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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5.18 사적지에서 만난 광주의 마흔 번째 오월

지난달 18일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기념식을 진행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40주년을 기념하고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최후의 항쟁 장소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 앞에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슬로건 아래 앉아있던 사람들. 누군가는 침묵한 채, 누군가는 눈물을 훔쳐내면서 그리고, 누군가는 기념공연을 보며 당시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18일로부터 꼬박 40년이 지난 지금, 오늘의 광주는 그때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곳곳을 돌아보며 광주의 마흔 번째 오월을 담아봤습니다●



- 사적 24호 ‘망월동 5.18 묘역’

지난달 16일, ‘대구통일열차 5.18 민주기행’에 참가하기로 한 본교 학생들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했다. 두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묘지에는 노란 리본이 나무들 사이를 팽팽하게 연결한 줄마다 엮여서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나하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두환 이 ***…” 이 노란 리본들은 ‘신 묘역’이라 불리는 제1묘역 앞까지 쭉 연결돼 있었다. 리본을 따라 올라가니, 해설사가 참배 식순과 헌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한 학생이 대표로 흰 국화를 들고 참배광장 앞에 섰다. 안내방송에 따라 헌화한 후 잠시 묵념했다. 수십 명 규모의 단체 몇 팀이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배 후 제1묘역을 돌며 몇몇 열사의 묘비 앞에 대구통일열차 측이 준비해 온 꽃을 내려 놓았다. 대구·경북 출신 열사들을 위한 것이었다.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는 본교 출신 권용호 열사와 계명대학교 출신의 임진호 열사를 비롯해 5~6명의 대구·경북 출신 열사들이 모셔져 있다.
제2묘역 입구로 향하자 길 한쪽이 푹 꺼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근 민박집에 전두환 씨 부부가 방문했다는 기념비가 그곳에 박혀있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밟고 지나다닌 탓에 주변 콘크리트는 다 깨지고 비석의 형체도 흐릿해졌다. 제2묘역은 ‘망월동 묘지’로 불리는 곳이다. 망월동 묘지는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을 가매장했던 공동묘지로, 당시 계엄군은 이곳에 매장된 시신들을 치우고 민간인 사망 사실을 숨기고자 유가족들에게 이장을 강요하기도 했다. 한때는 이곳에 시신을 묻고 참배하는 것조차 불법이었다고 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분들이 주로 안장된 제1묘역과 달리, 제2묘역에는 민주화운동과 노동, 인권운동 등에 힘을 썼던 열사들이 모셔져 있다. 이한열 열사, 백남기 농민을 비롯해 5.18민주화운동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독일 제1공영방송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묘도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묘역을 돌고 내려오면 5.18추모관을 둘러볼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민주화운동 역사, 우리나라 민중 운동의 흐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둔 곳이다. 방명록에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관람객들의 인사말이 남겨져 있었다. “願榮光歸香港, 我學光州精神(영광이 다시 오길, 광주의 정신을 배웁니다)” 정갈한 필체의 한자로 남겨진 홍콩 관람객의 방명록이 인상적이었다.
추모관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동학농민운동, 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 등이 새겨진 부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해설사는 “광주의 역사가 독립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는 몇몇 영웅이 아닌 모든 시민들이 만든 것임을 기록하기 위해 설치한 부조”라고 설명했다.

- 사적 4호 ‘금남로’, 사적 28호 ‘전일빌딩’

국립5.18민주묘지를 둘러본 후 광주 시내 한복판인 금남로와 충장로 인근으로 이동했다.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했던 상징적인 거리다. 당시 시민들이 행진했던 길목, 총탄이 날아들었던 건물 등이 아직도 고스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4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달 11일부터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한 전일빌딩245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일빌딩의 뒤에 붙은 ‘245’는 특별한 숫자다. 주소가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이기도 하고, 2016~2017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현장감식 결과 245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곳 내부를 관람하고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18민주광장, 하늘마당이 훤희 내다보였고, 저 멀리 무등산도 보였다. 5.18민주광장은 40주년 기념 행사 리허설로 활기가 넘쳤고 북적였다. 그 광경을 구경하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시민 강점식 씨에게 말을 걸었다. “광주 사시나 봐요, 생각보다 분위기가 침울하거나 슬프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짧게 이야기를 풀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행사가 축소된 게 아쉽죠. 내가 그날 이곳에서 모든 것을 다 봤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헬기 사격도 있었고. 지금 행사를 보면 축제 같은 분위기라 할 수도 있지만 광주 사람들한텐 슬픈 일이잖아요.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하는 거죠. 그땐 국가가 사람을 죽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우린 그걸 다 봤는데….”
한참 동안 바깥을 구경하다가 다시 내부로 들어왔다. 전일빌딩245의 9층과 10층에는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원형 보존된 245개의 탄흔 등 여러 전시물과 기획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데이트하러 온 듯한 젊은 커플,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전시물을 주의 깊게 살피는 노인 등 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광주의 지난 5월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 사적 5-1호 ‘옛 전남도청’, 사적 5-2호 ‘5.18민주광장’

옛 전남도청 건물 옆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가기 위해 걷는데 갑자기 웅장한 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광장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1년 내내 오후 5시 18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나온다고 했다. 1~2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군가는 걸음을 멈추고 묵념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말없이 앉아 노래를 듣기도 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흰 페인트가 새로 칠해진 옛 전남도청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본부이자 최후 항쟁지였던 곳이다. 40주년을 맞아 잠시 시민들에게 개방된 이곳에는 4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총탄이나 깨진 창문들은 남아있지 않았으나 스마트 모니터 등으로 당시의 사진을 볼 수도 있고, 설명을 들을 수도 있도록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이곳을 지나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문화 공연과 전시, 서적을 볼 수도 있고, 시민공간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 연극을 예매하기 위해 로비에 앉자, 바로 앞 모니터에 현재 진행 중인 연극이 실시간으로 방영됐다. “이찌 모덜 빗속으 여인~” 배우들의 넉살스러운 사투리가 흥겨운 노래가 섞여 나왔다.

2020년의 광주는 마냥 슬픔에 젖어있는 도시가 아니었다. 그날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5.18민주화운동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광주 곳곳에 녹아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은 슬픈 역사이면서도 앞으로 한국 시민사회의 이정표가 되어줄 자양분임을, 여전히 찬란한 오월의 광주에서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조현영 전임기자




▲ 국립5.18민주묘지 제1묘역의 전경.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이 꽃을 가져와 묘지마다 장식해 두었다.


▲ 국립5.18민주묘지 제1묘역의 추모탑. 40미터 높이의 이 탑 중앙부분은 손으로 달걀을 감싼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다. 


▲ 전일빌딩에서 내려다 본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의 모습. 


▲ 사적 1호 전남대학교 정문의 기념비. 전남대학교는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발원지로,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고 시내로 진출하며 항쟁이 시작됐다. 


▲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슬로건이 곳곳에 걸린 금남로. 바로 옆에 5.18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 국립5.18민주묘지 5.18추모관 내부 전시물. “여기 5.18추모관은 역사적 진실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만나는 곳입니다”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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