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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포스트 코로나 세계에 대한 인류학적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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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post-’라는 접두사는 한국어에서 ‘탈-’이나 ‘후기-’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다음에 따라붙는 단어와의 관계에서 ‘탈-’은 단절된 벗어남, ‘후기-’는 연속된 다음 단계임이 강조되는 뉘앙스였고, 양쪽 모두 적절치 않다고 여기면서 그냥 외래어로서 ‘포스트-’라고 쓰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탈구조주의도 후기구조주의도 문제라면 포스트 구조주의라고 쓴들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한데, 또 그런 사소한 탈출구를 찾고 흡족해하는 것이 지식인의 생리일 수도 있겠다. 코로나 앞에 ‘포스트’를 붙이려는 지금 상황도 유사하지 않은가 한다. 단지 차이라면, 코로나에 붙은 포스트는 벗어남이나 뒤이음보다는, 그 등장 이후 함께 간다는 뜻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한창 그 복판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접두사의 문제로서만 아니라, 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점은 흥미롭다. 바이러스와 함께 하는 삶이라니, 운명을 거부 못 하는 고전 비극 속 주인공도 아닌데, 사랑은커녕 일말의 호감조차 없으면서, 이처럼 숙명적 공존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경우가 또 있었을까. 멧돼지나 바퀴벌레와의 공존, 길고양이, 반달곰과의 공존이나, 죽음, 치매와의 공존, 이런 문제와는 또 차원이 다르다. 멧돼지, 바퀴벌레야 인간에게 위협이 된대도 인간이 선주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지구 동네 선배들이고, 길고양이, 반달곰은 경우가 다르지만 강력한 애호ㆍ보호의 명분과 세력이 존재하며, 죽음과 치매는 도통 호감이 안 가는 대상이기는 해도 신체 자체의 정상적 작동 속에 우리 모두 언젠가 지날 숙명적 통과점이다. 게다가 우리는 코로나와 싸움을 막 시작했을 뿐이고, 만난 지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들을 우리의 세계 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할까.
전염병과 면역학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이 주제로 의뢰를 받아 몇 자 적는 처지에 권위 있는 설명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류세(anthropocene)의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다뤄온 인류학자로서 몇 자 적는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그것이 공동체로 구성되기 위해 그 안도 밖도 아닌 경계지대의 구성을 필수의 요건으로 삼는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에스뽀지또에 따르면, 공동체의 경계지대는 내부와 구분되지만 외부에도 속하지 않는 실재로서, 마치 신체의 (외부의 침투에 취약하지만 그것을 방어하는) ‘살갗(skin)’과 같은 것으로 성립하여, 신체를 하나의 실재로 확정해주고 또 신체가 스스로를 감각하는 기관이 된다. 내부기관에 선행하거나 적어도 동시 발생하는 살갗에 주목할 때 공동체는 일종의 면역체(immunity)로서, 외부ㆍ타자ㆍ적을 규정ㆍ식별ㆍ배제하여 내부의 예외성과 면역성을 확보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의 ‘살갗’은 이 작동이 일어나는 현장이자 핵심 장치이며, 이에 비하면 공동체가 스스로 누구인지 밝히려 만들어낸 자기규정들, 즉 도덕규범, 공동규약, 공유재산, 엘리트의 계보 등은 이차적 구성물로서, 실상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지도, 끝내 관철되지도 않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 논점을 확장하면, 코로나를 혐오하며 그와 싸우면서도 공존이 불가피함,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함이 이야기되는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는, 새로운 경계지대의 구성을 통해 어떤 공동체/면역체를 만드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의 위협이 실재하지 않는 가짜 뉴스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이 실재하는 위협이기에 거기에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힘이 있으며, 그것도 아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코로나가 만들고 있는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우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 공동체가 국가나 지역이나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사회단위에 기초를 두고 통제, 협력, 경쟁하는 성격도 지니지만, 근본적으로 대단히 글로벌한 성격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가끔 ‘국뽕’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소위 ‘K-방역’ 체계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또한, 이 공동체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우리 신체 내부의 미시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면서, 개인과 그들의 신체를 쪼개고 그렇게 나누어진 세부를 다시 타인의 신체 내 해당 부분과 연결함으로써, 종으로서의 인간 전체를 서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호홉기의 각 부분과 그 점막에 대한 우리의 대중적 지식은 일찍이 도달해본 적이 없는 세밀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 궁극의 미지 영역은, 심지어 그 작동과 연결 현상이 당사자에게 인지되지 않는 것은 물론 신체에 아무 반응도 일으키지 않은 채 다른 신체로 이어져간다는 점에 있다. 혼이나 영, 신이나 귀신 외에 이만큼 강력한 불가지의 존재에 대해 들어본 일이 없는데, 그것이 연결하고 영향을 미치는 공간적 범위는 사상최강의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이 공동체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특히 19세기와 20세기의 인간능력과 그에 대한 믿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대에 구축되어온 모든 질서와 논리를 위협하는 존재로서 구성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무엇보다도 코로나는 재난과 재해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사회과학적 현상이라는 점을 깨우쳐주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실현되는 경제적 이익이나 비용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논리가 우리가 일방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될 매우 큰 위험요인이라는 점, 더 큰 비용이 나거나 단기 손실로 귀결되더라도 사회적 부조나 공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환경이 얼마나 섬세하며 또 무지막지한 녀석인지를, 인간에게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르쳐주고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다. 그 가능성이나 생산성, 마땅히 해야 할 당위나 시급함에 비추어 보자면, 이 글에서 다룬 문제는 지엽적일 수도 있고, 또 구렁텅이 와중에 우물 바닥에서 본 단견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포스트 코로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함께 분발했으면 한다.



안승택 교수
(인문대 고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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