 형편 없는 사설 진료소에서는 큰 돈을 쓰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물가에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염소를 투입해 주는 기계를 설치했더니 사용률이 크게 증가했다. 또한 빈민들은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잘 시키지 않는다. 예방접종을 받은 아이들은 병에 덜 걸리고 어른이 됐을 때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등 그 혜택이 대단히 큰데도 그렇다. 비용이 문제라면 예방접종을 무료로 했을 때 접종률이 크게 높아져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현지에서도 큰 혜택이라고 볼 수 없는 정도로 소량의 콩을 나눠주었더니 접종률은 크게 올랐다. 사람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할 때 슬쩍 옆구리를 찔러주는(넛지) 식이다. 염소 투입을 위해, 예방접종을 위해 감수해야 할 약간의 번거로움이 그들에게 큰 심리적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은 원조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보다는 어떤 방식의 원조가 그들의 행동을 바람직하게 이끌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이론적 논의에 천착하기보다는 무작위 통제 실험을 통해 효과적인 원조 방식을 찾아 빈곤 퇴치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사실 보건·의료 부문에 있어 인도 빈민들의 문제는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의료 시장은 커피 시장과 다르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생물학, 의학 지식이 필요하다. 인도 빈민들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대부분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볼 만큼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매순간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할 만큼 이성적이고 참을성이 있지도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어제 하던 대로 오늘도 행동한다. 가끔은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행동을 수정하지만 반드시 좋은 쪽이라는 법은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백신에 대한 혹세무민이 판을 치면서 접종률이 떨어져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다행히 한국인은 인도의 빈민들과 같이 귀찮고 고민스러운 선택을 할 필요가 적다. 영유아 백신은 의무화되어 있어 아이의 백신 접종 여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돗물은 선택할 필요도 없이 염소로 소독되어 우리 집까지 온다. 한국 정부는 질병마다 필요한 치료법과 가격을 정해 놓았고, 한국인들은 정부의 인정을 받은 실력 있는 전문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면서 정부가 개인의 귀찮고 고민스러운 선택을 대신해주는 현재 시스템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도 보건·의료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지나치게 많이 줘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 목적의 CT 촬영은 저선량 폐 CT를 제외하고는 이득이 밝혀진 바가 없고 방사선 피폭이라는 추가적인 비용을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PET-CT까지 건강검진 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보건·의료와 같이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하기 어렵고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서는 소비자의 권리가 무조건적인 진리가 아니다. 교육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배너지와 뒤플로의 책에 나오는 빈곤국 교육의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윤민호 교수
(경상대 경제통상)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