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1 (수)

  • 구름많음동두천 9.6℃
  • 구름많음강릉 9.5℃
  • 박무서울 9.7℃
  • 박무대전 9.8℃
  • 박무대구 1.8℃
  • 구름많음울산 9.5℃
  • 박무광주 6.2℃
  • 흐림부산 11.6℃
  • 흐림고창 9.6℃
  • 구름조금제주 12.0℃
  • 구름많음강화 10.1℃
  • 구름많음보은 -0.2℃
  • 흐림금산 3.1℃
  • 흐림강진군 3.0℃
  • 구름많음경주시 1.5℃
  • 구름많음거제 7.3℃
기상청 제공

복현메아리

내 두뇌를 건드리는 것들

길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학교 복판에서 차도로 기어나오며 끊임없이 울고 경련을 일으키던 고양이다. 신경증세가 지속되고 의식이 없어 좋아질 확률이 희박하다던 아이는 기적처럼 이틀 뒤 눈을 떴고, 씩씩하게 밥을 먹고 기력을 회복해 지금은 임시보호처에서 사랑받는 중이다. 좋은 임시보호자님을 만나 루비라는 멋들어진 이름도 생겼다. 백만 원을 웃도는 병원비는 SNS 홍보를 통해 모금된 후원금으로 충당했고, 남은 돈은 구조와 임시보호에 도움을 주신 수의대 동아리에 기부했다. 여기까지를 들은 모두는 대단하다며 나를 추켜세우는데, 주로 마음이 따뜻하다는 칭찬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 한구석이 뜨끔한다. 내가 고양이에게 뻗은 도움의 손길이 과연 정말 도의적 책임감에서 나온 것일까, 하는 마음에서다.
길에 쓰러져 있던 그 아기고양이의 무늬는 집에 있는 나의 사랑스런 반려묘와 똑같았고, 나는 아픈 내 고양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는 상황이 닥칠까 지독히도 두려워했고 또 그만큼 많이 상상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마치 사랑하는 대상이 아파 쓰러진 것과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수도 없이 상상했던 감정은 뜻밖에도 그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찾아왔다.
미래에 닥칠 일을 상상하고 그려 보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의 행위 체계에 밑그림을 겹쳐 그리는 일과도 같을지 모른다. 어떠한 감정을 불러내기 위한 몇 가지 상황적 조건을 우리 두뇌가 체계화하고 나면,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상황이 찾아왔을 때 그 감정의 굴곡이 예견된 형태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지만 내 몸과 머리가 ‘고양이가 아프다’라는 상황적 조건에 상응한 반응, 즉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라는 두뇌의 명령을 즉각적으로 따른 것처럼 말이다. 이는 굳이 동정이나 두려움 등 극적인 감정이 아니더라도 성립하는 현상이다. 명품과 비슷한 속성을 가졌으나 가격이 더 싼 소위 ‘저렴이’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인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몇 가지의 상황적 조건에 특별한 감정을 갖고, 이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복적으로 두뇌에 주입시킴으로써 비로소 어떠한 행위의 알고리즘이 완성되는 것이다. 위 예시에 적용하자면 명품 화장품의 색깔이나 케이스 디자인 등이 상황적 조건으로 설정되고, 브랜드에 관계없이 위 조건들을 충족하는 저렴이 제품이 등장하면 여기에 소비 충동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아마 똑같은 상황이 또 와도 나는 대뜸 고양이를 품에 안아들고 택시를 잡아타 병원으로 향했을 거다. 내가 특별히 좋은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 두뇌가 이미 ‘반복적인 상황 조건 학습’을 통해 그렇게 행동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특정한 상황을 늘 상상하고 곱씹으며,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학습된 두뇌가 지시하는 대로 따른 경험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원인과 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 안의 내밀한 감정들뿐일 것이다.


김진솔
(인문대 국어국문 19)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