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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vivace - 빠르고 경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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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지토’라는 초록색 외계인이 나왔다. 지토는 집에 누워서 화면을 보며 수업을 듣고, 의사를 만나지 않고 진료를 받았다. 초등학생의 나에게 지토의 이야기는 공상영화였다. 그런데 2020년, 나는 지토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그렇듯이 처음의 나는 지토처럼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대단한 과학 기술이구나 했는데 대단한 것은 지토였다.
이 새로운 일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성급하게 일어났다. 이전에도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했지만 그것은 필요의 영역이었지, 필수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제는 화면으로 접하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먼저,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다. 교수님이 화면에 쓰는 글씨만을 보고, 목소리를 듣기만 하는 것은 버텨야 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위에는 생활복을, 밑에는 잠옷을 입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하는 것의 구분을 모호하게 했다. 내가 하는 것이 집에서 쉬는 것인가? 공부를 하는 것인가? 강의실에서 받은 가르침은 전공과목의 내용뿐만 아니라,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의 움직임, 책 넘기는 소리, 교수님의 표정, 누군가의 질문, 교수님의 설명으로 완성되는 하나의 악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느낀 비대면 수업은 연주자들의 연주 없이 지휘자의 팔 휘두름으로만 완성된 공연이었다. 75분이라는 시간 동안 지휘자의 움직임을 본다. 내가 존앙하는 지휘자이고 그 움직임을 배우고 싶지만, 그 시간은 쉽지만은 않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깥의 소음과 주변 사람과 나누는 많은 대화들을 끝마친 후에 가지는 혼자의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좋아했었다. 마치, 엄청난 연주와 박수갈채 후에 오는 잠깐의 쉬는 시간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그저 적막하다.  그래서 쓸데없는 소음으로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다른 사람 사는 것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은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확인받는다. 나만 동떨어진 듯했다. 같은 공간에 계속해서 혼자 있다 보면, 내가 어떤 세상에 사는지 까먹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사는 내가 누군지 까먹을 때가 있다.
2020년 초반은 이런 일상의 연속이었다. 주위의 것은 깜깜해서 볼 수 없고 어떠한 소리도 없는 느낌. 어둠과 무음 속에서 저 멀리 있는 누군가의 손짓만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다가 문득 나는 생각했다. 초여름이었다. 아. 나는 고작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 아닌데. 아침수업은 힘들었지만, 공부할 때는 몸과 마음이 이끌려갔고. 사람 속에서 살았지만, 수동적이진 않았다. 이런 깨달음이 문장으로 인식되자, 자취방의 천장이 달라보였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이 공간도, 초여름에 항상 시원하다고 느꼈던 하늘색의 파란 벽지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바뀐 것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나였다.
생각이 트이자,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 일상은 여전히 빨랐지만 성급하지 않았다. 경쾌하게 빠른 일상이었다. 악장이 프레스토(presto - 빠르고 성급하게)에서 비바체(vivace - 빠르고 경쾌하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놓고 있던 전공공부를 시작했다. 그저 화면만 보는 것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듣기만 하지 않고 받아 적으니 지루할 시간도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졌다. 공간을 바꿀 수는 없으니, 책상 바닥 부엌 장소를 바꾸며 공부장소를 달리했다.
그렇게 하루 배운 내용을 다시 본 후 정리하고 전공책을 뒤적이다 보면, 남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가까스로 남는 시간에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 옛날에 관심이 있어 산 통기타를 다시 든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기타 줄을 꾹꾹 눌렀다. 삼일 만에 배긴 손가락의 굳은살을 만지작거리면 뭔지 모를 뿌듯함도 들었다. 이제 혼자만의 시간도 적막이 아니라 나의 소리로 채울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SNS와 뉴스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없었다. 
또 하나, 새로운 일상의 변화 때문인지, 자꾸 보게 되는 화면 때문인지, 뒤늦게 다시 시작한 전공공부 때문인지, 어쩌면 비대면 수업 중 흐릿했던 화면을 보는 아쉬움에서일 수도 있다. 나는 화면 즉, 디스플레이에 관심이 생겼다. 진짜 지토의 꿈을 이뤄주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 전공과목으로 디스플레이 과목을 들으며, 지금 내가 쓰는 화면에 대한 기술을 배웠다. 여러 기업의 다양한 제품과 연구개발을 스스로 더 찾아보며, 혼자서도 재미있어 하는 일임을 알았다. 관련 영상을 보는 시간이면 기타 치는 시간만큼이나 좋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그 곳의 나를 만나는 일이 기다려졌다.
나에게 2020년은 분명 밝지만은 않은 일상의 모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어둠을 알아내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한 채 멈춰 있는 나를 보았다. 하지만 그런 어둠을 안다는 것은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앞으로의 일들을 기대하며,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있다. 앞으로 이런 급작한 상황 변화에서도 나는 2020년 초여름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프레스토(presto - 빠르고 성급하게)의 박자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비바체(vivace - 빠르고 경쾌하게)를 즐기며 연주하며 웃고 있는 나를! 비바체(vivace)!

이다온
(공대 에너지공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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