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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백과사전에서 위키로 지식사회는 진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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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에 무언가를 검색해보자. 대부분 ‘위키(Wiki)’ 웹사이트가 검색 결과 목록 상위에 있을 것이다. 많은 검색자가 위키 속 정보를 원하고, 실제로 위키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검색자 중에는 아예 위키부터 들어가 검색하는 사람도 있다. 과제나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정보 수집을 하던 중 위키를 이용해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도대체 위키는 이렇게 많은 정보를 어떻게 담고 있을까? 지식의 역사를 토대로 위키를 고찰해봤다●


아는 것이 권력이다

적어도 중세까지 지식은 신의 영역이었다. 책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있는 웬만한 지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지금과는 완연히 달랐다. 당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유럽 대학에서는 보통 법률과 의학을 가르쳤으며, 나머지 학문은 성직자들이 다뤘다. 성직자들은 대학과 대학 간의 교류를 통해 학문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들 스스로 ‘학자’라고 칭했다.
소수에게만 통용되고 독점되던 지식이 대중에게 조금씩 전파되기 시작했다. 15세기경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고안해냈고, 이 덕분에 책의 발간이 혁신적으로 쉬워졌다. 곧이어 유럽에는 성경을 발간하는 인쇄소가 세워졌고, 천문학적 금액을 자랑하던 성경의 가격은 혁신적으로 내려갔다. 16세기 초 루터가 희랍으로 쓰여 있던 성경을 자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이제 성경이 대중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성경뿐 아니라 학자들은 인쇄소에서 그들이 쓰고 싶었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이 무렵부터 다양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 폭발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성직자의 권력보다 성경의 가르침을 좇게 됐다. 사람들은 기존 부패한 종교를 변화시키려 했고, 16세기 초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 무렵부터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종교 차원에서 만들어진 신학교에서 많은 학생이 양성됐고, 학교와 교육에 대한 각 종교의 투자도 활발해졌다. 상기된 인쇄술과 더불어 학문은 이전보다 훨씬 활발히 연구됐고, 학자들 역시 학회와 대학 등에서 자신만의 학문 영역을 구축했다. 이들은 상기된 인쇄술과 맞물려 자신들의 지식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파되는 세상을 꿈꿨다.
17세기에 일어난 과학 혁명이 일어나며 기존 신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고정관념들이 하나둘씩 깨지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들은 책으로, 학회의 논문으로 발간돼 대중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생각했다. 신의 전지전능이나 인간의 한계는 없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인간의 무지였다. 모든 문제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논리적·합리적 방법으로 증명되고 해결된다.
신의 영역이라고만 생각되었던 진리들을 인간이 이해하고 증명하기 시작했다. 신만이 알 수 있는 거라 생각했던 섭리들이 인간의 노력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패한 권력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노력으로 무지를 깨버리듯, 사회와 시스템도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무지는 인간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니라, 노력해서 깨뜨려 나가야 할 장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인간이 노력한다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었고, 인간이 이해한다면 세상에 바꾸지 못할 건 없다는 식의 자신감도 생겨났다.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런 생각들이 퍼져나갔는데, 이를 계몽주의라 한다.

계몽주의와 백과사전

“실용적인 지식을 권력자의 "도서관에서 끌어내 대중에게 전파해야 한다”라는 관점은 당대 계몽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관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기존 지식을 집대성하고 대중을 교육하기 위해 노력했다.
드니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였다. 1746년 디드로는 체임버스의 『백과전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무렵 체임버스의 『백과전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백과사전이었다. 그러나 디드로는 번역을 넘어 계몽주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던 다양한 학자들과 함께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지식을 담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는 달랑베르,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당대 유명한 계몽주의 학자들과 함께 『백과전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디드로를 필두로 한 학자들로 구성된 집필진들은 ‘백과전서파’라고도 불린다. 1751년 제1권 출판부터 1772년 마지막 권(제35권) 출판까지, 2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180여 명의 집필자와 판화가가 이 책에 매달렸다. 다루는 내용도 방대했는데, 71,818개의 항목이 있으며 삽화가 3,129개에 달했다. 당시 권력자들은 지식의 대중화를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았다. 『백과전서』가 종교의 자유와 과학 기술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을 다루자 프랑스 지배 계층과 성직자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디드로를 포함한 집필자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과전서』에 대한 대중들의 인기는 치솟았고, 훗날 일어나는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모레리의 『역사대사전』 등 백과사전의 기능을 하는 책은 꽤 많았다. 특히 인쇄술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교육하는 데는 백과사전만 한 책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현대적 의미의 백과사전은 위의 『백과전서』를 전후로 구분한다.
백과사전으로서 『백과전서』의 특징은 철학·종교·과학·사회 등 다방면의 학문에 대한 지식을 집대성했다는 데 있다. 책의 구조는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을 나무와 그 가지로 비유해 큰 분류에서 점점 작은 분류의 지식으로 분화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는 후대의 백과사전과 후술할 위키의 편집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준다.
이후로도 여러 나라, 여러 문화의 백과사전이 끊임없이 나왔다. 전술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5판까지의 개정을 진행하며 책으로 출판됐다. 15판 기준 약 12만 개의 글과 색인을 담고 있으며, 4천여 명의 기고자들이 손을 봤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전에 없었던 지식이 추가되기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변경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자체적으로 백과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8년 학원사의 『대백과사전』을 시작으로 계몽사의 『계몽사학생백과사전』, 두산동아의 『두산세계백과사전』 등이 만들어졌다.
지식 전달의 매체로 언론과 참고서도 등장했지만, 최소한 20세기까지 가장 일반적인 지식의 창구는 백과사전이었다. 지식에 대한 접근 장벽은 계속 낮아졌고, 어느덧 웬만한 가정집의 책꽂이에는 백과사전이 자리 잡았다.

지식의 민주화

백과사전을 인터넷이 대체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컴퓨터의 발명 이후 종이에 기록된 지식은 전자기술로 정보화되기 시작했다. 정보화된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으며, 각종 웹사이트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것은 백과사전에도 영향을 줬고, 그 결과 2001년 최초의 위키인 ‘위키피디아(Wikipedia)’가 만들어졌다.
위키피디아는 위키를 “불특정 다수가 협업을 통해 직접 내용과 구조를 수정할 수 있는 웹사이트”라고 정의한다. 이 설명은 위 백과전서의 의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위키는 20세기까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자 발전했던 백과사전에 인터넷까지 융합시킨 완성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보화 시대의 백과사전인 만큼 위키가 다루는 분야는 이루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2020년 기준 위키피디아에는 영문판 기준 600여만 개, 모든 언어판을 합치면 4천여만 개의 문서가 있다. 또한, 위키피디아는 웹이 갖는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모든 문서는 위키 자체의 검색엔진을 통해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다. 각 문서는 링크를 통해 연결돼 있어 서로 참조가 가능하다. 예컨대 위키피디아에서 ‘백과전서’를 검색하면 해당 문서로 접속되며, 그 문서에 있는 ‘드니 디드로’라는 단어를 클릭하면 위키피디아는 ‘드니 디드로’ 문서로 접속시켜 준다. 이것이 연쇄되어 마치 마인드맵을 그리듯 문서 열람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기존 백과사전과 대비해 위키가 가진 가장 혁명적 특징은 ‘개방성’이다. 위키는 문서의 열람뿐만 아니라 저술과 편집까지 일반에게 개방돼 있다. 이전 백과사전이 지식 ‘소비’의 대중화를 꾀했지만 ‘생산’ 자체는 지식인들이 담당했던 것과 달리, 위키는 ‘생산’마저 대중이 담당함으로써 진정한 지식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여러 사람이 쉽게 접근해 문서를 작성하며, 웹사이트의 특성상 오류가 발견되면 실시간으로 수정할 수 있다. 누군가 고의로 문서의 내용을 훼손하는 ‘반달리즘(vandalism)’의 위험이 지적되곤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금방 고쳐진다.
위키에서는 일반 대중이 전문가를 대체한다. 위키에서의 전문성은 학위나 자격증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작성한 문서들이 얼마나 신뢰성 있고,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위키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기준이다. 위키는 당대 대중의 정서에 따라 특정 주제와 관련되어(예컨대 인종 문제나 여성 문제 등) 편향된 관점을 반영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함께한 주제에 관한 항목을 작성함으로써 서로의 단점과 오류에 대한 상호보완이 가능하며, 이렇게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진 문서는 오히려 개인이 작성한 것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
『지식의 사회사』의 작가 피터 버크는 위키피디아의 자기비판 기능은 전문가들이 만든 기존 백과사전과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글의 중립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이 글의 정확성과 사실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등 위키피디아의 일부 문서에는 위와 같은 지적 경고문이 달리기도 한다. 피터 버크는 인쇄본 백과사전 편집자들이 위키피디아를 보고 이런 자기비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합해보면 위키는 지식의 대중화를 넘어 진정한 지식의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평가된다. 여태까지 학자와 전문가가 생산한 지식을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교육했다면, 위키는 지식 자체를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산할 뿐 아니라 이를 공유하고 발전해나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어쩌면 18세기 백과전서파가 강조하던 지식의 전파를 21세기 위키가 최종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위키와 우리

하지만 위키에서도 ‘다수’가 참여할 뿐 그 참여하는 다수는 여전히 전문가 집단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칭 전문가 몇몇이 만든 문서는 실제 지식보다 좁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또한, 위키 문서의 수정이 자유롭다는 것은 반대로 그 문서의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키 사용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위키 속 정보를 받아들일 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다. 일단은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맹신하기보다는 ‘참고용’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키의 전신은 백과사전인 만큼, 학술 가치도 매우 높다. 각주를 통해 참고문헌 혹은 학술논문의 출처를 알 수 있으며, 인용을 활용해 분산된 학술 연구자료 간의 연결고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과거 백과전서가 유럽 사회를 바꾸고 대중들의 지식수준을 고양했듯, 위키도 21세기 정보화 사회를 묶고 지식 혁명을 일으킬 도화선이 되길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지식의 사회사』, 피터 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 민음사, 2017.
『클릭의 사회학』,이항우 지음, 이매진, 2013.


유동현 전임기자
편집 진수별기자 jsb19@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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