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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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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책 한 권이 떠올랐나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500페이지가 넘는 위압감을 간신히 이겨낸다 하더라도, 첫 장을 펼치면 보이는 첫 문장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을 읽고도 책을 덮지 않을 용기가 당신께는 있을까요. 저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네요.

이 책은 철학과 정치에 대해,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많은 주제들에 대해 얘기해요. 저는 그중에서도 관계, 종이보다 가벼운 우리의 관계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해요.

소설의 주인공인 토마시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유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고 여겨요. 평생의 사랑이라고 느끼는 테레자를 만났음에도,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지속하죠.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어요. 그들은 정말 사랑했지만, 공존 불가능한 그들의 생활 양식은 지속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죠. 다른 여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테레자 생각을 하는 토마시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나요?

문득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당신은 위에서 언급한 것이 정반대편에 있을 수 있다고 느끼시나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은연중에 하나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고 계시진 않는지 궁금하네요.

토마시에게 관계란 딱 그 정도의 의미예요. 언제든 새로이 맺을 수 있는, 또 그만큼 빠르게 사라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의미. 현대의 관계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진 않았나요. 빨리 타오르고, 그만큼의 속도로 빨리 식어버리고야 마는 관계 말이에요.

연락처를 뒤적이다보면 이분을 어디서 만났는지, 나와 어떤 사이인지. 눈의 색은 어땠고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 무엇 하나 기억하기 힘든 사람이 있지는 않나요? 아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나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늘어가는 만큼 당신의 고민과 행복을 나눌 사람도 늘어가고 있는지, 혹은 그만큼의 고민과 걱정이 생기지 는 않는지 궁금하네요. 

테레자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일까요. 더 나아가, 그녀에게 토마시는 어떤 의미일까요. 동경할 만한 것이라곤 모래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술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죠. 가망 없는 신분 상승을 꿈꾸며 살아오던 그녀는, 토마시에게 여섯 번의 ‘우연’이 있었기에 그를 만날 수 있었어요.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진 인연을, 여러 우연이 겹쳐 맺어진 사소한 관계를 테레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녀는 나름의 신분증인 안나 카레니나를 손에 꼭 쥔 채, 그를 찾아 보헤미아에 서 프라하까지 갑니다. 일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를 그 관계를 위해, 그녀는 모든 걸 떠나 토마시를 찾아갑니다. 그렇게 평생을, 서로가 추구하는 사랑을 하며 살아 가죠. 슬픔의 형태를 가진 행복과 함께요.

어떤가요? 당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며, 납득할 수 있는 관계인가요. 많은 것이 빨리 맺어지고 풀어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테레자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당신은 테레자와 같은 관계를 맺고 계시는지, 토마시와 같은 관계를 맺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으시진 않는지 궁금하네요.

깃털보다 가벼운 이 관계를 도저히 참을 수 없네요. 저와는 다른 의미로, 당신도 이 관계를 참을 수 없겠죠. 변치 않겠단 말밖엔 할 말이 없어 미안하네요.


이순원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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