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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나는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9시 오전 수업이 평소보다 일찍 끝난 후, 나른한 몸으로 건물을 나섰다. 대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이른 1교시, 교정 안은 새벽 산처럼 고요했다.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워 해를 가렸지만 먹구름은 아니어서 하얀 천장이 생긴 듯 했다. 이 나무 저 나무로 바쁘게 날아다니는 참새들의 지저귐 소리말고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문득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아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이 서로 삭삭대며 부대끼는 소리만 울려퍼지는 백양로 거리 속에서 문득 더욱 혼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잘 없는데, 그래서 일까. 마음 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이 기분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이 감정, 즉 외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은 자연 속에서 특히 약한 개체에 속한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 수렵이 주된 활동이었던 과거 인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식량을 구하고 자손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를 구성해 움직였다.
육체적 고통 때문에 육체적 위험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사회적 고통(공동체로부터의 추방) 때문에 고립의 위험을 피하도록 진화했다. 인류의 조상은 서로의 사회적 유대감에 의지해 안정을 도모했고, 그 결과 여태까지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있어서 사회적 고통을 느낀다는 말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인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지각이 발달할 수 있었다.
당시 인간들은 공동체에서 낙오되거나 배척당하는 것이 곧 야생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이런 생존을 위한 선택이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무의식 속에 고립을 두려워하는 특성이 자리 잡게 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날 더 이상 짐승의 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낮아진 시대에서 태초의 존재 이유에 기댈 수 없게 된 외로움은 현대인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분화됐다.
이번 기획에서는 현대의 외로움을 철학적, 심리학적 두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철학적 관점


철학에서 흔히 ‘실존주의’라 불리는 학파가 있다. “실존은 본질보다 선행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실존주의는 인간이 자신 속 이성적-사회적 면모보다 현재 처한 상황이나 인간 특유의 근본적 조건에 따라 정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때 실존보다 본질(인간의 이성적-사회적 면모)을 중요시하던 전통적인 철학의 세계에서 이단으로 취급받고 핍박받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실존주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근본적 조건 중 하나인 ‘실존적 고독’은 “인간은 날 때부터 홀로 있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독에 관심을 쏟고 연구한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마르틴 부버 등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외로움을 이러한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해 분석했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정치철학적인 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Ungesellige Geselligkeit”
위 독일어 문구는 ‘비사교적 사교성’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전제로 한 관용어구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혼자(한 몸에 하나의 정신)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이기적이지만, 스스로의 보신과 마음의 평온을 위해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를 현상하려 애쓴다. 칸트는 이런 모습을 비사교적 사교성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타인과 함께 하는 ‘광장’으로 나가기보다 혼자 있는 ‘골방’을 지향하는 생물이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 또한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회성을 형성하지 못했을 때, 즉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관계에 대한 부족함을 느낄 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나타난다. 즉 외로움이란 자기 자신 속 관계의 깊이에 따른 체감 차이로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는 오늘날 20대가 외로움을 특히 잘 느끼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 면대면으로 사회성을 형성하는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통신기기와 SNS기술의 발달로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인간관계를 만드는 디지털 시대까지 모두 경험했다. 관계 형성의 폭은 넓어졌지만 인간관계의 무게는 가벼워져 아날로그 방식으로 얻었던 사회성만큼 관계에 대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언제나 만족스러운 사회성을 형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실존적 고독에 따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인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실존적 고독을 어떻게 승화하느냐가 향후 인생을 바꾸는 열쇠가 된다. 실존적 고독을 승화하는 유형에는 긍정적인 유형과 부정적인 유형으로 나뉜다. 긍정적 유형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대중 속에 맞춘 자신의 모습이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자기 본래성’을 획득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실존적 고독을 영위하는 ‘자기생산적 고독’은 자신의 존재의의 및 자기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 부정적 유형은 흔히 ‘그들의 문법’이라는 것에 무조건 맞춰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의 본래성을 상실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본래성을 잃어버린 채 타의에 의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은 자기혐오와 함께 타자혐오까지 느끼게 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정신적 불안증으로 표출돼 충동적 폭력행위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움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님을 자기생산적 고독의 유형을 통해 알 수 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난쟁이를 업고 산을 오르는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난쟁이는 ‘지상’, 즉 대중들에게 속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중력’, 즉 ‘그들의 문법’으로부터 저항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난쟁이를 업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곧, 세속적인 관념을 인정하고 짊어진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쟁취하기 위해 고독을 자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창조적 사상가나 예술가들은 상식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고군분투 했으며,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대학생에게도 필요한 자세이다. 그저 외로워지는 것이 두려워 나가지 못하고 계속 속해있는 ‘군중의 논리’가 있다면 용기를 내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실존적 고독이라는 전제 속에서 자기파괴적 고독이 아닌 자기 생산적 고독으로 올바르게 승화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학생, 고독을 발판으로 성장하다

심리학적 관점


벌들의 세계에서는 여왕벌이 죽었을 때 모든 일벌들이 암컷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벌은 주변 환경에 따라 스스로의 기능, 행동, 생식기까지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도 이와 유사하게 환경에 따라 육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다. 인간의 경우 타인이 존재할 때 심장박동이 더 빨리 뛰거나 땀샘이 활성화되고, 업무 처리속도가 향상되기도 한다.
이렇게 동물이 주변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을 ‘사회적 촉진 효과(social facilitation)’라 부른다.
벌들에겐 여왕벌이 사라지는 것이 조건의 변화이듯 인간에게 있어 사회적 촉진 효과는 타자와 함께 있는 상황과 홀로 있는 상황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적·생리적 조건의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상담심리학에서는 외로움을 타인과 같이 있는 조건과 홀로 있는 조건의 생리적 차이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사회적 촉진 효과를 증명하기위해 노력했던 대부분의 심리학자 및 정신과 의사들이 그랬듯이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는 숱한 실험을 하던 중 인간의 ‘공감능력’에 주목하게 됐다. 그는 인간의 공감능력이 타인과 소통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발전한 것이라 생각한 대부분의 학자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졌다. 자이언스는 인간의 뛰어난 공감능력의 비결이 사회적 욕구에서 생겼다고 보기보다 생물학적 구조에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1990년대에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짧은 꼬리 원숭이로부터 최초로 발견됐고, 이 발견은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해주는 첫 단추로 작용했다. 거울 뉴런은 어떤 동일한 개체의 동물 한 쌍이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 한 개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가만히 있던 다른 개체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신경세포이다. 다만 인간의 뇌로 실험을 할 수 없어서 학계는 인간이 거울 뉴런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자들은 거울 뉴런 세포로 인간을 관찰하기보다는 인간이 타인의 행동에 거울처럼 반응한다는 ‘거율 뉴런 체제’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거울 뉴런 체제의 존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인간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집단에 속해있을 때 거울 뉴런 덕에 주변에서 여러 감정적 자극을 받는다. 그러다 집단에서 고립되거나 퇴출되면 거울 뉴런이 기능하지 못하게 돼 인간에게 경고신호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경세포가 잘 동작하기 위해서라도 무의식적으로 고립을 피하려 한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는 타자와 공감하도록 설계돼있는데 내외부적 문제로 공감을 하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성격장애 및 자폐 등으로 인해 이런 상황에 오랫동안 노출되는 환경이 주요 요인으로 곧잘 지목된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20대를 ‘자기정체성의 시기’라고 불렀다. 10대에 본능적으로 외로움을 피해 다닌 인간이 20대에 자아를 실감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나가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음으로서 정신적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추가로 그는 고립이 얼핏 나빠 보이지만 자아성찰을 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인식하고 고립의 다음 단계인 고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현실적인 문제로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남의 평가로부터 얻으려 한다. 경쟁을 통해 높은 성적을 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만이 자아정체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강요받아온 것도 한몫하고 있다.
외로움에 잠식되기 두려워 집단 속에 머물고 그들의 가치관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면, 그 집단으로부터 우연히 멀어졌을 때 찾아오는 고립감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익숙한 환경을 뚫고 나와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노출되고 탐색하면서 자기 독립성을 온전히 인식한 인간만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가이 윈치,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2015
-박진영,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013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2013


조영재 기자/cyj17@knu.ac.kr
편집 곽나영 기자/gny18@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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