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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위키 시대: 전문가를 향한 아마추어들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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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제1643호 “백과사전에서 위키로 지식사회는 진보 중” 기사에 이어


“오늘 실험을 토대로 추가 자료를 조사해 보고서를 제출하세요. 나무위키에서 베끼시면 0점 처리 하겠습니다.” 실험 수업이 끝난 후 조교의 공지에 학생들은 뜨끔했다. 지난 수업에서 한 학생이 나무위키의 문서를 베낀 보고서를 작성해 교수님께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키워드를 위키에서 찾아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알지 못했던 정보를 얻기도 하고, 서술 방식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하이퍼링크를 통해 연관 문서에 의식의 흐름대로 접속하다 보면 완전히 다른 문서에 도착할 때도 많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나 개인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문서가 종종 있기 때문에 위키를 불신하는 이들도 있다. 위키에 대한 의심은 ‘누구나 편집이 가능한 웹사이트’라는 특징에서도 기인한다. 위키는 정말 믿지 못할 웹사이트일까●


빨리 빨리, 위키 위키!

권력의 상징이었던 지식은 한때 백과사전에 담겨 집집마다 꽂혀 있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부터는 많은 백과사전이 CD 등의 전자장치에 담겼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단순히 기존 백과사전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직접 백과사전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위키(Wiki)’는 이 과정에서 탄생한 웹사이트다. 위키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이는 워드 커닝햄이다. 그는 1995년에 소프트웨어에 대한 논의를 위해 웹사이트를 개발했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누구나 내용을 편집할 수 있었다. 커닝햄은 하와이어로 ‘빨리 빨리’라는 뜻의 어휘 ‘위키 위키’에서 착안해 웹사이트 이름을 ‘위키위키웹(WikiWikiWeb)’이라고 지었다. 누구나 빠르게 편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위키위키웹에는 문서 속 단어를 클릭해 다른 문서로 연결이 가능한 하이퍼링크 기능도 있었다. 이렇게 위키위키웹은 현재 위키의 큰 기반을 다졌고, 이후 간단하게 ‘위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한편 지미 웨일스는 인터넷 백과사전 ‘누피디아’를 운영하고 있었다. 누피디아는 위키 기반 웹사이트는 아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검증을 거치며 문서를 작성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이었다. 그러나 누피디아는 편집자가 한정돼 있고 신뢰도를 위한 검증 작업이 많아 문서의 작성 및 수정 속도가 느렸다. 이에 지미 웨일스와 누피디아의 편집장 래리 싱어는 문서 편집 권한까지 대중에게 공유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2001년 백과사전에 위키 시스템을 도입한 ‘위키피디아(Wikipedia)’를 설립했다.
작은 영어 사이트였던 위키피디아는 비영리·중립 정책이 수립되고 편집자가 유입되며 규모가 점점 거대해졌다. 설립 이후 며칠만에 누피디아의 규모를 넘어섰고, 전성기였던 2007년 이후부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접속이 많은 웹사이트 열 손가락 안에 꼽히고 있다. 2020년 현재 위키피디아는 307개의 언어로 운영되며 약 4천만 개 이상의 문서가 등재돼 있다.


편집의 자유, 신뢰할 수 있을까

위키피디아는 설립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이를 비판하는 시선도 많았다. 주요 비판점 중 하나는 정확성이었다. 위키피디아에는 특정 인물, 사건 등에 대한 부정확한 서술이 많았고, 문서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고쳐지기도 힘들었다.
한편 2005년 영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위키피디아의 과학 관련 문서 42개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비교해 정확도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위키피디아의 문서에서는 4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문서에서는 3개의 오류가 발견됐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과학 문서는 당대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반면 위키피디아의 문서는 불특정 다수가 작성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해당 기사에서는 연구 결과가 놀랍다고 평가했다. 과학 분야에서 두 사전의 정확도가 비슷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¹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전문가들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위키피디아 문서의 수정에 주목했다. 인쇄물로 발행되는 백과사전은 문서 하나를 수정하는 데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위키피디아에서는 인터넷만 연결되면 실시간으로 문서를 수정할 수 있다. 즉 위키피디아의 문서 안에 잘못된 정보가 많더라도 이를 알아챈 편집자들이 이를 빠르게 수정해 정확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렇듯 위키와 백과사전 모두 ‘세상의 모든 정보를 한곳에 모은다’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위키는 개방성 면에서 기존 백과사전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집단지성의 특징은 어떤 구심점을 통해 지식이 모이는 것이 아닌, 각각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고 수평적인 협력을 통해 집단 지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 없이 불특정 다수가 문서 작성과 수정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위키는 집단지성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전문가주의를 지양하는 위키의 성격도 집단지성 발전에 영향을 줬다. 위키피디아가 설립됐을 때의 이념은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는 슬로건이었다. 전문지식을 담은 문서는 전문가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함께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다. 오히려 집단지성을 통해 도출된 문서가 더욱 정확한 경우도 많았다.


무법지대는 아니다

그러나 위키의 모든 문서가 집단지성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접속이 적은 문서나 어느 정도 고정된 편집자들만 편집하는 문서에는 여전히 오류가 많다. 악의적 문서 훼손인 반달리즘(Vandalism)도 많이 일어나고, 중립이 지켜지지 않고 편향된 문서도 있다.
대부분의 위키에서는 위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문서 작성에 관한 정책과 지침 등을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어 위키피디아에서 제시한 정책의 다섯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이다.
2. 위키피디아는 ‘중립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3. 위키피디아의 글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4. 위키피디아에서는 다른 사용자를 존중한다.
5. 위키피디아에는 위 네 가지 원칙 외 다른 엄격한 규칙이 없다.

제1원칙은 위키피디아의 정체성, 제3원칙은 위키피디아의 저작권에 관한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문서를 작성할 때 외부 자료를 가져오려면 원저작자의 저작권 라이센스에 따라야 한다. 반대로 위키피디아의 문서는 사용 시 저작자만 표시해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단, 변형 및 2차 창작의 경우 원저작물의 저작권 라이선스를 따라야 한다). 제4원칙은 위키피디아에서의 토론 예절, 제5원칙은 문서 작성·수정에 관한 자유도를 보장하는 원칙이다. 모든 문서는 문서 역사를 통해 편집 기록을 조회할 수 있고, 편집자들 간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 토론을 통해 의견 차이를 좁혀 문서를 완성한다. 토론 내용 역시 문서 이용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주목할 것은 제2원칙이다. 위키피디아는 서술의 중립을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여기고 있고, 중립적 시각에 관한 고찰도 끊임없이 지속해 왔다. 위키피디아의 중립적 시각에 따르면 의견과 사실은 항상 구분돼야 하며, 다양한 관점을 비중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들(정치, 종교 등)에 관해서는 따로 서술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키의 정책들은 집단지성으로 풀기 힘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다만 위키는 이용자에게 정책을 강하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위키의 정체성인 편집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위키는 수직적인 정책 구조보다는 건전한 토론 문화와 민주적 결정을 선호한다.


위키 사회와 편집자

위키의 편집자들은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토론을 통해 문서의 작성 방향이나 논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운영자와 관리자를 뽑아 위키 운영을 수월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 위키는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위키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는 마치 현실 사회와 비슷하다. 
위키 사회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프로젝트’다. 일반적으로 위키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문서를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고 싶다면 문서 작성을 요청할 수 있다. 문서의 규모가 커지면 같은 분야에 관한 편집자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 내에서는 그 분야에 대한 편집자들 간의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문서 편집에 대한 토론도 진행된다. 문서 작성에 관한 도움도 얻을 수 있으며, 동료평가가 이뤄지기도 한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거친 문서는 다른 문서에 비해 규모가 크고 오류가 적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위키의 성공 이면에는 프로젝트 과정과 같은 위키만의 사회가 있다. 전술했듯 위키는 기존 전문가주의를 타파하고 편집자 간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민주적 위키 사회를 만들었다. 위키 사회에서 편집자들은 소속감을 가지고 문서 작성의 의지를 굳힌다. 문서 작성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가 편집자에게 돌어가지 않는 비영리 위키에서조차도 말이다.
위키의 편집자가 위키 사회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할수록 위키는 더욱 성장한다고 한다. 편집자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새로운 목적과 역할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수단을 찾기 때문이다.²위키가 새로운 지식사회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 지금, 위키를 자주 이용한다면 직접 편집자가 되어 위키를 성장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무위키 꺼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접속하는 위키는 ‘나무위키’이다. 나무위키는 국내에서는 유명한 위키지만, 전술된 위키피디아와는 방향이 다르다. 나무위키의 전신인 ‘엔젤하이로 위키’는 서브컬처* 정보를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위키였으나, 그 규모가 점점 커지며 더는 서브컬처만을 다루지는 않게 됐다. 이후 수 차례 변혁을 거쳐 현재의 나무위키가 됐지만, 여전히 당시의 서브컬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위키피디아를 이용하다가 나무위키에 접속하면 이질감을 느끼는 이용자들도 적지 않다. 중립적 정보 전달이 목적인 위키피디아 등 기존 유명 위키와 비교했을 때 장난스런 문장이 많고 서술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의 서브컬처 위키에서 농담성 문장을 서술할 때 취소선을 활용하는데, 나무위키의 문서들 역시 이 취소선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문서 내용과 크게 관련이 없는 각주도 남발되며, 나무위키 특유의 편집자 주관이 많이 담긴 서술은 문서의 중립성을 훼손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서브컬처 문화를 모르는 이용자들에게는 가독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위키는 사건·사고 문서 서술의 신속성, 비교적 젊은 편집자들의 재치 있는 편집 등으로 이용자가 대폭 늘어났다. 위키피디아와 비교했을 때 나무위키의 문서가 훨씬 재미있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위키 자체적으로도 가독성 프로젝트 등을 통해 과도한 서브컬처 문화를 없애고 신뢰할 수 있는 문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능한 문서가 많아졌고, 위키 이용 및 문서 편집의 재미도 유지해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됐다.
나무위키도 대형 위키인 만큼 신뢰도가 낮다고 할 수 없지만, 비교적 장난스러운 서술 방식 때문에 실제 문서 사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취소선으로 처리된 문장이나 중립성에 위배되는 서술은 문서의 재미를 위한 장치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서브컬처: 한 사회집단의 특정 영역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생활·문화양식. 주류문화에서 벗어난 마니아 계층의 문화(게임, 일본 만화 등)를 일컫는다.


참고문헌 및 웹사이트

이항우 (2013),「Click 클릭의 사회학」, 이매진.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
나무위키(namu.wiki)

¹ Giles,Jim (2005) “Internet encyclopaedias go head to head,” Nature, Vol. 438, 900-901.
² Bryant, S. Forte, & Bruckman, A. (2005). “Becoming wikipedian: Transformation of participation in a collaborative online encyclopedia.” In Proceedings of GROUP 2005.


유동현 전임기자
편집 진수별기자 jsb19@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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