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4 (금)

  • 흐림동두천 25.7℃
  • 구름많음강릉 30.8℃
  • 구름많음서울 27.2℃
  • 구름많음대전 28.8℃
  • 구름많음대구 32.8℃
  • 구름많음울산 29.3℃
  • 구름많음광주 28.8℃
  • 구름조금부산 27.6℃
  • 구름많음고창 28.2℃
  • 구름조금제주 30.5℃
  • 흐림강화 24.9℃
  • 구름많음보은 27.4℃
  • 구름많음금산 29.3℃
  • 구름많음강진군 27.7℃
  • 구름많음경주시 28.9℃
  • 구름많음거제 27.1℃
기상청 제공

복현메아리

아나키스트가 필요한 지금, - 일상에서 아나키즘 실천하기 -

대한민국 청년, 유럽의 아나키즘을 만나 다. 지난 학기에 휴학을 하고서도 뚜렷한 목 적지를 몰라 늘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길을 잃고 두려움 속에 서 헤매고 있을 때 『19세기 유럽의 아나키 즘』을 만났다.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불 만 대신 국가에 대한 ‘분노’를 생각하게 해 준 이 책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우연 으로 만나 삶의 선물이 되어준 이 책은, 언 론인을 꿈꾸며 글을 쓰고 국가에 대해 고민 하곤 했던 나의 정치적 감수성을 되찾아 주 었다. 개념이 생소하고 내용도 쉽지 않았지 만 나에게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나키즘 그 자체를 넘어서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말하고, 대한민국 청 춘들을 힘들게 하는 ‘대한민국’을 말했으며,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기억해야 할 ‘조 언’을 건넸기 때문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과거 유럽의 아 나키즘을 불러와야 할 때 부끄럽지만 그동안 ‘아나키즘=무정부주 의’로 착각해 왔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중대한 사실은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국가 자체를 반대하고 국가의 폐지 혹은 절멸을 지향하 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 치로 여기고 그 자유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존재를 반대한다. 즉, 모든 권력에 반대한 다. 권력은 국가를 작동시키는 핵심이기 때 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도 타도의 대상 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와 정치가 없는 사회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19세기 유럽 의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이 현대사회에 ‘왜’ 필요한지 아는 것과 그 실천적 ‘대안’ 을 찾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전통주의 아나키즘에 대해 읽으면서 아나 키즘이 그동안 왜 빛을 잃었는지에 대해 고 민했다. 그 이유를 근대 철학적 관점에서 발 견했다. 봉건적 제도를 타도하고, 억압으로 부터 해방하고자 했던 19세기에는 아나키즘 의 ‘정신’이 필요했지만, 그 정신을 기초하 던 근대 철학적 관념은 현 시대의 자본주의 와 신자유주의를 만나자 오히려 더 각박하 고 메마른 사회를 만들었다. 아나키즘의 사상적 기초는 자연법에 있 고, 자연법은 인간의 이성에서 출발했다. 그 렇기 때문에 아나키즘은 인간의 이성 토대 위에 존재한다. 최초의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는 고드윈은 인간의 ‘이성인’으로서 완전가능성을 신뢰하며, 인간 스스로 이성을 통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자유사회인 동시에 이성인이 집합된 사회다. 이처럼 근 대철학의 정신은 19세기 이후 인간 ‘이성’을 제외한 일체의 권위를 해체하려 했다. 인간 의 절대적 이성에 근거한 주체 철학을 완성 시킨 근대 철학자 칸트에 따르면, 주체는 이 성적이기 때문에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이다. 따라서 나 자신의 법칙에 따라 행동을 선택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자율성을 가지 고 있다. 근대적 개인의 의미인 나 자신만 이 나의 행동에 책임질 유일한 원천인 것이 다. 아나키즘 사상적 기초의 연장선인 근대 적 관념에서 인간 행위란 인간 주체가 스스 로 책임을 져야 하는 행동이다. 당시에는 개 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던 시대였기 때 문에 이러한 인간의 이성과 진보를 앞세운 철학과 관념, 그로부터 나온 혁명들이 필요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맞은 오늘날, 우 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성을 가진 주체로서 자기 행동에 책임 을 지지 않으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 각한다. 성적이 낮고, 취업을 하지 못하면 더 열심히 하지 않은 나를 탓한다. 19세기 근대 관념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의 주 체를 만들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만 나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더욱 옥 죄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국가 는 ‘처벌’이 아니라 ‘훈육’이라는 방법으 로 아주 정교한 방식으로 헤게모니를 형성 하여 우리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근대사회 와 다르게 현대국가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며 우리를 관리한다. 그 권력 아래서 는 지배자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착취’가 작동한다. 현실의 장벽을 넘 어서지 못한 ‘나 자신’에 실망하고, 나보다 잘난 ‘타인’을 힐난하기만 한다. 마침내 오 늘날 우리는 분노를 잃었다. 정치적으로 직 접 행동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자 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관용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에 서 신분제도와 외적인 통제는 없어졌지만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통제하는 덫에 갇히 게 되었다. ‘할 수 있다’는 말로 유한한 능 력을 마치 무한한 능력처럼 착각하게 하 고 끝없이 욕망을 확장시켜 결국 그 끝에 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 없음’을 깨닫고 허무주의에 빠져버리기 쉽다. 우리가 맞서 야 할 것은, 성과사회의 끊임없는 자기착취 와 현대인들의 ‘무기력함’이다. 무기력, 허 무, 타인과의 비교 등 보이지 않는 권력이 우리를 통제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19세기 유럽의 아나 키즘을 불러와야 하는 이유다. 19세기 아나 키스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나’ 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직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에 대하여 끊임없이 저항하고 불복종했 다. 그리고 ‘직접 행동’했다. 이들처럼 개인 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여겼던 그들의 정 신을 불러와, 보이지 않는 권력에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 소중한 ‘삶’을 ‘생존’으로 만드는 정치권력에 분노하자. 그렇다면 아나 키즘 정신으로 작금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 아나키즘을 실천하기 뜨거운 감성과 냉철한 이성, 용기를 가 진 21세기의 아나키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나=아나키스트=자유인’임을 기억하고, 행 동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 바르는 시민다움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 장했다. 사회구조와 생산양식체계를 바꾸 기 위한 볼셰비키 혁명은 폭력을 동반했 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패했다. 시민다움 의 정치는 폭력 그 자체에 반대한다. 우리 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여 폭력을 수반하는 거대담론의 정치가 아니라, 불공정한 제도 를 ‘개인적 수준’으로 끌어들여 아나키즘 을 실천해야 한다. 결코 정치참여나 사회운 동을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일 상에서 실천하다 보면 조금씩 자유를 되찾 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 일상적 실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먼저 아나키 공동체와 본질이 같은 ‘연 대’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나키 공동체는 자율적이고 분권화된 작은 공동체다. 사회 주의 아나키스트인 크로포트킨이 인류의 본능이라고 말한 상호부조와 같은 조직이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시민연대다. 여성운 동, 노동조합 등 시민들끼리의 연대에 참여 하면 삶 또한 진화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 다. 두 번째는 이 책에서 말한 우회 의제 의 방식 중 하나인 문화예술을 가까이 하 는 것이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 은 “참된 인식으로 사회의 부당함을 진지 하고 대담하게 묘사하려는 창작 방식은 가 두 연단의 선동가가 보여주려는 가장 격렬 한 장광설보다 더 큰 위협이자 보다 강력 한 영감이 된다”고 말했다. 텍스트를 끊임 없이 쓰고, 읽고, 문학을 내 옆에 둠으로써 ‘삶의 의미’를 되찾고 마침내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 더 간단히 실천하는 방법도 있다. 공정무역 커피 소비, 채식하기, 퀴어 축제 참여하기 등 불공정한 제도를 자신의 삶에 끌어들여 작은 근육을 쓰자. 우리 몸의 작 은 근육들이 모여 전체적인 몸매를 완성시 키듯,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마침내 대의제 라는 한계를 극복하여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개개인이 삶의 정치를 이루어 낼 때 우리는 최상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19세기 유럽의 아나키스트가 21세기 대한 민국에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정신에 있다. 그들로부터 국가에 대해 분노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저항하며, 불복종의 용기를 배울 수 있다. 21세기 아나키스트가 되어 다시 한 번 ‘자유’를 외쳐야 한다. 우리 모두는 국가 의 부속품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의 나’ 가 되어야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근 로자’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가 말한 작업과 행위를 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 고 수많은 청춘들이 미래의 두려움에 떨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나키스트의 정신 과 열정에 가담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정수현 (사회대 신문방송 16)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