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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램지어 사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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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법경제학 리뷰(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2021년 3월호에 게재될 예정이었던, 램지어(J. Mark Ramseyer) 하버드 미쯔비시 일본법 교수의 「태평양전쟁 시기 성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제목의 글에 대한 학문적 평가는, 논란이 시작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끝났다. 램지어의 글이, ‘성매매 업자와 여성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그 핵심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사료와 2차 문헌의 동원방식이 매우 자의적이고 왜곡되어 있어서, 애당초 학술논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은,『저팬 포커스(Japan Focus)』에 실려 있는 스탠리(Amy Stanley)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 등 미국·영국·싱가폴·일본 소재 대학 5명의 연구자들의 공동논문을 참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의 번역문 참조). 따라서 램지어가 학자로 남으려면,『국제 법경제학 리뷰』가 학술지로 남으려면 지금이라도 글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이제 보다 중요한 것은 램지어의 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등장하게 된 특별한 맥락이다.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램지어 글의 핵심 주장은, 일본의 역사부정론자들이 1990년대부터 줄기차게 반복하고 있는 뒤틀린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그것이 2006년 아베 신조오 제1차 내각 이래의 일본 정부의 주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분명하게 인정했다.「고노 담화」는 “모집·이송·관리 등도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전체적으로 보아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라고 명언했다. 그런데 2007년에 이르러 아베 정부가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유괴하듯이 끌어간다”라는 의미의 ‘협의의 강제성’이 문제라고 강변하며,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가리키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후 일본 정부는 앵무새처럼 그 결정을 되뇌고 있다. 
이것은「고노 담화」에 흠집을 내어 일본군‘위안부’ 문제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비열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끌려갔으면 ‘강제연행’된 것이다. 일본 정부와 부정론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강제연행’은 아베의 일본이 발명해낸, 일본에서만 통하는 어설픈 은어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강제연행은  일본의 국가책임 성립의 요건도 아니다. 「고노 담화」가 인정하듯이,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아래에서 이루어진 가혹한 것”이었다. 램지어의 글에도, 일본의 국가기관인 “일본군”이 “필요로 했고”, “부추겼고”, “협력했고”, “요구했고”, “약속했고”, “위안소를 세웠고”, “허가했고”, “금지했고”, “명령했다”라고 되어 있다. 그것만으로 당시의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며, 그것만으로 일본의 국가책임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베를 포함한 일본의 여러 총리들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한다고 주장하지만, 성노예가 무엇인지, 성노예에 부합하는 사실은 무엇인지, 성노예에 반하는 사실은 무엇인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주장은 ‘그냥 성노예라는 표현이 싫다’라는 감정의 표현일 뿐이다. 램지어가 그렇듯이 어쩌면 일본 정부도 ‘강제연행이 없었으니 성노예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했듯이 강제연행은 있었다. 게다가 강제연행은 성노예의 요건도 아니다.「노예 거래 및 노예제 금지에 관한 조약」(1926)에 규정된 노예제의 핵심은 ‘자유 또는 자율성이 심대하게 박탈된 상태’이며, 어떤 경로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고노 담화」가 인정한 사실만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성노예였고, 이 사실은 국제기관의 수많은 보고서에서 거듭 확인되어 있다. 
‘램지어 사태’는 학문과 학문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학문 이전’에 대한 학문의 질타일 뿐이다. 그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저열한 일본군‘위안부’ 지우기 기도에 대한 상식의 일갈일 뿐이다.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본군‘위안부’ 부정론을 예리하게 논박해내는 글로벌 학문공동체의 통찰력을 확인했다. 국제사회가 일본 정부의 주장이 어설픈 역사부정론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기도 했다. 이 성과들을 잘 살리면서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터이다.

김창록 교수
(법전원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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