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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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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부드러운 천으로 가볍게 한 번 닦는다. 육안으로 보이는 먼지는 브러쉬로 살살 털어 주어야 한다. 이물질 제거가 끝나면 동그란 플래터 위에 올려놓은 뒤 톤암을 들어올려 소리골과 바늘의 위 치를 맞춘다. 스위치를 돌려 해당 음반에 알맞은 재생 속도를 선택하면 플래터가 그에 맞춰 회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레버를 내려 주면, 바늘과 소리골이 맞닿으며 음악이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LP, 즉 롱 플레이 레코드(Long Playing Record:장시간 음반)로 음악을 듣기까지의 과정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글로 묘사해 보니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참 불편도 하구나.' 터치 한두 번으로 원하는 음악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음반을 구매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또 재생 속도까지 직접 설정해 주어야만 겨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아날로그 방식은 가혹하 리만치 불편하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렇게 불편한 방식에 열광하는 것일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 뻔한 얇은 플라스틱 알판들이 취미의 수면 위로 둥실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구 반대편의 뮤지션이 발표한 곡이라도 원한다면야 곧바로 들을 수 있는 세상 속에서, LP 수집가들은 기이하게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방식을 택했다. 음반의 실물이 내 손에 도착하기까지를, 먼지가 말끔히 닦여나가기까지를, 소리골과 바늘이 맞물려지기까지를. 그렇게 기다린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 대가로 흘러 나오는 한 곡의 노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동시에 얼마나 매력적인지. 들어보지 못한 음악, 듣고 싶은 음악, 들어야 할 음악이 눈 깜박할 새 밀려오는 간편함의 세계와 정반대되는 단순하고 불편한 LP 의 세계는 사람들을 묘한 안정감과 즐거움으로 매혹했다. 이것이 비단 '레트로의 재유행'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확실하고 특별한 'LP 붐'의 이유였다.

몇 년 전 여름, 아버지의 옛 방 정리를 돕다가 난생처음으로 LP를 발견했었다. 故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수록된 음반이었다. 자켓은 세월의 흐름으로 버석하게 부스러지고, 새까만 판은 수백 번 재생한 흔적 때문에 여기저기 연흔투성이였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그게 음반의 한 종류라는 걸 깨달았을 때에도 어떤 원리로 그 얇고 둥그런 플라스틱에서 소리가 나오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를 졸라 방 한구석의 고물 전축에 그 LP를 올려 보았다. 바늘이 천천히 내려앉고, 첫 번째 수록곡 '지난 날'의 첫소절이 시작되자마자, 난 아마 첫눈에 반해버렸을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였을까? 불편함을 사랑하게 된 순간이.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LP 역시 얼마 못 가 사그라들어버릴 유행에 불과한 것이라고. 잠깐 스쳐가는 레트로 붐과 함께 다시금 가라앉아 버릴 것이라고. 그러나 많고 많은 수집 취미를 지나쳐온 나 에겐 LP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더더욱. 사랑해 마지않는 노래들을 커다란 실물로 간직하는 감각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LP란 발을 빼기조차 어려운 취미라는 말에도 분명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게 푹 빠져버린 사람들이 이뤄낸 LP의 세계는 금방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간 채 수십 년에 걸쳐 활발히 지속되고 있다.

만약 당신이 LP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시작하려 마음을 먹었다면, 나는 불편함과 비용 등의 이유로 당신을 아주 잠깐 '말리는 척' 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끌어당길 것이다. 불편하지만 단순하고 매력적인 이 취미의 세계로. 아주 오래된 플라스틱 알판 하나가 주는 기쁨을 손끝으로 느껴볼 수 있도록. 당신은 아마도, 헤어나오기 싫어질 것 같다.




송다빈(사회대 사회복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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