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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번역공동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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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또는 직업과 혼용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몽상의 유의어로 쓰이기도 하는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서양에서 번역사(史)를 기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학교’다●

 
톨레도 번역‘학교’

번역은 지식의 축적과 확장에 직접적으로 공헌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저 멀리 7세기경 이슬람제국의 칼리파들은 경쟁적으로 영토와 지식을 확장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 의학, 수학 및 천체학 등 지식과 기술을 아랍어, 페르시아어 및 시리아어로 활발하게 번역하였다. 그렇게 번역된 지식은 수용, 전파되고 발전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제국의 힘은 물리적으로도 확장되어, 8세기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이베리아반도에까지 미쳤다. 11세기 말, 기독교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다시 회복하면서, 12-13세기 톨레도를 중심으로 과거 번역된 저작의 재번역이 이루어졌다. 아랍어로 번역되었던 그리스 고전과 이슬람제국의 수학을 포함한 당시 최고 자연과학적 성과가 라틴어와 카스티아어로 다시 번역된 것이다. 반도의 한가운데 위치한 톨레도에는 아랍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및 라틴어 능력자들이 모였고, 때로 번역에 부족한 언어나 학문적 지식을 그들은 공동작업으로 채워 나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라틴어 번역을 연구하던 프랑스 역사학자 아마블 쥬르당(Amable Jourdain, 1788-1818)이 12-13세기 톨레도에 번역 학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전승된 문서에서 언급되던 Collegium이라는 라틴어를 프랑스어로 ‘학교’를 뜻하는 Collège로 번역하였고, 프랑스어가 다시 학교라는 의미의 스페인어(Escuela)와 독일어(Schule)로 번역되면서 그 뜻을 굳히게 되었다. 쥬르당을 포함한 역사학자들과 번역학자들은 톨레도 번역‘학교’의 실체를 상정하고, 이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하였다. Collegium에는 함께 모여 이루는 배움의 공동체인‘학교’라는 뜻도 있지만, 사람들의 모임, 단체 등의 뜻도 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톨레도 번역학교를 번역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입학하여 배우고, 졸업하는 구체적 물리적 공간으로의 학교가 아니라, 당시 톨레도에서 번역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 번역가들이 따로 또 같이 모여 작업했던 것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해한다. 12세기만 해도 아랍어에서 다른 언어를 거치지 않고 라틴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오한 철학, 의학, 수학 등 텍스트를 홀로 번역할 수 없으니, 아랍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들은 모여 작업하며 자신의 지식과 통찰을 나누며 그 깊이를 더하였고, 그런 작업의 과정이자 결과로 위대한 번역 저작들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그 멀고 오래된 톨레도의 이야기가 왜 오늘 여기로 소환되는가?

꿈을 꿈틀거리게 하는 공간
 – 유럽번역공동체

이제부터 풀어놓을 다른 이야기를 위해서이다. 방학이 되면 독일로 달려가 짧게는 며칠 또는 길게는 한 달씩 머무르며 작업하는 유럽번역공동체(Europisches bersetzerkollegium, EK)라는, 그동안 숨겨두었던 보물 이야기이다. 우선 공동체가 있는 슈트랄렌이라는 소도시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인구가 채 이만도 되지 않는 그곳을 독일인들도 잘 모른다. 독일어 변모음 를 풀어 쓰면 ae로도 쓸 수 있는데, 어떤 독일인들은 슈트랄렌의 ae를 변모음을 풀어 쓴 것으로 생각하여 ‘슈트렐렌’으로 발음하며, 그곳이 어디인지 도리어 내게 묻는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주변지역에서는 a 다음에 오는 e는 a를 장음으로 발음하도록 하여, 이 도시의 이름은 슈트랄-렌으로 읽어야 맞다. 그럼 그곳은 어디인가? 유럽 연합(EU)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독일은 연합의 가운데에 있고, 아홉 나라나 되는 이웃과 국경을 공유한다. 국경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관리, 감독이나 통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북서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국경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북독일에 있는 슈트랄렌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이라는 연방주의 작은 도시이며, 자전거로 30분이면 휘리릭 네덜란드로 가서 맥주 한잔 걸치고 유유히 돌아올 수도 있다. 변방의 작은 도시와 번역공동체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글이 아닌 이상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번역을 읽는다. 그 누군가와 작가를 동급으로 다루지 않는 일반적 인식을 고려해도, 때로 어떤 번역가들은 작가와 같은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여, 당장 이름이 떠오르는 번역가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역자는 작가의 대접을 받는 것이리라.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로 잘 알려진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엘마 톱호벤(Elmar Tophoven, 1923-1989)이 그런 대접을 받는 번역가였다. 슈트랄렌은 톱호벤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곳이다. 그는 1978년 당시 문학 번역가 협회의 의장이던 클라우스 비르켄하우어(Klaus Birkenhauer, 1934~2001)와 힘과 뜻을 모아 자신의 고향에 유럽번역공동체를 만들어 번역가들을 위한 작업 및 생활 공동체 공간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건물 일부에 세를 내어 번역가들이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방 몇 개로 시작하였다. 사십 년이 더 지난 지금은 건물 여러 채가 연결되어 최대 서른 명이 동시에 머물며 작업하고, 공부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번역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과 선정 절차를 거쳐 그곳에서 작업할 수 있다. 거주가 허용되면 각자 방을 하나씩 배당 받고, 공동 부엌에서 직접 조리하며 숙식을 해결한다. 그곳에서 지내다 보면 세계 각지에서 온 다른 번역가들과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와 식사를 같이 하고, 쉽사리 말도 튼다. 번역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여러 나라 번역자들을 초청해 개최하는 특별 세미나가 아니면 보통은 스무 명 남짓의 번역가들이 함께 생활한다. 

그곳은 독일에서 독일인의 후원과 세금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독일 소재 작은 번역공동체이지만, 번역자의 언어가 독일어가 아니어도 번역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열리는 공동체이다. 물리적 공간구조 또한 독특하다. 여러 채의 건물을 연결해 놓은 미로 같아서, 방도 많고 번역가도 많지만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가 있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작업할 수 있다. 여럿이 연결된 건물의 중심에는 자연광이 환하게 내려앉는 아트리움이 있다.

투명한 지붕이 덮인 안마당인 아트리움에서는 원작과 번역 작품을 각각 원어로 들을 수 있는 낭독회도 열린다. 방을 포함한 건물 전체가 도서관이고, 아트리움을 둘러싸며 일, 이층으로 서가와 책상이 놓여 있어, 어디에서나 책을 보고 작업할 수 있다. 12만 5천 권이 화장실과 주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나뉘어 있다. 1번부터 30번까지 방에 있는 책 중 한 권이 필요하면, 그 방을 쓰고 있는 번역자에게 요청하여 받아볼 수 있다. 한국문학 또는 한국과 관련된 책들은(원본과 번역서)가 세미나동으로 가는 건물의 계단 서가에 꽂혀 있는데, 책장이 몇 칸 되지 않아, 앞으로 번역가들이 할 일이 많다. 공동체 도서관은 문학 및 논픽션 번역가를 위한 세계 최초 및 최대 규모의 전문 도서관이어서, 거의 모든 언어와 방언(A 아프리카어부터 Z 줄루어까지)과 모든 분야와 시대의 참고서적들이 갖춰져 있다. 단일 언어, 다국어 백과사전 및 일반 사전 이외에도 전문용어집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물론, 먼지 내려앉고 손에 잡히는 책과 사전이 없어도 번역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많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지털 정보의 바다를 아무리 헤매어도 ‘노답’인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도서관은 그 자체로 보물섬이다. 그런데, 번역 문제나 원문에 의문점이 생겼을 때 도서관의 책보다 더 좋은 해결책 또한 그곳에 있다. 번역하는 책 또는 작가의 나라에서 온 번역가이다. 우연히 복도에서 만나거나, 아트리움 주변에서 작업하고 있는 동료를 찾아, 사과나무 한 그루 심어놓은 뒤뜰에서 차 한잔하며, 저녁 식사 시간 즈음에 부엌에서 같이 식사 준비를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또는 길었던 번역 일과를 마치고 술 한잔하며, 막히는 용어에 대해, 문맥에 대해 또는 그 함의에 관해 묻고, 답하며 의견을 나눈다. 서로 작업하는 언어가 달라도 번역의 즐거움과 어려움, 고단함, 그러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동병상련인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위로와 응원이 되고, 그 과정에서 문득 묘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톨레도의 전통에 기초해 새로운 번역공동체를 만들어낸 사람들, 키워낸 사람들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번역가들과 그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조력자들,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는 연방주, 이런 모든 이들의 애정과 지원이 공동체에 꾸준히 생명을 불어넣고 유지한다. 그곳에서는 동료와 쉽게 가까워지고, 동료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알아갈 수 있다. 요즘은 왜 어떤 글과 작가에 관심을 두는지, 누구를 발견했으며 어떤 작품에 설레는지, 그곳의 출판 시장은 어떠한지, 번역가들은 어떤 처우를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일상은 또 얼마나 고달픈지, 그러면서도 어찌하여 번역, 그중에서도 생계유지에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문학과 학술 번역에서 왜 손을 놓지 못하는지. 글과 책의 세계란 얼마나 힘들고 아름다운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누며 또 나눈다. 

올해는 평년보다 길게 7, 8월 두 달간 거주 초청을 받아 더욱 행복할 시간과 만남에 큰 기대로 설레었다. 그러나 웬걸, 코로나19 확산이 긴 행복의 여정을 막아버렸다. 방문을 내년으로 미뤘으니 백신이 개발되거나 상황이 나아지면 갈 수 있겠지?
 

영남 어딘가에 번역공동체를

그런 공간을 한국에도 만들어 보려는 꿈이 생긴 지는 사실 조금 되었다. 이번에 멀리 못 가게 되면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일 터이다. 한국에도 거처를 제공해 주는 문인 창작실 또는 레지던시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 강원, 전라 및 충청에 퍼져 있으며, 연희문예창작촌은 홍보자료에서 “We include translators in our definition of writers.”라고 친절히 번역가를 배려하기도 한다. 경북이나 경남에는 문인 창작촌은 아니어도,‘청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공간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번역가들을 위한,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학자도 번역하면 올 수 있으며, 청년이나 장년, 노년 할 것 없이 번역가를 환영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학교에서도 멀지 않아 우리 학생들도 번역 세미나를 위해 며칠씩 머무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세계 여러 나라 가난한 번역자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여비라도 조금 보태 줄 수 있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그들이 머물면서 작업하는 동안 한국의 무엇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한국어와 관련이 없어도, 그러니 K-문학이 되었든 K-무엇이 되었든 ‘국위선양’을 위한 어떤 것이 없어도 되는 곳이면 더더욱 좋겠다. 한 세상의 언어와 이야기를 다른 세상의 언어와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번역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따로 또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의 공동체가 가능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알고 있다, 꿈이다! 학부와 대학원에 통번역 과정을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일까? 독일어뿐 아니라 한국어, 중국어, 일어, 영어,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그들의 말과 글을, 생각을 배울 수 있는 학과가 학교에 있으니 대학원만 만들면 될까? 인공지능 번역기가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텍스트 데이터를 번역해 내고, 얼마 가지 않아 번역가는 사라지리라는 전망이 난무하는 오늘, 무용한 듯한 것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꾸는 꿈을, 상상을 편다. 김칫국 마시는 김에, 공동체가 들어설 구체적 장소도 고민해본다. 조용하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도, 전통과 자연이 함께하는 곳이면 좋겠다. 도시에서는 너무 멀지 않아 접근성까지 좋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축적된 시간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찾아 지도를 편다. 안동, 문경, 영주 아니면 상주? 길이 막히니 생각이 꿈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내년을 기다린다. 보물섬에서 만날 새로운 동료들과, 따로 또 같이 하게 될 작업과, 나눌 이야기와 시간을. 그곳에서 에너지를 충전해 이곳에 만들어 볼 또 다른 번역가의 공동체를. 여럿이 함께 꿈을 꾸다 보면, 상상과 몽상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김남희 교수
(인문대 독어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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